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상부 세계은행(WB) 디지털전환 담당 부총재가 한국의 인공지능(AI) 기술과 디지털 전환 경험이 개발도상국의 디지털 전환을 촉진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의료·농업 등 산업별로 활용할 수 있는 '스몰 AI' 기술이 개도국의 생산성을 높이는 동시에 국내 기업에도 새로운 해외 시장 진출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내다봤다.
김 부총재는 전자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 기업들이 개도국의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는 문이 열리고 있다”며 “아프리카와 남아시아 등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는 지역에는 무궁무진한 시장 기회가 있다”고 21일 밝혔다.
그는 한국이 보유한 AI 기술과 디지털 발전 경험이 개도국의 경제성장을 지원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대규모 AI 모델을 자체 개발하기 어려운 국가에서는 의료·농업·교육 등 산업 현장에 기존 AI 기술을 적용하는 실용적인 접근이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김 부총재는 “개도국은 첨단 AI 인재와 컴퓨팅 인프라, 공급망 등이 부족하기 때문에 선진국의 대규모 AI 개발 전략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AI를 실용적으로 활용해 생산성을 높이고 경제 발전에 기여하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한국 기업들의 기술력과 현장 경험이 개도국의 AI 도입을 뒷받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현재 세계은행은 한국에 구축한 디지털·AI 지식센터를 통해 국내 기업과 개도국을 연결하는 협력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 정부와 협력해 약 9개 과제를 발굴하고 구체화하는 단계다.
김 부총재는 “한국의 의료와 농업 분야 사례를 활용하는 프로젝트를 발굴하고 있다”며 “한국 기업의 기술과 경험이 세계은행의 개도국 지원 프로그램에 반영될 수 있도록 사업을 설계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국내 농업 데이터 기업 트릿지(Tridge)와 농업 정보화 기술의 해외 진출을, 삼성전자와는 중고 스마트폰 재활용을 통한 개도국의 디지털 접근성 확대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네이버와 KT 등 국내 정보통신기술(ICT) 기업과의 협력 가능성도 모색하고 있다. 네이버의 데이터센터 사업과 KT 등 기술기업의 사업 모델을 논의하고 있으며,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과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 등을 통해 협력 가능한 국내 기업을 발굴하고 있다.
한국의 디지털 공공 인프라도 개도국이 참고할 만한 사례로 꼽았다. 세계은행은 디지털 신원증명과 전자정부 등 디지털 공공 인프라(DPI)를 개도국의 필수 기반시설로 보고 재정·기술 지원을 병행하고 있다.
김 부총재는 “디지털 신원증명은 은행 계좌 개설이나 각종 공공·민간 서비스 이용에 필요한 기본 인프라”라며 “한국의 디지털 신원증명 시스템과 공공 디지털 지갑은 다른 국가들이 벤치마킹할 수 있는 좋은 사례”라고 설명했다.
세계은행의 디지털·AI 분야 투자 확대도 한국 기업의 해외 진출 기회를 넓히는 요인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김 부총재에 따르면 올해 세계은행이 관련 분야에 집행한 정부·민간 부문 자금은 약 7조원이다.
김 부총재는 “수원국의 수요에 따라 지원 규모가 달라지기 때문에 고정된 금융 목표를 두고 있지는 않다”면서도 “세계은행이 투입하는 자금의 최소 2~3배에 해당하는 민간자본을 함께 동원할 수 있도록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민간자본 동원 배수는 공식 확정 목표가 아닌 지향점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의 독자 AI 모델 개발 전략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김 부총재는 “한국이 개발하는 독자 AI 모델이 성공하면 개도국에는 새로운 기술 선택지가 생기고 한국 기업에는 해외 진출 기회가 열릴 것”이라며 “개인적인 견해이지만 한국의 독자 AI 모델이 국가의 AI 주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한다면 세계적으로 큰 모범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개도국은 국가별 AI 역량에 맞춰 단계적으로 기술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은행은 AI 도입(Adopt), 현지화(Adapt), 고도화(Advance)로 이어지는 접근을 제시하고 있다. 기존 기술을 활용해 생산성을 높인 뒤 자국 언어와 산업 환경에 맞게 조정하고, 충분한 기반이 마련되면 자체 기술 개발로 나아가는 방식이다.
그는 “AI 주권은 어느 나라에나 중요하지만 기본적인 인프라와 활용 역량이 먼저 갖춰져야 한다”며 “AI 활용 능력을 높인 뒤 이에 맞춰 기술 주권을 강화하는 정책과 투자를 병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김 부총재는 한국 AI 기업과 인재들이 국내 시장을 넘어 글로벌 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한국은 새로운 기술과 혁신을 받아들이는 속도가 빠르고 우수한 인재와 기업, 정부의 정책 역량을 갖춘 나라”라며 “AI는 전 세계가 하나로 연결된 시장인 만큼 한국 기업과 인재들이 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더 많은 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해외 기술과 시장 동향을 익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나라의 문화와 사람을 이해하는 경험이 중요하다”며 “국제적인 경험을 쌓는 것이 한국의 AI 인재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손지혜 기자 jh@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