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부고는 광고 옆에 붙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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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진 산타크루즈컴퍼니 대표·대한민국 1호 디지털 장의사

나는 장의사다. 다만 사람이 아니라 기록을 수습한다. 14년간 이 일을 하며 배운 것이 있다. 끝났다는 사실을 알리는 데에도 형식이 있다는 것이다.

종이 부고에는 상주의 이름이 있고 빈소와 발인이 있다. 누가 보냈는지 분명하고 다른 소식과 섞이지 않는다. 받는 사람이 진위를 묻지 않고 슬퍼하도록 오랜 시간이 만든 것이다.

그런데 그 부고가 뚫렸다. 2023년 겨울, '아버지께서 금일 아침에 별세하셨기에 삼가 알려드립니다'라는 문자가 돌았다. 링크를 누르면 악성 앱이 깔리고 휴대폰은 좀비가 되어 저장된 번호 전부에 같은 부고를 퍼뜨렸다. 서울의 한 경찰관이 새벽에 눌렀다. 지인 1000여 명에게 그의 이름으로 부고가 나갔고 조의금까지 오갔다. 죽은 사람은 없었다.

부고가 종이에서 문자로 옮겨오며 형식을 잃은 탓이다. 상주도 빈소도 발인도 사라지고 링크 하나만 남았다. 부고라기보다 쿠폰에 가까워졌다. 형식이 비는 순간 사기가 들어왔다. 조심성의 문제가 아니다. 경찰관이 눌렀다.

지난 열흘, 또 다른 부고가 나갔다. 금융사 16곳에서 개인정보 약 10만건이 빠져나갔다. 한 사람의 신원이 죽는 일이다. 지난달 새마을금고중앙회 홈페이지에 사과문이 올라왔다. 고객 감사 이벤트와 같은 배너 칸이었다. 사과는 정해진 시간만큼 머물다 퇴장했고 다음 순서는 경품이었다. 실무자의 실수였겠지만, 사과를 이벤트 칸에 넣을 수 있는 구조가 먼저 있었다.

그 아래에는 유출 조회 기능이 있었다. 이름과 휴대폰 번호만 넣으면 되고 본인확인은 없었다. 이번에 유출된 바로 그 조합이다. 도둑맞은 열쇠로 도둑을 맞았는지 확인하는 셈이었다. 이튿날 사이트는 통째로 멈췄다. 중지 사유는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점검 및 보완 조치. 유출도 해킹도 없다.

지금 피해자들은 문자를 받는다. 금융사도 보낸다. '개인정보가 유출되었습니다, 확인하십시오' 링크가 붙는다. 사기꾼도 보낸다. 같은 말에 같은 링크다. 확인하러 간 사람은 닫힌 문 앞에서 돌아선다. 사기꾼의 창구만 연중무휴다.

우리는 이미 사기와 한 집에 산다. 누르면 사기가 되고 누르지 않으면 사기가 아닌 세상이다. 재산과 신원이 손가락 한 번에 갈린다. 아무것도 누르지 않고 아무도 믿지 않으면 당하지 않겠지만, 그렇게 사는 사람을 현명하다고 부르지는 않는다. 하루에도 몇 번씩 탐정이 되어야 하는데 수당 주는 곳은 없다.

현명함은 더 많이 의심하는 데 있지 않다. 의심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를 미리 정해 두는 데 있다. 형식이 바로 그 자리다. 개인이 세울 원칙은 하나다. 확인은 상대가 준 길로 하지 않고 내가 아는 길로 한다. 문자의 링크가 아니라 내가 깔아둔 앱으로, 발신번호가 아니라 카드 뒷면 번호로 간다.

나 역시 기록을 지우는 기술을 오래 다뤄 왔다. 그러나 받은 알림이 진짜인지 알아보는 일은 기술 이전의 문제다.

통로의 수를 줄이는 일은 개인이 할 수 없다. 피해 금융사가 16곳이다. 각자 조회 페이지를 열면 국민은 주소 16개를 외워야 한다. 가짜를 조심하라면서 진짜를 열여섯 개 만들어 주는 셈이다. 당국 명의의 통합 창구 하나로 모아야 한다. 법은 언제까지 알리라고만 정했을 뿐 어떻게 생겨야 하는지는 정하지 않았다.

문을 닫는 데에도 형식이 있어야 한다. 왜 닫혔는지, 무엇이 나갔는지, 언제 열리는지. 그 셋이 없으면 닫힌 문은 침묵이다.

개인은 통로를 지키고, 사회는 통로의 수와 모양을 정한다. 우리는 부고를 한 번 잃었다. 조의금을 보냈는데 죽은 사람은 없었다. 같은 일을 유출 통지에서 다시 겪을 이유는 없다. 누구도 과거의 기록 때문에 현실이 괴로워서는 안 된다. 그 기록이 죽었다는 통지마저 의심해야 한다면 더욱 그렇다.

김호진 산타크루즈컴퍼니 대표·대한민국 1호 디지털 장의사 hobarce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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