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 차이나] 같은 부품, 다른 측정값…중국이 '산업측정'을 인프라로 키우는 이유

[기고·박지민의 비욘드 차이나] 인증서보다 앞에 있는 측정소급성·불확도·현장 계측의 연결

같은 부품을 두 공장에서 측정했는데 결과가 다르다면 어느 쪽을 믿어야 할까. 공급업체는 규격에 맞는다고 하고 고객은 불량이라고 판단한다. 측정기 자체 정확도, 측정환경, 시료를 다루는 방법과 계산방식이 다르면 모두 성실하게 검사해도 결론은 달라질 수 있다. 생산량이 커질수록 이 차이는 반품과 납기 지연, 불필요한 설비투자로 번진다. 제조업 신뢰는 완제품 인증서보다 훨씬 앞에서 만들어진다.

중국이 계량(计量·측정 정확성과 일관성을 확보하는 활동)을 산업정책으로 다루는 이유다. 길이와 무게를 재는 행정업무로만 보면 핵심을 놓친다. 반도체 치수, 배터리 성능, 로봇 위치, 의료기기 측정결과를 어떤 기준과 연결할 것인지가 제품 품질과 거래를 좌우한다. 산업측정은 공장마다 흩어진 숫자를 서로 비교하고 계약할 수 있게 만드는 기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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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성적서보다 먼저 물어야 할 질문

시험·검사·인증과 측정은 연결돼 있지만 같은 기능은 아니다. 시험은 정해진 방법으로 성능과 특성을 확인하고, 인증은 정해진 요건에 대한 적합성을 확인하는 절차다. 측정과 교정은 그 판단에 사용되는 값이 어떤 기준에 연결되는지, 어느 정도 불확실성을 갖는지 다룬다. 교정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제품이 합격하거나 측정기가 자동으로 조정되는 것도 아니다.

핵심 개념은 측정소급성이다. 측정결과가 문서화되고 끊어지지 않는 비교·교정 연결을 통해 국가 또는 국제적으로 합의된 기준에 이어지는 성질이다. 그 연결에는 각 단계의 측정불확도가 함께 제시돼야 한다. 불확도는 검사자가 틀렸다는 고백이 아니라 측정결과에 어느 정도 범위가 따르는지, 그 값을 어떤 판단에 사용할 수 있는지 알려주는 정보다.

기업 입장에서는 오차가 작은 장비를 사는 것과 필요한 측정능력을 갖추는 것이 다르다. 제품 허용범위와 공정속도, 온도·진동, 시료 특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비싼 측정기를 구매해도 생산라인에서 반복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품질 문제는 남는다. 반대로 필요 이상으로 엄격한 측정을 요구하면 검사비와 시간이 늘어난다. 좋은 측정은 가장 비싼 장비가 아니라 거래와 공정에 맞는 신뢰수준을 설계하는 일이다.

2030년 계획은 산업별 문제에서 출발한다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国家市场监督管理总局)과 공업정보화부(工业和信息化部)는 2025년 6월 '산업의 첨단 생산역량을 뒷받침하는 계량 행동방안(计量支撑产业新质生产力发展行动方案(2025~2030年))'을 마련했다. 집적회로, 인공지능, 항공우주, 신소재, 바이오의약 등 전략산업 측정 수요를 발굴하고 핵심 측정기술과 서비스 기반을 강화하는 계획이다. 첨단산업 성장을 측정 인프라와 함께 설계하는 접근이다.

실행 방식은 수요를 모아 공동과제로 바꾸는 데 있다. 중앙정부 소유 국유기업과 지방 주무부처, 업종협회 등이 과제를 제안하면 전문가 검토를 거쳐 사업 목록에 올리고, 매년 약 10개를 중점과제로 선정하도록 했다. 주관기관과 참여기관을 정하고 분기별 점검과 연말 평가로 추진상황을 확인한다. 모든 공장에 같은 장비를 보급하는 대신 산업의 병목에 맞는 측정 문제를 찾아 기관과 기업을 연결하는 구조다.

배터리 성능을 비교하려면 충전상태, 온도, 부하와 열화조건을 맞춰야 한다. 로봇 정확도도 정지상태와 작업속도, 적재중량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기술을 개발하는 팀과 고객의 검수팀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거래가 성립한다. 새 제품에 맞는 측정방법을 함께 개발하면 기업마다 반복하는 검증비용을 줄일 수 있다.

정책 발표를 곧 산업 전체의 측정능력 완성으로 해석해서도 안 된다. 계획은 해결해야 할 수요와 투자방향을 제시한다. 실제 성과는 산업별로 필요한 방법과 장비가 개발됐는지, 기업이 이를 쓸 수 있는지, 측정서비스 비용과 시간이 낮아졌는지를 봐야 한다. 센터 간판보다 공장에서 해결된 문제가 중요하다.

국가 기준과 산업 현장을 잇는 중간조직

중국계량과학연구원(中国计量科学研究院)은 중국 국가측정표준을 담당하는 핵심 기관이다. 지역 측정기관과 교정서비스, 산업별 특수 수요를 다루는 국가산업계량시험센터(国家产业计量测试中心)가 국가 기준과 현장을 연결한다. 기존 측정기관이나 산업별 기업을 기반으로 승인되는 센터는 개별 장비 교정을 넘어 산업사슬과 제품 수명주기를 포괄하는 측정 지원을 지향한다.

국가 기준기관이 가장 높은 수준 기준과 측정기술을 유지한다면, 산업별 센터는 이를 생산환경 언어로 바꾼다. 공통 시험방법을 개발하고 신형 센서와 장비를 평가하며 기업 측정문제를 해결한다. 지역기관은 접근성과 일상 교정서비스를, 계측장비기업은 제품화와 유지보수를 맡을 수 있다. 공공기관과 민간기업이 같은 역할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기능을 연결해야 한다.

우시(无锡)의 국가 신에너지차 부품 산업계량시험센터(国家新能源汽车零部件产业计量测试中心)는 이 연결을 보여준다. 우시시 검사·시험·인증 연구기관을 기반으로 2024년 4월 설립 준비 승인을 받았다. 센터가 밝힌 중점영역은 전기구동장치, 전자제어장치, 차량용 센서와 표시장치, 정밀 치수 및 경량소재다. 자동차 전체 품질을 한 번에 보증하기보다 부품별로 필요한 측정능력을 지역 공급망에 제공하려는 구상이다.

설립 준비 승인과 최종 검수는 구분해야 한다. 다만 준비 단계라는 이유로 기술서비스가 전혀 없다고 볼 수도 없다. 센터는 자체 소개에서 기업 대상 서비스와 교정규범 개발, 전용장비 연구를 진행했다고 밝힌다. 판단 기준은 간판 등급보다 고객이 필요한 항목을 제공하는지, 그 능력이 어떤 범위와 불확도로 입증되는지다. 측정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 자신도 능력평가와 품질관리 대상이다.

‘더 정밀하게’보다 ‘같은 값을 믿게’ 만드는 일

중국 산업측정 전략적 의미는 정밀도 경쟁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대기업이 요구하는 측정조건을 중소 협력사도 구현할 수 있어야 공급망이 안정된다. 협력사가 제출한 측정값을 고객이 반복해서 다시 확인해야 한다면 검사비와 재고가 늘어난다. 반대로 검증 없이 신뢰하면 불량이 다음 공정으로 넘어간다. 공동 기준은 이 두 비용 사이에서 합리적인 판단을 가능하게 한다.

공장 밖에서도 측정값은 자본과 연결된다. 장비기업 성능보증, 배터리 잔존가치, 에너지절감 계약, 보험의 사고판정에는 객관적인 수치가 필요하다. 기업의 주장을 검증할 수 있는 측정방법이 없다면 금융기관은 불확실성을 더 높은 비용으로 반영할 수 있다. 측정은 물리량을 재는 기술이지만 그 결과는 계약과 투자위험에 영향을 미친다.

서비스형 제조에서는 이 관계가 더 뚜렷하다. 고객이 기계 한 대가 아니라 일정한 성능과 가동서비스를 구매한다면, 계약기간 내내 성능을 어떻게 계산할지 합의해야 한다. 센서 교정상태, 데이터 누락, 비정상 운전 처리기준을 정하지 않으면 성과보상 계약은 분쟁이 되기 쉽다. 산업측정은 제품을 판매한 뒤 책임을 나누는 언어이기도 하다.

따라서 측정 인프라 투자판단에는 장비비만이 아니라 서비스 모델이 들어가야 한다. 어떤 기업이 어떤 빈도로 사용할지, 공공재정은 공통기술과 기준 유지에 얼마나 부담할지, 개별 시험과 상담은 어떤 방식으로 과금할지 구분해야 한다. 장비를 설치한 뒤 이용률을 고민하는 순서로는 고가 시설이 유휴자산이 되기 쉽다.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것과 시장에 들어가는 것은 다르다

국경을 넘는 거래에는 또 하나의 연결이 필요하다. 국제도량형국이 설명하는 국가측정표준기관 상호인정체계는 국가 기준과 교정·측정능력 국제적 비교가능성을 뒷받침한다. 참여기관 교정·측정능력은 동료평가와 국제비교 등의 절차를 거쳐 공개된다. 기업은 기관명뿐만 아니라 공개된 능력 측정범위와 불확도를 확인해 필요한 서비스인지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 측정기관의 국제 상호인정이 개별 제품의 자동 수출허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시험기관 인정범위, 제품별 의무인증, 수입국 기술규정과 고객 요구는 별도로 확인해야 한다. '국제적으로 인정된 측정기준을 썼다'는 설명과 '어느 나라에서나 판매할 수 있다'는 설명은 다른 층위다. 여러 제도를 하나의 인증 마크로 혼동하면 시장진입 전략이 틀어진다.

병목은 고가 장비보다 사람과 연결에 있다

측정 디지털화가 진전돼도 현장 전문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측정대상 특성과 센서 한계, 환경 영향을 이해하지 못하면 많은 데이터를 모아도 잘못된 값을 빠르게 생산할 뿐이다. 인공지능으로 이상을 탐지하더라도 학습에 사용한 기준값과 새로운 공정의 조건이 다르면 판단은 흔들릴 수 있다. 데이터 양보다 그 값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알아야 한다.

공공기관 성과지표도 병목이 될 수 있다. 검사 건수와 장비 보유액을 높게 평가하면 공동방법 개발이나 중소기업 장기 공정문제 해결은 뒤로 밀릴 수 있다. 반대로 산업 수요에 지나치게 종속되면 독립적 판단이 약해질 수 있다. 측정기관에는 기업과 가까운 전문성과 고객 압력에서 독립된 품질관리라는 두 조건이 동시에 필요하다.

지역별 중복투자도 경계해야 한다. 같은 고가 장비를 여러 도시가 경쟁적으로 도입하는 것보다 국가 기준기관, 전문 센터와 공장의 역할을 분담하는 편이 효율적일 수 있다. 수요가 작은 특수측정은 광역 공동시설로 제공하고, 자주 필요한 공정측정은 현장 접근성을 높이는 방식이다. 측정서비스의 물리적 거리와 전문성 집중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

기업 측정능력은 거래 상대가 바뀔 때 더 중요해진다. 국내 고객에게 통하던 검사방식이 해외 고객 규격과 같지 않을 수 있고, 고객이 공급업체를 바꾸면 두 회사의 공정 데이터를 바로 비교하기 어려울 수 있다. 측정조건과 변경이력을 함께 관리해야 공장을 이전하거나 공급망을 다변화할 때도 품질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산업측정 정책은 수입 장비를 국산으로 바꾸는 문제만으로 축소할 수 없다. 장비를 누가 만들었든 그 측정능력과 소급성, 사용환경에서 적합성을 증명해야 한다. 국산화 자체를 성능 증거로 취급하면 검증기관 독립성이 약해지고 해외 고객의 신뢰도 얻기 어렵다. 기술자립과 국제적으로 비교 가능한 데이터는 함께 추구해야 할 목표다.

공동시설을 이용하는 중소기업에도 배워야 할 역량이 남는다. 시험을 외부에 맡겼다고 공정관리까지 외주화할 수는 없다. 결과를 해석하고 생산조건을 조정하며 다음 시험을 설계할 담당자가 있어야 한다. 대학 교육과정과 지역 측정기관 현장지원이 만날 지점이다. 서비스 이용 건수뿐만 아니라 기업이 스스로 품질을 관리하게 됐는지를 평가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인증 대응 앞에 측정전략을 놓아야 한다

한국에는 한국표준과학연구원과 교정기관, 한국인정기구를 통한 인정체계가 이미 있다. 표준과학연구원은 국가측정표준에 연결된 교정서비스를 제공하고, 한국인정기구는 교정기관 등 능력을 인정한다. 필요한 것은 기존 역량이 신산업의 실제 공정문제로 얼마나 빨리 이어지는지 점검하는 일이다. 국가 기준의 우수성이 기업 납기와 품질 개선으로 연결돼야 인프라 가치가 드러난다.

정부는 반도체, 배터리, 로봇, 바이오 분야의 공통 측정 애로를 수집하고, 표준 개발·교정·현장시험을 한 과제로 연결할 수 있다. 단순한 장비 구매 보조보다 새로운 측정방법 검증과 공동 활용, 전문인력 장기 양성에 지원을 배분하는 편이 효과적이다. 평가에는 장비 설치 수보다 측정시간 단축, 기업 간 결과 일치와 불량분쟁 감소를 넣을 필요가 있다.

지자체와 대학은 모든 측정영역을 갖추려 하기보다 지역기업의 반복적인 측정 분쟁부터 모을 수 있다. 배터리 지역은 상태·열·안전 측정, 정밀기계 지역은 치수와 운동정확도처럼 산업별 병목을 선택하는 방식이다. 고객과 공급사 방법을 비교하고 기준시료, 작업자 교육, 장비 교정과 공정환경을 묶어 검증해야 한다. 대학 공동시설은 시험 결과를 전달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기업 담당자가 원인을 해석하고 공정을 조정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대기업은 협력사에 결과값만 요구하지 말고 측정방법과 판단기준을 함께 공개할 수 있다. 중소기업은 납품계약 전에 고객과 시험조건, 재측정과 이견 조정 절차를 합의해야 한다. 스타트업에는 신형 센서와 자동교정, 측정데이터 관리기술의 기회가 있지만, 높은 정확도를 주장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추적 가능한 검증자료를 쌓아야 한다.

금융권은 장비·센서 기업을 평가할 때 시연 성능과 반복 가능한 현장 성능을 구분해야 한다. 제3자 시험기록, 교정범위, 장기 사용 중의 성능 유지와 고객 검수자료는 매출 전망을 판단하는 단서가 된다. 기술평가가 기업 설명자료에 머물지 않으려면 숫자를 만든 과정까지 들여다봐야 한다.

중국 산업측정 정책은 제조업의 경쟁을 '누가 더 좋은 제품을 주장하는가'에서 '누가 그 성능을 반복해서 증명하는가'로 확장한다. 한국 제조업은 더 정밀한 장비를 사는 데서 멈출 것인가, 아니면 고객과 협력사가 함께 믿을 측정값의 연결까지 설계할 것인가.

박지민 36kr코리아 공동 대표 3guowill@krstar.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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