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사물에 깃든 시간과 기억···이상용 개인전 '운명, 점 하나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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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여 형태 설치의 세부 모습 / 자료제공 갤러리끼

갤러리끼가 오는 10월 2일부터 12월 12일까지 경기 파주 갤러리끼에서 이상용 개인전 '운명, 점 하나의 시작'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삶에서 스쳐가는 만남과 이별, 오래된 사물에 축적된 시간과 기억을 운명이라는 시선으로 풀어온 이상용의 작업세계를 조명한다. 벼루와 상여, 악보, 드로잉 등 서로 다른 재료와 형식을 통해 개인의 기억과 삶의 관계가 어떻게 하나의 조형언어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준다.

이상용에게 운명은 이미 정해진 결말이 아니다. 자신에게 우연히 도착한 사물과 자연에서 발견한 작은 움직임, 사람과의 만남과 헤어짐, 작품이 관객에게 닿는 순간까지 삶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건을 운명의 일부로 바라본다.

찰나의 만남은 운명이다···점에서 선으로 이어지는 삶

전시 제목에 등장하는 점 하나는 이상용이 바라보는 운명의 출발점이다.

작가는 순간순간 찾아오는 만남을 하나의 점으로 본다. 수많은 점이 모이면 과거와 미래를 잇는 선이 되고, 다시 여러 선이 관계를 맺으면서 입체적인 삶과 운명을 형성한다. 개인의 현재와 기억, 앞으로 다가올 시간 역시 작품 안에서 분리되지 않고 서로 연결된다.

작품은 개인적인 기억을 기록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한 사람의 삶은 다른 사람과 사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고, 그 관계는 다시 보편적인 인간의 삶과 연결된다는 것이 작가의 시각이다. 관객 역시 작품을 매개로 자신의 만남과 이별, 기억을 돌아보게 된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자신 또한 누군가에게 찰나의 운명으로 다가간다고 설명한다. 작가에게 도착한 사물이 작품으로 다시 태어나고, 작업실을 떠난 작품이 관객을 만나면서 새로운 관계와 운명이 시작된다.

자연과 교감하며 오래된 사물의 시간을 다시 바라보다

이상용 작업의 바탕에는 자연과 함께했던 어린 시절의 경험이 자리 잡고 있다.

시냇가 조약돌과 바람, 나무, 자연의 소리를 접하며 새로운 형태를 만들었던 경험은 그의 예술적 감각을 형성한 근원이 됐다. 자연을 외부의 대상이 아닌 자신이 속한 세계로 바라보는 태도는 이후 오래된 사물과 오브제를 다루는 방식으로 이어졌다.

작가가 주목하는 것은 사물이 낡았거나 버려졌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누군가의 손을 거쳐 자신에게 도착하기까지 사물 안에 축적된 시간과 기억이다.

오래된 벼루와 길에서 발견한 쇠 조각, 테이프 등 서로 다른 사물은 작가의 기억과 결합하면서 새로운 관계를 형성한다.

미술평론가이자 예술철학박사인 안현정은 이러한 작업을 사물이 가진 본래의 존엄을 되살리는 과정으로 해석한다.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사물이라도 그 안에 담긴 존재와 시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이상용은 재료가 가진 오래된 결을 없애기보다 그 안에 축적된 흔적을 작품 속에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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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벼루 작업이 나란히 배치된 전시 전경 / 자료제공 갤러리끼

벼루···손때와 마모 속에 남은 기억의 매개

벼루는 이상용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대표적인 소재다.

안현정의 평론에 따르면 벼루 작업은 아버지의 붓글씨와 작가가 20대에 다녔던 서당, 명심보감을 반복해서 읽고 쓰던 경험과 맞닿아 있다.

한 획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반복해서 쓰는 경험은 선을 긋는 행위를 단순한 기술적 표현이 아닌 삶을 대하는 태도로 확장시켰다.

먹을 갈던 벼루는 작가의 손을 거치면서 누군가의 시간과 작가 자신의 시간이 만나는 작품으로 전환된다. 표면의 마모와 손때, 흔적은 제거해야 할 결함이 아니라 지나온 삶을 보여주는 기록이 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개별 벼루에 남은 서로 다른 흔적뿐 아니라 여러 작품이 한 공간에서 만들어내는 반복과 리듬도 살펴볼 수 있다.

악보와 상여···삶의 리듬에서 죽음 앞의 존엄까지

이상용이 2010년부터 이어온 운명 연작은 베토벤 교향곡 악보를 테이프 위에 옮긴 작업을 비롯해 상여와 벼루, 무수한 선으로 구성된 드로잉 등으로 확장됐다.

서로 다른 소재와 형식을 사용하지만 작품을 관통하는 질문은 만남이 인간의 삶에 무엇을 남기는가에 맞춰져 있다.

악보 작업에서 음표는 음악을 기록하는 기호인 동시에 사람의 실루엣과 군중의 희로애락, 만남과 이별을 연상시키는 조형 요소가 된다. 악보를 옮기고 선을 반복해서 긋는 손의 노동은 소리를 시각적인 흔적으로 전환하고 개인과 여러 사람의 삶이 중첩되는 장면을 만들어낸다.

상여를 활용한 설치작품은 죽음을 삶과 단절된 끝으로 다루지 않는다. 안현정은 상여를 죽음 앞에서 인간이 마지막으로 마련한 예의의 형상이자 삶의 평등과 존엄을 돌아보게 하는 매개로 해석한다.

상여 형태의 설치와 주변의 인물 조형은 오래된 사물이 가진 물성과 인간의 존재를 한 공간에서 마주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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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여 형태의 설치와 주변 인물 조형이 함께 놓인 전시 전경 / 자료제공 갤러리끼

선에서 선으로···반복되는 노동이 만드는 작업의 윤리

안현정은 이상용의 작업을 선을 긋는 선 線에서 선함을 뜻하는 선 善으로 이어지는 과정으로 해석한다.

여기서 선은 대상을 표현하는 단순한 조형 수단이 아니다. 작가의 마음이 지나간 흔적이자 사물과 세계를 대하는 태도다. 한 획을 정직하게 긋고 버려진 사물을 존중하며 반복되는 손의 노동을 지속하는 행위가 작업의 윤리와 연결된다.

낡은 벼루를 다시 다듬고 오래된 목재의 표면을 어루만지며 반투명 테이프 위에 악보를 옮기는 작업 역시 사물에 축적된 시간을 드러내기 위한 과정이다.

안현정은 이를 단순히 한국적 소재의 외형을 활용하는 작업을 넘어 자연의 기운과 손의 노동, 삶의 실천을 통해 한국성을 탐구하는 작업으로 바라본다.

이상용이 지금까지 제작한 작품은 1만2000여점에 이르고 작업 과정을 기록한 노트도 500권이 넘는 것으로 전해졌다. 회화와 조각, 설치, 드로잉, 오브제를 넘나드는 다양한 형식은 작가가 세계와 만나며 남긴 흔적이라는 하나의 질문으로 모인다.

갤러리끼에서 만나는 하나의 작업세계

이번 전시는 특정 재료나 장르에 한정하지 않고 이상용의 작업세계를 폭넓게 보여준다.

상여를 활용한 설치와 여러 점을 함께 구성한 벼루 작품, 조밀한 선과 흔적, 인물 형상이 중첩된 평면 작품 등이 한 공간에서 관객을 만난다.

서로 다른 형식의 작품을 함께 배치해 개별 작품의 소재를 넘어 이상용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만남과 시간이라는 주제를 드러낸다.

오래된 사물을 대하는 태도와 반복적으로 선을 긋는 수행적 작업, 개인의 기억과 공동체의 삶을 연결하는 방식도 이번 전시에서 함께 살펴볼 수 있다.

10월 2일 전시 첫 순간 함께하는 오프닝 리셉션

이광기 갤러리끼 대표는 이번 전시에 대해 삶에서 스쳐가는 만남과 이별, 오래된 사물에 깃든 시간과 기억을 운명이라는 시선으로 풀어낸 이상용의 작품세계를 소개하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오프닝 리셉션은 전시 개막일인 10월 2일 오후 5시부터 9시까지 열린다.

전시는 12월 12일까지 경기 파주시 회동길 521-2 갤러리끼 파주에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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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용 개인전 '운명, 점 하나의 시작'이 오는 10월 2일부터 12월 12일까지 경기도 파주 갤러리끼에서 열린다. / 자료제공 갤러리끼

작가 이상용

이상용은 1970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났다. 뉴욕과 서울 등 국내외에서 개인전과 그룹전을 통해 작품을 선보였다. 2013년 뉴욕 Waterfall Gallery 개인전을 비롯해 2019년 갤러리 그림손 기획초대전, 2024년 갤러리 전 개인전, 2025년 아트뮤지엄 려 특별전 등에 참여했다. 2019년에는 파주 Studio KKI에서 감성빈과 2인전 'LINK'를 개최했다.


소성렬 기자 hisabisa@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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