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0여년간 화폐를 찍어내며 국민 일상 속에 신뢰를 전해온 한국조폐공사도 디지털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전국 85개 지자체에서 사용하고 있는 모바일 지역사랑상품권 플랫폼 '착(chak)'이다.
지역사랑상품권은 소비자에게는 할인 혜택을, 소상공인에게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지역 경제의 효자다. 전국에서 활발히 쓰이는 이 결제 내역을 하나의 그림으로 모아본다면 과연 어떨까. 전국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961만 소상공인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결제 내역 데이터를 활용하면, 동네 어느 골목에서 어떤 업종이 장사가 잘되는지, 상권 활성화를 위해 어떤 정책을 펴야 할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훌륭한 '경제 지도'가 완성될 수 있는 것이다.
그동안 이 소중한 데이터 조각들은 여러 지역사랑상품권 운영 대행사별로 흩어져 있어 실질적인 활용이 무척 어려웠다. 이에 조폐공사는 흩어진 조각들을 하나로 모으는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전국 11개 대행사의 지역화폐 데이터를 한데 모아 누구나 쉽게 분석할 수 있도록 표준화해 정리해 낸 것이다. 그 결과 정성껏 다듬어낸 '지역화폐 통합데이터'는 가치를 높게 인정받아 행정안전부가 선정하는 2026년 인공지능(AI)·고가치 공공데이터 톱 100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이렇게 축적하고 정제한 가맹점 정보와 결제 통계 데이터는 공공데이터포털을 통해 누구나 무료로 쓸 수 있도록 개방했다. 공공 데이터가 민간의 기발한 아이디어, AI 기술과 만나면 삶을 바꾸는 혁신적 서비스로 태어난다. 창업을 꿈꾸는 청년에게는 어느 동네에 카페를 차려야 할지 상권을 분석해 주는 훌륭한 길잡이가 된다. 지자체는 과거의 관행에서 벗어나, 정확한 통계를 바탕으로 예산을 투입하는 '데이터 기반 행정'을 비로소 실현할 수 있다.
이런 조폐공사 혁신은 다양한 방면으로 일상 곳곳으로 스며들고 있다. 화폐 제조 과정에서 발생해 버려지던 부산물들을 소각하는 대신, 돈 볼펜이나 돈방석 같은 매력적인 친환경 화폐 굿즈로 재탄생시켜 자원 순환의 가치를 실현했다. 또, 지갑 속 신분증을 스마트폰으로 옮겨온 모바일 운전면허증을 통해 위조와 도용 위험을 원천 차단하며 가장 안전한 디지털 신원 인증 시대를 열었다. 전통적인 제조 공기업의 낡은 틀을 벗고 정보통신기술(ICT) 기반 혁신 플랫폼 기업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쓰는 지폐를 밝은 빛에 비추어 보면, 위조를 막기 위한 정교한 숨은그림이 나타난다. 이는 누구나 안심하고 믿고 쓸 수 있는 화폐를 만들겠다는 무언의 약속이다. 다가오는 디지털 시대에도 이 본질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투명하게 개방된 데이터와 안전한 디지털 신분증은 우리 사회를 더 공정하게 만드는 새로운 신뢰의 상징이다. 앞으로도 데이터와 기술로 국민의 삶을 이롭게 하는 '디지털 신뢰 플랫폼'으로 힘차게 도약해 나갈 것이다.
성창훈 한국조폐공사 사장 chsung0927@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