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신업계가 보이스피싱 피해를 통신사도 분담해 배상해야 한다는 금융권 주장에 대해 불법 감청·검열을 강요하는 것과 다름없다며 정면 반박했다. 금융사 무과실 배상책임을 골자로 한 법개정 논의 과정에서 금융권이 제기한 통신사 책임론에 선을 그은 것이다.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는 30일 입장자료를 내고 “통신은 보이스피싱의 원인이 아닌 정보 전달 경로일 뿐”이라며 “배상책임과의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국회 정무위원회에는 전기통신금융사기 발생 시 과실이 없더라도 금융회사가 피해금 전부 또는 일부를 배상하도록 하는 통신사기피해환급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금융권은 대포폰 개통 등 범죄가 통신망을 거쳐 이뤄지는 만큼 금융사에만 배상 책임을 지우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주장해왔다.
KTOA는 통신비밀보호법상 통신사가 통화·문자 내용을 확인하는 것이 금지돼 보이스피싱을 식별·차단하는 것 자체가 제도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통신사에 대한 무과실 배상책임 주장은 보이스피싱 범죄 예방을 위해 통신사에 불법 감청과 검열을 강요하는 것과 다름 없다는 항변이다.
협회 측은 “렌터카가 범죄에 쓰였다고 렌터카 업체와 도로관리기관에 배상을 요구하는 것과 같다”며, “같은 논리라면 스마트폰 제조사와 인터넷·SNS 플랫폼 사업자도 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반문했다.
해외에도 통신사에 무과실 배상책임을 부과한 사례는 없다고 강조했다. 2024년 10월 세계 최초로 피싱 배상 의무제도를 도입한 영국은 전화·문자·SNS 등 경로와 무관하게 피해자가 속아 직접 이체한 사기 전반에 대해 송금·수취 은행이 50대 50으로 배상하도록 했고, 통신사는 배상 주체에서 제외했다.
금융권이 근거로 드는 싱가포르 공동책임제도(SRF) 역시 규정 의무를 어긴 경우에만 책임을 묻는 과실책임 제도로, 적용 대상도 기관 사칭 문자메시지 피싱에 한정된다.
통신사는 발신번호 사전등록제, 국제전화 번호 변작 차단, 악성 URL 차단, AI 보이스피싱 탐지, 개통 시 안면인증 등 기술적 예방 조치를 시행 중이다. 범정부 대응으로 대포폰은 2024년 약 9만건에서 2025년 약 2만대 수준으로 줄었다.
KTOA는 “통신 비밀 보장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지키면서 보이스피싱 예방을 위한 기술적 조치와 범죄예방 및 수사를 위한 정부·금융권 공조에는 적극 대응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준호 기자 junho@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