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AI 반도체는 혼자 성장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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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주 모빌린트 대표

인공지능(AI) 반도체를 개발했다는 사실과 그 반도체가 고객의 제품에 쓰인다는 사실 사이에는 긴 과정이 있다. 필요한 모델이 실행돼야 하고, 디바이스와 소프트웨어가 연결돼야 하며, 실제 업무를 수행하는 애플리케이션이 완성돼야 한다. 마지막에는 고객이 운영할 수 있고 구매할 이유가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남아야 한다.

반도체와 디바이스, 엣지 AI 모델, SDK·런타임, 산업별 소프트웨어와 애플리케이션은 이 과정에서 서로가 필요하다. 어느 한 기업의 기술이 좋아졌다는 사실만으로 나머지 과정이 저절로 완성되지는 않는다. 좋은 칩은 산업의 출발점이지만, 수요로 이어지는 연결까지 갖춰야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다.

필자가 생각하는 AI 반도체 생태계는 참여 기업의 명단이 긴 생태계가 아니다. 한 기업이 만든 기술을 다른 기업이 실제 제품에 활용하고, 그 제품이 고객의 선택을 받아 다시 다음 기술에 투자할 수 있는 구조다.

출발점은 칩의 사용처를 찾는 일이 아니라 해결할 고객 문제를 함께 정하는 일이어야 한다. 제조기업과 현장 운영자가 필요한 기능과 운영 조건을 제시하고, 반도체 기업과 모델·소프트웨어 기업이 이를 구현할 방법을 함께 검토해야 한다. 이미 정해진 제품에 마지막으로 반도체를 끼워 넣는 방식보다 요구조건을 일찍 공유하는 편이 불필요한 개발과 재작업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이때 협력은 역할이 구체적일수록 실행력을 갖는다. 수요기업은 현재 겪는 문제와 기대 성과를 제시하고, 반도체 기업은 실행 가능한 모델과 성능·전력 조건, 지원 범위를 설명해야 한다. 모델 기업은 정확도와 자원 제약을 함께 검토하고, 솔루션 기업은 기존 업무와 시스템에 통합하는 방법을 설계해야 한다.

모든 기능을 한 기업이 제공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고객이 전체 시스템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역할이 빠지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평가 단계와 실제 운영 단계에서 누가 어떤 문제를 맡을지 정해져 있지 않으면 기술이 연결돼도 고객의 도입 판단은 늦어질 수 있다.

공공기관도 단순한 실증 장소가 아니라 해결할 문제와 운영 조건을 제시하는 수요 주체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 어떤 현장의 무엇을 개선할지, 누가 운영할지, 기존 시스템과 어떤 방식으로 연결할지를 먼저 정해야 한다. 그래야 실증의 결과가 실제 업무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판단할 수 있다.

엣지 환경에서는 제한된 메모리와 전력 안에서 필요한 정확도와 응답성을 확보해야 한다. 모델의 경량화와 양자화, 최적화를 하드웨어와 함께 검토해야 하는 이유다. 반도체와 모델을 각각 개발한 뒤 마지막에 맞추려 하면, 실제 적용 단계에서 예상하지 못한 제약을 만날 수 있다.

개발자가 이를 활용하는 과정도 중요하다. 모델을 변환하고, 실행 결과를 확인하고, 장비에 배포하는 절차가 이해하기 쉬워야 한다. 기술 문서와 예제, 오류를 확인하는 수단, 지원 범위가 갖춰져야 파트너가 자신의 제품 개발에 집중할 수 있다. 반도체 기업에게 소프트웨어는 부가 기능이 아니라 고객이 반도체를 사용할 수 있게 하는 핵심 제품이다.

산업을 아는 애플리케이션 기업의 역할도 빠질 수 없다. 품질검사와 설비 관리, 영상분석과 로봇의 문제는 서로 다르다. 모델의 출력이 현장의 어떤 행동으로 이어져야 하는지, 기존 업무와 어떻게 연결돼야 하는지는 산업의 맥락을 이해해야 설계할 수 있다.

따라서 협력 구조에는 기술 연동뿐 아니라 각 기업이 지속적으로 참여할 사업의 이유도 있어야 한다. 공동 개발의 범위와 비용, 유지보수 책임, 고객 지원의 역할을 정하고, 제품이 판매됐을 때 각자의 기여가 사업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활용 기업이 늘어날수록 더 많은 개발과 지원이 가능해지는 구조가 생태계의 지속성을 만든다.

연구개발과 실증은 중요하다. 다만 실증의 완료와 실제 도입은 같은 결과가 아니다. 제한된 환경에서 기능이 동작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에도, 고객에게는 운영 규모와 안정성, 유지관리 비용을 검토하는 과정이 남는다. 실증이 끝난 뒤 누가 무엇을 판단해야 하는지 정해지지 않으면 성과가 다음 단계로 이어지기 어렵다.

공공과 민간 모두 실증을 시작할 때 성공 기준과 후속 검토 조건을 함께 정할 필요가 있다. 필요한 성능이 충족됐을 때 어떤 추가 검증을 할지, 실제 적용을 검토할 부서는 어디인지, 운영 예산과 유지보수는 누가 검토할지를 명확히 하자는 것이다. 제품 탑재를 목표로 한다면 양산 전 확인해야 할 조건도 초기부터 다뤄야 한다.

이는 특정 기업의 채택을 미리 정하거나 국산이라는 이유만으로 구매를 보장하자는 제안이 아니다. 실제 운영 성능과 비용, 보안, 유지보수 조건을 확인하고 그 검증 결과가 후속 도입 검토에 활용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기술을 검증하는 과정과 고객이 도입을 판단하는 과정이 단절되지 않아야 한다.

정부와 산업계의 지원도 이 연결을 촉진할 필요가 있다. 반도체 연구개발, 모델 최적화, 소프트웨어, 디바이스 통합, 실증과 초기 도입을 각기 다른 성과로만 보지 말고 단계 사이에 무엇이 빠져 있는지 살펴야 한다. 연구 단계에서는 기술적 진전을 평가하되, 사업화를 목표로 하는 단계에서는 실제 제품 탑재와 운영, 반복 구매, 양산과 해외 확장도 함께 확인해야 한다.

반도체 기업 역시 생태계의 도움만 요구해서는 안 된다. 파트너가 개발하고 고객이 검증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며, 적용 과정에서 드러난 제약을 제품과 소프트웨어의 개선에 반영해야 한다.

대한민국에는 제조기업과 반도체 기업, 모델·소프트웨어 기업이 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을 별도의 산업으로 지원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함께 제품을 만들고 고객의 선택을 받을 수 있도록 연결하는 일이다. 우리가 만들어야 할 것은 또 하나의 기술 목록이 아니라, 기술이 실제 수요로 이어지는 성장의 구조다.

신동주 모빌린트 대표, dongjoo@mobilin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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