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택 교수의 D-엣지] 비전을 외치는 리더, 변화를 만드는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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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비전 선포식이 끝나고 조명이 꺼진다. 무대에서는 인공지능(AI)이 조직의 미래를 바꿀 것이란 리더의 선언이 이어졌지만, 자리로 돌아온 구성원들은 여전히 궁금하다. “그래서 나는 지금부터 무엇을 해야 하지?” 인공지능전환(AX)을 선언한 조직이 마주한 문제는 비전의 부재가 아니라, 비전을 구체적인 일로 바꾸는 콘텐츠의 부재다.

AI가 산업과 기술, 기업과 개인의 경계를 빠르게 허물고 있다. 반도체는 데이터센터와 전력산업으로 연결되고, 제조업은 로봇과 피지컬 AI로 확장된다. 금융에서는 AI가 고객 접점과 자산관리의 방식을 바꾸는 가운데, 디지털화폐와 자산의 토큰화가 금융 질서까지 재편하고 있다. 익숙한 경험과 오래된 성공 방정식만으로는 조직의 미래를 설명하기 어려운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불과 2~3년 전까지 강조되던 DX를 넘어 AX라는 새로운 과제를 조직에 던지고 있다. DX가 업무와 서비스를 디지털로 전환하는 일이었다면, AX는 그 기반 위에서 AI를 활용해 일하는 방식과 의사결정, 조직문화와 구성원의 역할까지 다시 설계하는 과정이다.

그런데도 적지 않은 리더가 새로운 시대의 언어를 빌려 과거의 방식으로 조직을 이끈다. AI와 혁신, 대전환을 외치지만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포기할지는 결정하지 않는다. 큰 방향은 제시하면서도 사업과 예산, 책임과 일정은 구성원의 몫으로 남겨둔다. 구체적인 콘텐츠가 뒷받침될 때 비전은 비로소 실행의 추진력을 얻는다.

이러한 간극은 기업의 현장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임직원에게 생성형 AI를 제공하고 교육 횟수를 늘렸다고 AX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업무 전반에서 AI와 사람이 맡을 역할을 구분하고, 의사결정과 책임의 구조를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 고객에게 어떤 효용을 주는지, 기존 시스템과 업무체계에 어떻게 연결할지, 어디에서 새로운 가치와 수익을 만들 것인지를 보여줘야 한다. 이것이 리더가 채워야 할 콘텐츠다.

공공조직도 마찬가지다. 위원회를 만들고 전담부서를 신설하며 규제를 바꾸면 정책의 외형은 어느 정도 갖출 수 있다. 그러나 민원 처리시간이 얼마나 줄었는지, 복지 사각지대를 얼마나 정확하게 파악했는지, 지역기업의 기술 실증이 실제 매출과 일자리로 이어졌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면 정책은 그럴듯한 허울에 불과하다. 미래도시를 선언하는 것보다 시민이 체감할 단 한 가지 변화를 완성하는 일이 어렵고도 값지다.

최근에는 정치와 행정에서도 선언보다 구체적인 성과로 말하는 리더십이 주목받고 있다. 그런 리더들은 거창한 슬로건보다 작은 성공을 먼저 만들고, 성과를 확인한 뒤 다음 단계로 확장한다. 미래를 많이 말해서가 아니라 오늘의 과제와 예산, 책임과 일정으로 미래를 구체화하기 때문에 시민은 이들을 신뢰하고 조직은 함께 움직인다.

물론 실행력은 리더 혼자 앞서가는 힘이 아니다. AI시대일수록 공감하고 듣는 능력, 구성원과 보폭을 맞추는 동행의 자세가 필요하다. AI가 답을 빠르게 내놓을 수 있지만 어떤 질문을 선택할지, 변화의 부담을 누구와 나눌지까지 결정해주지는 않는다. 구성원을 감동시키는 것은 언변과 비전이 아니라 자신의 말에 책임지는 모습이다. 신뢰는 선언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작은 약속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싹트는 법이다.

리더는 시대의 변화를 읽고,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들며, 구성원의 마음을 모아 끝내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 리더가 결정하지 않으면 구성원이 대신 해석해야 하고, 리더가 실행의 길을 만들지 않으면 조직이 시행착오의 비용을 떠안게 된다. 공감과 신뢰로 함께하되 구체적인 콘텐츠와 실행으로 길을 만드는 리더, AI 시대가 기다리는 사람은 바로 그런 리더다. 선언만 있고 변화가 없는 리더십에는 다음이 없다.

송민택 한양대 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 pascalsong@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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