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민의 디지털 창업사] 〈10〉전자상거래, 오픈마켓 벤처의 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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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민 가천대 경영학과 교수·한국경영사학회 부회장·전자신문 명예기자

연간 거래액 200조원을 넘어선 전자상거래는 이제 우리 삶의 기본 인프라다. 새벽 배송의 압도적 편리함이 보여주듯, 디지털 상거래는 일상과 유통의 지도를 바꿔 놓았다. 물리적 시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이 온라인쇼핑산업은 과연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1990년대 후반, 유통 재벌들이 수백억 원의 자본과 백화점 간판을 앞세워 인터넷으로 뛰어들 때, 자본도 매장도 브랜드도 없던 벤처들은 어떻게 시장의 주역이 되었을까.

인터넷 인프라가 갖춰지자 유통 대기업들은 자본력과 브랜드 인지도를 앞세워 온라인 상거래 시장에 가장 먼저 진입했다. 그러나 이들을 가로막은 것은 전형적인 '혁신기업의 딜레마'였다. 납품업체의 상품을 외상 매입해 판매 후 재고를 반환하는 특정매입식 임대업 모델을 온라인에 그대로 복제했기 때문이다. 기존 매장과의 카니발리제이션(자기잠식)을 우려해 파격적인 할인을 꺼렸고, 상품 구성 역시 오프라인 카탈로그를 화면으로 옮겨놓은 수준에 멈췄다. 높은 수수료 구조, 까다로운 입점 장벽, 보수적 조직 문화가 맞물리면서 백화점 쇼핑몰은 성장에 한계가 있었다.

한편 통신사 데이콤의 사내벤처에서 분사한 인터파크는 전자상거래의 가능성을 보고 과감히 뛰어들었다. 비록 브라우저 보급도 걸음마 단계였고 온라인 결제망도 불완전했지만, 아마존을 벤치마킹해 도서와 공연 티켓 등 표준화된 상품군으로 초기 결제 장벽을 낮춰 나갔다. 초기에는 백화점 출신 MD들이 수작업으로 입점을 심사하는 방식을 차용했으나, 이는 곧 디지털의 본질인 무제한 상품 구색 확장을 가로막는 병목이라는 구조적 한계를 드러냈다.

이런 와중에, 삼성몰을 안착시킨 상사맨 출신 이금룡은 1999년 위기의 '인터넷경매'를 맡아 옥션으로 변모시켰다. 기술 일변도의 시장에서 소비자 간 거래(C2C)의 핵심이 신뢰임을 간파한 그는, 대기업 브랜드 없는 사이트에서 결제를 두려워하던 소비자를 위해 국내 최초로 안전결제(에스크로)를 도입했다. 구매 확정 후 대금을 정산해 주는 이 제도는 불신의 벽을 허물며 거래량을 폭증시켰고, 6개월 만의 코스닥 상장과 2001년 이베이 3억달러 매각으로 이어졌다. 이 에스크로는 2006년 전자상거래소비자보호법을 통해 법제화되며 한 기업의 혁신이 국가 제도화된 대표 사례가 되었다.

백화점식 MD 병목을 부수고 오픈마켓을 완성한 주역은 G마켓이었다. 2000년 인터파크 김영덕 CTO는 이기형 회장에게 9줄짜리 사업계획서를 제시했다. 첫 줄은 “누구나 자유롭게 상품을 등록하자”였고, 마지막 줄은 “나스닥에 상장하자”였다. 오프라인 룰을 벗어난 개방형 거래소 '구스닥'이 사내벤처로 출범해 훗날 G마켓이 되었다. G마켓은 3년간의 적자 속에서도 수만 개의 입점업체와 대규모 트래픽을 견뎌낼 보이지 않는 주문·정산 시스템을 구축했다. 여기에 10년에 한 번 사는 가전 대신, 사지 않아도 매일 구경하는 콘텐츠인 동대문 패션을 결합해 폭발적 트래픽을 일으켰다. 탄탄한 시스템과 패션 생태계와의 결합은 2006년 미국 나스닥 직상장이라는 결실로 이어졌다.

물론 1세대 오픈마켓의 성공 이면에는 한계도 뚜렷했다. 자율 등록을 바탕으로 외형은 키웠으나, 거래 안전과 품질 관리 책임을 개별 판매자에게 넘긴 채 광고 및 부가 수수료에 의존하는 가상공간의 임대업적 성격을 온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또한 초기 성장세를 독자적인 물류망 확충이나 해외 진출로 완결 짓지 못한 채 해외에 매각되면서, 장기적인 산업 경쟁력 구축과 인프라 고도화라는 숙제를 남기기도 했다.

그럼에도 초기 전자상거래는 오프라인 백화점의 관행을 뛰어넘어 새로운 길을 개척한 위대한 혁신이었다. 특히 대기업의 경직된 관료주의를 깨고 도전할 수 있게 한 사내벤처라는 실험이 없었다면 결코 불가능했을 일이다. 모기업의 자원과 네트워크를 디딤돌 삼으면서도 창업가정신으로 무장한 사내벤처는, 초기 적자의 어려움을 이겨내며 안전한 전산망과 주문·정산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들의 치열한 발자취는 온라인쇼핑산업의 근간으로 축적되었다. 낡은 틀을 깨고 바닥에서부터 시스템을 세운 1세대 사내 창업가들의 집념이야말로 오늘날 전자상거래 강국을 일군 진짜 뿌리라 할 수 있다.

전성민 가천대 경영학과 교수·한국경영사학회 부회장·전자신문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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