정부 영상기기산업 육성안 해설

정부가 영상기기산업에 대한 육성의지를 강하게 내비친 것은 컬러TV, VCR 등 국산제품이 일본에 이어 세계 2위의 시장점유율을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앞날이 매우 불투명하다는 위기의식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중.저가품 위주의 OEM수출로는 더이상 채산성을 확보하기가 곤란할 뿐 아니라 중국과 동남아산 제품 등과의 가격경쟁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는 등 그 한계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더우기 세계시장을 선도하는 전자업체들이 차세대 영상기기 시장을 놓고 전략적 제휴를 하는 등 리딩그룹을 형성, 또다시 기술종속에 빠질 우려가 높다는 게 정부당국의 판단이다.

따라서 이번에 발표된 영상기기산업 육성책은 이제까지 끌려다니던 산업구조 를 이들 주도적 세력에 동참할 수 있도록 탈바꿈해 보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밝힌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정부가 전략적으로 국산화 개발을 추진하겠다는 4개 분야가 모두 선진 기업들이 독식하려는 기술이라는 점에서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HDTV용 반도체칩(ASIC)의 경우는 최근 완료된 HDTV 국산화 개발사업의 연속성을 띠고 있는데 디지털 신호처리를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해야할 개발과제 에 속한다. 이를 국산화함으로써 HDTV 양산단계에서 세계 선도업체들과의 기술격차를 해소하는 기틀을 마련할 수 있으며 동등한 기술교류와 경쟁이 가능하게 된다는 것이다.

디지털 VDR(Video Disc Recoder)도 기록매체가 테이프에서 디스크로 전환될 것이 분명한 데도 현재 국산제품은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어 디지털 방송 및 HDTV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개발이 필수적인 분야이다.

또 디스플레이는 앞으로 영상기기와 멀티미디어 기기가 어떤 방향으로 발전 하더라도 최종적으로 영상을 출력하는 필수 부품일 뿐 아니라 기기가격의 40~50%를 차지하는 핵심요소여서 차세대 영상기기산업 경쟁력확보에 결정적 인영향을 미치는 분야다. 바꿔 말하면 현재의 TV 브라운관으로는 세계 2위의 생산국이라는 위치조차 지탱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국내업체들은 평판디스플레이중에서 앞으로 시장수요가 가장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LCD의 개발에 주력하고 있고 정부도 이를 적극 지원하고 있으나FED.PDP.AMA 등 HDTV 시대에 맞는 대화면 구현이 가능한 디스플레이의 개발 에는소극적이었다. 또 일본 등 선진국에서도 아직 양산단계에 들어서지 않아지금부터라도 이들 차세대 디스플레이의 기술개발에 착수하면 선진국과의 기술격차를 최소화하고 원천기술을 습득하기가 그만큼 쉬워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디지털 방식의 방송장비 개발도 HDTV 시대의 영상산업 경쟁에서 빼놓을 수없는 부분. 특히 방송용 VCR와 카메라에서 필요로 하는 영상 및 음향기술이민 생용 기기의 원천기술에 해당된다는 점에서 디지털 방송장비의 국산화는국내영상산업을 한차원 끌어올리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상공자원부는 디스크 형태이면서 반도체 메모리칩을 채용하는 디지털 VCR와 카메라를 최종 개발목표로 설정하고 방송장비 제조업체인 삼성전자.대우전자.현대전자와 함께 방송사들의 참여를 유도해 국산장비 사용에 따른 거부감 을사전에 불식시킨다는 복안을 갖고 있기도 하다.

또 민생용 디지털 VCR와 캠코더의 국산화 개발은 이번 계획과 별도로 이미수 립돼 대단위 컨소시엄을 구성, 착수됐다.

이처럼 정부의 이번 기술개발은 디지털.멀티미디어.HDTV로 대표되는 미래의 주력 영상기기시장이 꽃을 활짝 피우기 전에 국산화시켜 선진국들과 동시에 진입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와 함께 HDTV시대로 본격 진입하기에 앞서 급부상하고 있는 광폭TV의 국산 화도 광폭TV방송개시 전에 브라운관을 비롯한 핵심부품의 개발을 완료해 외 산품의 국내진입에 가전업체가 능동적으로 대처할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준다는 전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천억원 이상이 투입되고 이중 1천2백여억원을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하는 이번 대규모 기술개발사업은 지나치게 대기업쪽에 편중됐다 는 지적을 면키 어렵다.

대부분 전자부품종합기술연구소가 진두지휘하게 되는 이들 4개 기술개발분야 에 가전3사와 반도체3사, 브라운관3사 등 대기업이 빠짐없이 참여하고 있는것이다. 물론 이번에 선정한 개발대상 과제가 이들 대기업의 참여를 필요로 하고는 있지만 관련부품.소재업체들의 참여가 상대적으로 크게 미흡하다는점에서 또다시 조립.가공 위주의 기술정책을 펼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있다. 정부가 영상기기산업 육성의 필요성에서도 밝혔듯이 국내영상기기산업은 대기업의 조립생산 중심으로 성장함으로써 덩치만 비대해졌을 뿐 실속은 허약 하기 짝이 없는 실정이다.

일례로 국산 컬러TV의 부품불량률이 1.2%로 일본 제품의 0.01%나 동남아에 서 생산되는 일본 브랜드의 0.5%보다도 뒤지고 있으며 AS율은 2.0%로 동남 아산 일본제품과 비슷하고 일본산 제품의 1.0%보다는 크게 뒤진다. 가격경 쟁력도 중국이나 동남아산 일본제품에 비해 떨어짐으로써 중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다.

마켓팅 능력은 더욱 형편없다. 해외시장 점유율이 2위라고 자부(?)하는 컬러TV와 VCR의 OEM수출 비중이 94년 현재 각각 40.4%와 59.3%를 차지, 해외 시장에서의 브랜드 인지도가 매우 낮은 편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설계기술과 함께 핵심부품의 수입의존도가 좀처럼 개선 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VCR제조시 아직도 10% 정도의 로열티를 일본 업체 등에 지급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핵심부품의 수입은 세트업체들이 신뢰성 문제 등을 이유로 국산부품의 채용 을 기피하는 사례가 많아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 숙제처럼 지속되고 있다.

따라서 차세대 영상기기시장이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전에 국산화하겠다는 정부의 이번 의지를 다소 수정해서라도 실행단계에서는 전문부품업체들을 반드시 포함시켜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4개 개발과제 모두가 아직 구체적으로세부계획을 마련해 출발한 게 아니므로 부품.소재 업체들의 참여가 충분히가능 하기 때문이다.

이번 영상기기 산업육성 계획중 생산거점의 해외진출 확대나 영상기기제조업 체들의 SW산업 참여확대 등은 사실상 정부의 의지보다도 민간업체들의 사업 전략에 따라 향배가 결정될 부분이다. 다만 정부는 직.간접적인 유인책을 펼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윤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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