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2년 논문 한 편이 하나의 학문을 열었다. 노벨상이 기려 온 것은 언제나 그런 출발점이었다.
오는 10월 7일 저녁, 스웨덴 왕립과학한림원이 올해 노벨화학상 수상자를 발표한다. 해마다 이 무렵이면 한국 과학계는 기대와 체념이 뒤섞인 한 주를 보낸다. 평화상과 문학상은 있지만 과학 분야 수상자는 아직 한 명도 없다. 그러나 올해 나는 조금 다른 마음으로 그날을 기다린다. 수상자 명단에 올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한국 과학자가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성균관대학교 박남 규 종신석좌교수다. 우리 포럼 학술원에서 함께 활동하는 동료이지만, 그런 인연을 떠 나 한 사람의 과학자로서 그의 업적을 말하 고자 한다.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의 이야기는 2009년에 시작된다. 일본의 미야사카 쓰 토무 교수 연구진이 페로브스카이트 결정 이 물질을 실제로 작동하는 소자로 바꾼 사 람이 박 교수다. 그는 액체 전해질을 걷어 내고 고체 정공수송층을 도입한 전고체 구 조를 설계해, 2012년 9.7%의 효율로 500시간 넘게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페로 브스카이트 태양전지를 세계 최초로 보고 했다. 과학계가 이 물질을 '진짜 태양전지' 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순간이다.
그 뒤의 일은 과학사에서도 보기 드문 속도로 전개됐다. 전 세계 수많은 연구실이 이 분야로 뛰어들었고, 박 교수의 2012년 논문은 거의 1만회 가깝게 인용되며 '페로 브스카이트 광전지 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 의 출발점이 되었다. 실리콘 태양전지가 수 십 년에 걸쳐 도달한 효율을 페로브스카이 트는 불과 십여 년 만에 따라잡았다. 단일 전지 효율은 27%를 넘어섰고, 실리콘 위 에 페로브스카이트를 쌓은 탠덤 전지는 단 일 접합 전지의 이론적 한계를 이미 뛰어넘 었다. 용액을 바르고 굽는 저온 공정으로 만들 수 있어 가볍고 휘어지는 전지, 건물 창호에 붙이는 전지로 가는 길도 열렸다. 실험실의 발견이 산업의 지형을 바꾸는 단 계에 들어선 것이다.
물리학자의 눈으로 보아도 이 물질은 경이롭다. 나는 오랫동안 안 제1원리 계산으로 고체의 전자구조를 연구해왔다. 보ㅗㅇ의 반도체는 결함과 불순물이 조금만 섞여도 성능이 크게 떨어진다. 그래서 실리콘은 극도로 순수하게 정제해야 하고, 그 비용이 만만치 않다. 그런데 할로겐화물 페로브스카 이트는 용액으로 손쉽게 만든 다결정 박막 에서도 전하가 먼 거리를 이동한다. 결함이 생겨도 전자가 쉽게 붙잡히지 않는, 이른바 '결함 관용성 덕분이다. 그 근원을 밝히려 는 이론 연구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하 나의 발견이 화학과 물리학, 재료공학을 한 꺼번에 움직이게 만든 것, 그것이 박 교수 업적의 진짜 무게다.
노벨상은 한 분야를 열어젖힌 출발점에 주어진다. 2019년 리튬이온전지, 2023년 양자점, 지난해 금속유기골격체에 이르기 까지 최근의 노벨화학상은 인류의 삶을 바 꾼 물질과 그 물질을 처음 손에 쥔 사람들 을 기려 왔다. 국제 과학계는 이미 박 교수 를 그 반열에서 보고 있다. 2017년 클래리 베이트가 그를 노벨화학상 후보군인 피인 용 우수 연구자'로 선정했고, 2022년 영국 랭크상, 2024년 이탈리아 에니상, 2025 년 독일 훔볼트 연구상이 뒤를 이었다. 2023년에는 스웨덴 왕립과학한림원이 주 관한 노벨 심포지엄에 한국인으로는 유일 하게 초청돼 발표했다. 노벨상을 결정하는 바로 그 기관이 마련한 무대였다. 성균관대 는 올해 2월 그를 국내 최초의 종신석좌교 수로 추대했다.
물론 노벨상은 예측의 영역이 아니다. 한 분야의 수상자는 최대 세 명이다.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의 역사에는 이물질을 처음 광흡수체로 쓴 미야사카 교수, 비슷한 시기에 다른 구조로 고효율을 보고한 영국 옥스퍼드대의 헨리 스네이스 교수 같 은 이름도 함께 있다. 장기 안정성이라는 숙제도 아직 완전히 풀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 분야가 노벨상을 받는다면, 전고체 페로 브스카이트 태양전지를 처음 증명한 박 교 수의 이름이 빠지기는 어렵다고 나는 본다. 가능성을 실체로 바꾼 결정적 한 걸음이 그 의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5년 일본 의 NIMS 상은 박남규, 미야사카, 스네이 스 교수 이상 세분이 페로브스카이트 태양 전지 개발업적으로 수상하였다.
박 교수의 이력에는 우리 과학계가 새겨 야 할 대목도 있다. 그는 기업 연구원으로 일하다 다시 대학원에 들어갔고, 지도교수 의 권유로 처음 페로브스카이트를 만났다. 출연연구소를 거쳐 대학에 자리 잡는 동안 에도 그 결정구조를 30여 년 동안 놓지 않 았다. 유행을 좇기보다 한 우물을 깊이 판 연구자가 끝내 새로운 분야를 연 것이다. 노벨상은 한 사람의 영예이지만, 그 한 사 람을 길러 내는 것은 한 나라의 연구 생태 계다. 다음 주 스톡홀름에서 들려올 소식이 무엇이든 우리가 할 일은 분명하다. 제2, 제3의 박남규가 한 우물을 끝까지 팔 수 있 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도 올해만큼 은, 조금 더 큰 기대를 걸어 보고 싶다.
임지순 한국노벨과학포럼 물리양자연구원장
포항공과대학교 석학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