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英·美서 자녀에 물려줄 유산쓰기 현상 확산
은퇴 후 모은 재산을 자녀에게 물려주기보다 자신의 삶을 즐기는 데 쓰려는 고령층이 늘고 있다. 여행과 취미, 새로운 경험에 적극적으로 돈을 쓰는 이른바 'SKI(Spending the Kids' Inheritance·자녀에게 물려줄 유산을 쓰기)' 현상이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확산하는 모습이다. 고령층의 소비 성향 변화가 여행과 레저 산업의 주요 수요 동력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미국 경제매체 포천(Fortune)에 따르면 영국 퇴직연금 전문기업 스탠더드라이프의 보고서에서 영국인 부모 7명 중 1명은 자녀에게 유산을 남기는 것보다 은퇴 후 자신의 삶을 즐기는 데 돈을 쓰겠다고 답했다. 노후 자산을 다음 세대에 이전하는 데 집중하기보다 생전에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활용하려는 흐름이다.
여행은 이러한 변화가 두드러지는 분야다. 영국여행업협회(ABTA)의 조사에서 65세 이상 응답자의 82%는 지난 1년간 휴가를 다녀왔다고 답했다. 2년 전보다 5%포인트 상승했다.
마크 탠저 ABTA 최고경영자(CEO)는 고령층이 과거보다 건강하고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지면서 소비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상속을 위해 자산을 보존하거나 상속세 부담을 고려하기보다 살아 있는 동안 자신을 위해 돈을 쓰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도 은퇴 세대의 높은 여행 지출이 확인된다. 여행보험 비교업체 스퀘어마우스의 자체 판매 데이터에 따르면 65세 이상 부부의 여행 1회당 평균 지출은 9960달러(약 1319만원)로 집계됐다. 50세 미만 부부의 평균인 6618달러(약 876만원)보다 약 51% 많다.
여행 기간도 고령층이 더 길었다. 65세 이상 부부의 평균 여행 기간은 15일로, 50세 미만 부부의 11일을 웃돌았다. 여행 목적지도 유럽과 일본을 넘어 남극과 아프리카 등으로 다양해졌다. 은퇴 이후 확보한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여행 지출 규모와 기간, 목적지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에서도 유사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2023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재산을 자신과 배우자를 위해 사용하겠다고 답한 65세 이상 노인의 비율은 24.2%였다. 2020년 17.4%보다 6.8%포인트 상승했으며, 2008년 9.2%와 비교하면 두 배 이상 높아졌다.
이 같은 변화는 고령층을 대상으로 한 산업의 사업 전략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은퇴 세대가 자산을 보존하거나 자녀에게 이전하는 데서 나아가 현재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지출을 늘리면 여행과 레저, 문화·체험 서비스 시장에서 이들의 구매력이 더욱 중요해질 수 있다.
다만 이러한 흐름이 모든 고령층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 소비 여력은 연금과 금융자산, 주거비, 의료비 부담 등에 따라 달라진다. 고령층이 새로운 소비 주체로 부상하는 속도 역시 인구 고령화뿐 아니라 가계가 실질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소득과 자산 규모에 좌우될 전망이다.
이상목 기자 mrlsm@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