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미니스트리트가 기업의 인공지능전환(AX)을 위해 기존 전사자원관리(ERP) 시스템을 최적화하고, 그 위에 AI 에이전트 계층을 구축하는 전략을 제시했다. ERP 업그레이드와 전환(마이그레이션)에 큰 비용과 시간을 투입하기보다 기존 시스템을 활용해 업무 효율을 높이고, 절감한 재원을 AI 혁신에 투자하자는 것이다.
세스 레이빈 리미니스트리트 최고경영자(CEO) 겸 이사회 의장은 14일 한국CIO포럼 조찬 행사에서 'ERP는 죽었다: 에이전틱 AI ERP로 가는 현명한 길을 앞당겨라'를 주제로 발표하며 “ERP 소프트웨어는 기업의 요구를 충족할 수 있는 최대 역량에 도달했다”며 “무조건 업그레이드하거나 기능을 추가하는 방식만으로 급변하는 사업 환경에 대응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레이빈 CEO는 스타벅스를 사례로 들었다. “미국 정부가 브라질산 커피에 50% 관세를 부과하면 기업은 비용 부담과 수익성 영향을 따지고 조달처 변경 여부를 신속하게 판단해야 한다”며 “하루 안에 대응해야 하지만 ERP는 코드가 너무 복잡해 이런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기업이 이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AI를 활용하려 해도 ERP 업그레이드나 신규 시스템 전환에 먼저 비용과 시간을 쏟는다면 혁신은 늦어질 수밖에 없다.
레이빈 CEO는 “ERP 교체를 AI 혁신의 전제 조건으로 삼지 말고, 기존 시스템에 대한 투자 전략부터 재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급업체가 제시하는 업그레이드 일정에 맞추기보다 사업 목표와 투자 여력에 따라 시스템별 전환 시점을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기업은 불필요한 업그레이드와 마이그레이션, 라이선스 비용을 줄여 업무 프로세스 개선과 AI 도입에 재투자할 수 있다.
그는 다만 “모든 업그레이드나 마이그레이션을 중단하자는 의미는 아니다”라면서 “AI 전환을 위해 반드시 기존 ERP를 교체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구체적인 대안은 기존 ERP를 기록·거래 시스템으로 유지하면서 그 위에 AI 에이전트와 새로운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구축하는 것이다. SAP, 오라클 등 기존 시스템은 핵심 거래를 처리하고, AI 에이전트는 여러 시스템을 연결해 업무를 수행한다. 사용자는 직무에 맞는 화면에서 업무를 요청하고 AI가 제시한 결과를 확인·승인하면 된다.
레이빈 CEO는 기존 ERP를 교체해야 할 낡은 자산으로 볼 필요도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기존 시스템에는 기업별 업무 프로세스와 노하우가 오랜 기간 축적돼 있고, 안정적으로 운영되는 시스템도 많다. 이미 검증된 시스템을 유지하면서 업무 방식을 개선하고 AI를 접목하는 편이 더 효율적인 혁신 경로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AI를 도입하기 전에 업무 프로세스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레이빈 CEO는 “나는 AI 우선(AI first)이 아니라 AI는 나중에(AI last)를 믿는다”고 말했다. AI 도입 자체를 혁신으로 볼 것이 아니라, 먼저 기존 업무의 비효율을 줄이고 자동화할 수 있는 작업을 처리한 뒤 AI가 실질적인 효과를 낼 영역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접근을 적용한 기업 사례도 소개했다. 미국의 한 대형 유통기업은 이틀간 워크숍을 열어 인사 업무 절차를 개선한 뒤 업무 처리 기간을 2주에서 1주로 줄였다. 브라질의 한 대형 소비재 기업은 기존 SAP 시스템 위에 AI 계층을 구축해 필수 정보가 빠진 전자문서교환(EDI) 주문을 자동 처리하도록 했다. 이전에는 직원이 직접 정보를 찾아 주문을 수정해야 했지만, AI를 활용해 이 과정을 자동화했다.
AI 투자 효과를 수치로 검증하고 거버넌스를 갖추는 일도 과제로 제시했다. 레이빈 CEO는 “얼마나 절감할지 모르겠다거나 상황에 따라 다르다는 답은 CFO나 CEO에게 받아들여질 수 없다”며 AI 사용료와 운영비, 절감할 수 있는 비용 등을 사전에 따져 투자 효과를 수치로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AI 프로젝트의 85%가 실패했다는 수치를 제시하며, AI 도입 압박이 논리적 검토와 거버넌스보다 앞선 점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보안 측면에서는 AI를 활용한 위협에 AI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나쁜 AI는 좋은 AI로 막을 것”이라며 AI 에이전트의 권한과 활동을 지속해 감시하고, 허용 범위를 벗어나면 즉시 중단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레이빈 CEO는 CIO가 집중해야 할 목표로 수익성 개선, 비용 절감, 경쟁우위 강화를 제시했다. 그는 “AI 도입 자체가 목적이 돼서는 안 되며, 기존 시스템을 활용해 실질적인 사업 성과를 내야 한다”며 “벤더의 로드맵과 당신의 로드맵을 혼동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최호 기자 snoop@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