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수업, 스타트업 자문에서 팀 프로젝트 발표를 받아 보다 잠시 멈칫했다. 절반이 넘는 팀이 중국산 오픈웨이트 모델을 베이스로 쓰고 있었다. 이유를 물으니 답은 한결같았다. 가중치를 내려받아 자기 데이터로 고칠 수 있고, 추론 비용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진영 논리가 아니라 공학적 선택이었다.
현장에서 본 이 장면은 중국 AI 산업 전략을 압축해 보여준다. 우리는 이 현상을 '중국이 성능을 따라잡았는가'라는 순위표 문제로 읽는다. 그러나 중국이 다투는 것은 벤치마크 등수가 아니다. 전 세계 개발자가 무엇 위에 올라타 만들 것인가, 그 바닥을 차지하는 싸움이다. 중국은 모델이 아니라 스택을 팔고 있다.
중국 공업정보화부에 따르면 2025년 중국 AI 핵심 산업 규모는 1조2000억위안을 넘어섰다. 같은 부처는 AI 분야에서 지금까지 약 200건 핵심 표준을 제정했다고 밝혔다. 규모보다 눈여겨볼 것은 뒤의 숫자다. 표준을 만든다는 것은 남이 자기 규격을 따르게 만들겠다는 선언이기 때문이다. 대형 모델 다운로드 수에서 세계 1위라는 자평도 같은 맥락에 놓인다.
투자 성격도 달라졌다. 올해 중국 주요 기술기업 AI 투자액이 6000억위안, 우리 돈 120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연구개발비가 아니라 설비 투자에 가까운 규모다. 중국 AI는 실험실을 떠나 산업 고정자산이 되고 있다.
지표는 분명하다. 모델 라우팅 플랫폼 오픈라우터 기준으로 올해 5월 실제 처리된 토큰 60%가량이 중국 오픈웨이트 모델이었다. 2023년 말 이후 세계에서 새로 만들어진 파생 모델의 70% 안팎이 알리바바 큐원 계열이라는 집계도 나와 있다. 폐쇄형 모델은 이 파생 생태계에 애초 들어올 수 없다. 누구도 GPT나 클로드 가중치를 뜯어고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개방 범위다. 알리바바는 경량 모델은 계속 공개하면서 최신 상위 모델은 자사 클라우드와 챗봇 안에만 두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앞단은 열고 뒷단은 닫는다. 개발자는 무료 모델로 끌어들이고 수익은 폐쇄형과 클라우드에서 회수하는 구조다. 오픈소스는 선의가 아니라 산업정책 수단이다.
정부도 같은 방향으로 등을 민다. 올해 3월 중국 정부는 반도체·AI 분야에 최대 700억달러 규모 보조금을 발표했고 여기에는 AI 모델 기업도 포함된다. 간쑤·구이저우·네이멍구 같은 지방정부는 데이터센터 전기요금을 최대 절반까지 깎아 준다. 모델 기업 원가 구조 자체를 정책으로 낮춰 주는 셈이다.
딥시크는 네이멍구에 짓는 데이터센터에 화웨이 어센드 950DT를 16만장 규모로 투입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주목할 지점은 용도다. 학습이 아니라 추론이다. 이 칩에는 화웨이가 자체 개발한 HBM이 실린다. 중국 메모리 자급률은 2020년 5% 미만에서 올해 35% 안팎까지 올라온 것으로 집계된다.
인프라 층은 이미 국가 단위로 묶여 있다. 2022년 국가 전략으로 공식화된 동수서산 프로젝트는 8대 허브 노드와 10개 데이터센터 클러스터로 구성되며, 이 인프라에서 AI 연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80%를 넘어섰다. 중국이 구축한 스마트 컴퓨팅 클러스터는 42개, 지능형 연산 규모는 1882엑사플롭스(EFLOPS) 수준으로 알려진다. 제15차 5개년 계획은 전국 일체화 컴퓨팅파워 네트워크를 아예 문서에 명문화했다.
모델과 칩, 전력과 네트워크가 하나의 설계도 위에 올라가 있다는 뜻이다. 미국이 수출 통제로 상단을 조이는 동안 중국은 하단부터 자기 규격으로 다시 깔았다. 통제가 막은 것은 속도였고, 바꾼 것은 경로였다.
화웨이가 자체 HBM을 실제 제품에 얹었다는 사실은 별도로 기록해 둘 만하다. HBM이 존재하는 단계를 넘어 제품에 탑재되는 단계로 들어섰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다만 양산 능력과 수율, 실제 공급량은 여전히 공개되지 않았다. 지금 판단할 수 있는 것은 방향이지 속도가 아니다.
흥미로운 것은 중국 AI 반도체 시장 내부 경쟁이다. 엔비디아 최상급 칩 공급이 막히면서 화웨이는 500억달러 규모로 추산되는 자국 AI 반도체 시장에서 절반가량 점유율을 확보했다. 그런데 그 독주가 흔들리고 있다. 알리바바와 바이두가 자체 AI 반도체를 개발해 점유율을 늘렸고, 여기에 딥시크까지 추론용 자체 칩 개발에 뛰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모델 기업이 칩까지 내려가는 수직계열화다. 추론 비용이 손익을 좌우하는 구조에서는 칩을 사는 쪽보다 만드는 쪽이 유리해진다. 물론 신중론도 있다. 최첨단 파운드리 공정을 확보하지 못하면 자체 칩을 중국 밖에 팔기는 사실상 어렵다는 지적이다. 내수에서는 통하지만 수출 상품이 되기는 아직 이르다는 뜻이다.
또 하나 놓치기 쉬운 점은 중국 AI가 한 기업 성과가 아니라는 것이다. 딥시크 이후 지푸와 문샷, 알리바바 큐원, 미니맥스가 비슷한 전략을 나란히 강화했다. 공개 모델로 개발자를 먼저 확보하고, 경량화와 증류로 추론 단가를 낮추고, 상위 모델은 클라우드에 남긴다. 서로 다른 회사가 같은 문법을 쓴다.
이들 강점은 단일한 천재적 발명이 아니라 스택 전체를 촘촘히 다듬는 실행력에 있다는 평가가 더 정확하다. 데이터 구성과 아키텍처 조정, 강화학습 구현처럼 성능을 좌우하는 요소를 하나씩 갈아내는 방식이다. 화려하지 않지만 누적된다. 제조업이 원가를 깎아 온 방식과 같다.
최근 중국전기통신연구원이 낸 보고서는 산업 초점이 어디로 옮겨갔는지 보여준다. 보고서는 중국 연간 토큰 소비량이 올해 10조개, 2030년에는 350조개를 넘어설 것으로 내다봤다. 앞으로 컴퓨팅 수요 8할을 추론이 차지하며 학습 수요를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도 함께 담겼다.
이것은 회계의 문제이기도 하다. 학습은 모델을 한 번 만드는 자본 지출이고, 추론은 누군가 쓸 때마다 발생하는 운영 비용이다. 중국 AI 산업 무게중심이 모델을 만드는 회사에서 에이전트를 배포해 토큰을 태우는 회사로 이동하고 있다. 딥시크가 단기 이익 대신 초저가 정책을 고수하는 것도 같은 계산에서 나온다. 마진을 포기하고 사용량을 사는 전략이다.
중국 AI 정책은 챗봇보다 공장에 가깝다. 국무원의 'AI+' 심화 실시 의견은 2027년까지 차세대 지능형 단말과 AI 에이전트 보급률을 70% 이상, 2030년에는 90%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수치 목표를 제시했다. 올해 1월에는 공업정보화부 등 8개 부처가 'AI+제조 특별행동'을 내고 2027년까지 산업용 AI 에이전트 1000개, 제조업 데이터세트 100개, 대표 적용 사례 500개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목표를 개수로 못 박는 방식이 중국답다.
로봇은 이 흐름의 하드웨어 축이다. 국제로봇연맹(IFR) 기준 2024년 전 세계 산업용 로봇 신규 설치 54%가 중국에 집중됐다. 공업정보화부는 올해 휴머노이드 완성품 생산량이 10만대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제15차 5개년 계획은 로봇과 피지컬 AI를 현대 산업 체계의 핵심으로 못 박았다. 모델에서 시작해 공정 데이터로, 다시 물리적 장비로 내려가는 경로가 정책 문서 안에 그려져 있다.
과장은 금물이다. 화웨이 칩 네 장이 엔비디아 한 장 수준이라는 자기 고백이 나왔을 만큼 연산 효율 격차는 두껍다. 최첨단 파운드리 공정 접근이 막혀 있는 한 칩 성능 곡선에는 천장이 있다. 규제가 일부 풀렸을 때 알리바바와 텐센트가 엔비디아 칩을 대량 주문한 사실은 현장 선호가 어디에 있는지 보여준다. 국산화는 정책 언어이고, 조달은 현장 언어다.
로봇도 마찬가지다. 휴머노이드는 여전히 개념검증에 가깝다. 대표 기업조차 자사 로봇 작업 효율이 사람의 절반 수준이라고 밝혔고, 유니트리 매출 70% 이상은 산업용이 아니라 연구·교육용에서 나온다. 생산 대수와 산업 현장의 실효는 아직 같은 말이 아니다. 정책 목표와 현장 성과 사이의 간극은 중국 AI 산업을 읽을 때 늘 함께 봐야 할 변수다.
그럼에도 방향은 분명하다. 중국은 모델을 열어 생태계 뿌리를 잡고, 그 위의 추론 인프라를 국산 칩과 국가 전력망으로 채우고, 그 위에서 토큰과 에이전트로 돈을 벌고, 다시 그 아래 공장과 로봇으로 내려간다. 네 개 층이 서로 다른 기업이 아니라 하나의 정책 문서에서 나온다는 점이 이 산업의 가장 큰 특징이다.
이 스택에서 아직 비어 있는 칸이 하나 있다. 신뢰다. 에이전트가 사람을 대신해 판단하고 호출하고 결제하는 순간, 누가 그 에이전트에 신원을 부여하고 권한을 제한하며 행위를 감사할 것인가가 남는다. 산업용 에이전트 1000개를 공장에 심겠다는 계획은 곧 통제해야 할 비인간 주체 1000종을 만들겠다는 말이기도 하다. 분산 신원과 검증할 수 있는 자격증명, 제로 트러스트, 비인간 주체에 대한 거버넌스가 채워야 할 자리다.
이미 AI 분야에서 표준 200건을 쌓아 둔 나라가 이 칸까지 자기 규격으로 채운다면, 그때는 어느 모델을 쓸지 고르는 문제가 아니라 누구의 규격을 따를지의 문제가 된다. 모델은 교체할 수 있는 부품이지만 신뢰 계층은 한번 깔리면 바꾸기 어렵다.
그래서 테크 차이나를 읽을 때 나는 세 가지를 본다. 오픈웨이트 점유율, 추론 인프라 국산화율 그리고 에이전트 표준 제정 속도다. 앞의 둘은 이미 숫자가 나와 있다. 승부는 세 번째에서 갈린다.
윤석빈 36KR 코리아 고문·트러스트커넥터 대표·서강대 AI·SW대학원 특임교수 seokbin7@gmail.com
김현민 기자 minkim@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