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핫이슈]도마뱀 독이 연 'GLP-1' 시대…비만약 넘어 어디까지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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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 미국 뉴욕 브롱크스. 보훈의료센터 내분비내과 의사 존 엥은 독도마뱀 '힐라몬스터'의 독을 분석하고 있었다. 이 도마뱀은 생애 대부분을 땅속에서 보내고, 오래 굶어도 혈당을 일정하게 유지한다. 그 비결이 궁금했던 엥은 독에서 사람 호르몬과 닮은 물질을 찾아냈다. '엑센딘-4'다.

이 물질은 식사 뒤 장에서 나오는 호르몬인 GLP-1(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과 닮았다. 이 호르몬은 혈당이 오르면 인슐린 분비를 돕는다. 문제는 지속 시간이었다. 사람의 GLP-1은 몸속에서 2분 남짓이면 분해된다. 엑센딘-4는 몇 시간 동안 작용했다. 약으로 쓸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이를 합성한 엑세나타이드는 2005년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첫 GLP-1 계열 당뇨병 치료제가 됐다.

그로부터 20여년. GLP-1은 당뇨병약을 넘어 비만부터 심장과 간 질환까지 영역을 넓혔다. 도마뱀 독에서 시작된 약물은 당뇨병과 비만을 넘어 여러 대사질환 치료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다.

◇당뇨약에서 대사질환 치료제로

GLP-1은 췌장에서 인슐린 분비를 늘리고, 혈당을 올리는 글루카곤 분비는 줄인다. 위에서 음식이 내려가는 속도를 늦추고, 뇌의 식욕 조절 부위에도 작용한다. 혈당이 내려가고 포만감은 오래 간다. 당뇨약이 살까지 빼는 이유다. 다만 식욕을 누르는 구체적인 신경회로는 아직 연구 중이다.

제약사들은 이 효과를 비만약으로 키웠다. 덴마크 노보노디스크의 위고비(세마글루타이드 2.4㎎)는 임상에서 68주간 평균 체중을 14.9% 줄였다. 위약군은 2.4%였다. 미국 일라이릴리의 마운자로(성분명 티르제파타이드)는 GLP-1에 GIP(포도당 의존성 인슐린 분비 자극 호르몬)를 더한 이중 작용제다. 최고 용량(15㎎)에서 72주간 20.9%를 뺐다. 체중 100㎏인 사람이 21㎏가량 줄인 셈이다.

효과는 체중 밖으로 뻗어갔다. 심혈관질환 병력이 있는 과체중·비만 성인 1만7604명을 본 임상에서 세마글루타이드는 심혈관 사망·심근경색·뇌졸중 위험을 위약보다 20% 낮췄다. 2024년 말 FDA는 티르제파타이드를 비만 동반 수면무호흡증 치료제로 승인했다.

지난해 8월에는 위고비가 간 섬유화가 진행된 MASH(대사이상 지방간염) 치료제가 됐다. 임상에서 72주 뒤 지방간염이 해소된 비율은 위고비군 63%, 위약군 34%였다.

만능은 아니다. 노보노디스크가 먹는 세마글루타이드로 진행한 알츠하이머병 임상 3상은 지난해 11월 병의 진행을 늦추지 못했다. 혈액·뇌척수액 지표는 좋아졌지만 인지 기능 악화를 막지는 못했다.

◇주사 대신 알약, 두 개 대신 세 개

이제 이 부문 약의 경쟁은 '어떻게 맞느냐'와 '얼마나 빼느냐'로 옮겨갔다. 알약이 먼저 나왔다. 지난해 12월 노보노디스크의 위고비 알약(세마글루타이드 25㎎)이 먹는 GLP-1 비만약으로는 처음 FDA 승인을 받았다.

올해 4월에는 릴리의 오포글리프론(제품명 파운데이오)이 승인됐다. 단백질 조각인 펩타이드가 아닌 저분자 화합물로는 첫 GLP-1 약이다. 도마뱀 독의 펩타이드에서 출발한 계열이 화학 합성 알약까지 온 것이다. 다만 최고 용량 72주 감량률은 12.4%로 주사제보다는 낮다.

작용 대상을 늘린 약도 나온다. 릴리의 레타트루타이드는 GLP-1, GIP에 글루카곤까지 세 호르몬을 겨냥한다. 릴리가 올해 5월 발표한 3상에서 최고 용량 투여군의 80주 평균 감량률이 28.3%였다. 투약을 유지한 사람 기준이며, 전체 참가자 기준은 25.0%다.

릴리는 7월 추가 3상 결과도 내놓고 내년 1분기 FDA 허가 신청을 계획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한미약품이 지방은 줄이고 근육량은 늘리는 후보물질 HM17321의 미국 임상 1상을 진행 중이며, GLP-1 제제 에페 연내 출시를 준비 중이다.

◇끊으면 돌아온다…남은 숙제

숙제도 있다. 약을 끊으면 체중은 되돌아온다. 세마글루타이드 임상 참가자들은 투약과 생활습관 관리를 함께 멈춘 뒤 1년 만에 줄인 체중의 3분의 2를 되찾았다. 올해 5월 란셋에 실린 티르제파타이드 임상에서는 위약으로 바꾼 환자의 67%가 감량분의 절반 이상을 되찾아 약을 다시 맞았다. 용량을 5㎎으로 낮춰 유지한 환자는 25%, 최고 용량을 유지한 환자는 8%였다.

미용 목적 처방 등 오남용과 부작용 우려도 계속 나온다. 가장 흔한 부작용은 메스꺼움·구토 같은 위장관 증상이다. 랜싯 임상에서도 대부분 경증~중등도였고 용량을 올리는 시기에 몰렸다.

장형우 분당서울대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는 “비만은 대사 균형이 무너진 질환이고, 비만치료제를 통한 약물 요법은 이제 여러 증거를 기반으로 표준 치료의 일부로 편입되기 시작했다”며 “흔히 거론되는 위장관 이상반응은 대부분 새로 투약을 시작하거나 용량을 늘릴 때 집중되고 시간이 지나며 줄어드는 패턴을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고도비만을 방치하면 심뇌혈관질환과 암 발생 등 다양한 건강 문제를 겪게 되고 기대 수명이 크게 단축된다”며 “앞으로 계속 발표될 연구 결과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비만약은 과도한 우려보다 적절한 적응증에 잘 처방할 필요가 있는 약”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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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보는 GLP-1 치료제 핵심 요약표.

임중권 기자 lim9181@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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