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필수의료의 한 축을 담당하는 의료법인이 공공기관에 준하는 규제를 받으면서도 정부의 재정 지원과 연구개발(R&D)·기술사업화에서는 '민간 사업자'로 분류돼 성장과 혁신의 사각지대에 놓였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공공병원을 새로 짓는 방식에만 의존하지 말고 기존 의료법인을 지역 필수의료와 의료 혁신의 기반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13일 대한의료법인연합회에 따르면 연합회는 의료법인에 적용되는 공적 규제와 재정 지원 간 불균형이 심화하고 있다고 보고 보건복지부에 제도 개선을 요청할 계획이다. 바이오·의료 벤처 설립과 기술사업화가 사실상 제한돼 의료법인이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의료법인 제도는 1973년 도입돼 비영리 재단법인을 기본 틀로 성장했다. 1989년 전 국민 건강보험 도입 이후 의료 수요가 급증하면서 급성기 종합병원과 지역거점병원, 요양병원, 전문병원 등으로 역할이 확대됐다. 현재 전국에서 약 1300개 의료법인이 국가 의료 공급망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의료법인이 겪는 가장 큰 문제는 국·공립병원에 준하는 규제를 받으면서도 재정 지원대상에서는 소외된다는 점이다. 의료법인은 의료법 제48조에 따라 설립과 해산은 물론 기본재산 처분이나 정관 변경에도 시·도지사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의료법 제50조에 따라 민법상 재단법인 규정도 준용된다. 법인 자산은 영구적으로 법인에 귀속되고 영리 추구도 금지된다.
반면 필수의료 시설비 지원이나 결손금 보전 등 정부 재정 지원에서는 민간 사업자로 분류돼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다. 공공적 역할과 의무를 요구받지만 이에 상응하는 지원은 받지 못하는 구조다.

연구개발과 기술사업화의 제약도 크다. 의료법인이 연구개발 활동을 확대하거나 의료 벤처를 설립할 수 있는 명확한 법적 근거가 없어 관련 사업에 나서기 어렵다. 대학병원이 산학협력단과 기술지주회사를 설립해 국가 연구과제를 수행하고 첨단 바이오 벤처 설립과 지분 투자 등에 나설 수 있는 것과 대조된다.
김철준 대한의료법인연합회 대외협력부회장(웰니스병원 원장)은 “병원 이사장이 사재를 투입해 운영을 이어가다 심각한 경영난에 빠져도 인수합병이나 병원 간 통합 운영이 불가능해 퇴로가 없다”며 “현행 제도에서는 의료법인의 폐업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역 바이오·헬스케어 창업기업들이 지역 의료법인과 협업을 원해도 자금을 투입할 수 없어 실질적인 협력이 어렵다”며 “다른 의료기관들이 인공지능(AI)에 투자하고 교원 창업과 기술사업화로 미래 성장동력을 마련하는 사이 의료법인의 미래는 불투명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의료법인연합회는 의료법을 개정해 의료법인도 산학협력 기반 연구개발과 의료 AI·바이오 벤처 설립,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사업화에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기술사업화로 얻은 수익을 의료서비스 고도화에 재투자하게 되므로 지역 의료 회복과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경영 한계에 도달한 의료법인이 다른 의료법인과 합병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의료법인 폐업이 응급·중환자 진료 중단 등 지역 의료 공백으로 이어지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다.
김 부회장은 “정부의 필수의료 지원 대책과 지역의료 혁신 사업에 의료법인이 국·공립병원과 동등한 주체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며 “정부 정책 거버넌스 참여를 확대하고 의료법 개정을 위한 입법 활동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의료법인은 뜻있는 의료인들이 사재를 헌납해 설립했지만 단순히 수익을 추구하는 민간병원으로만 여기는 시각이 여전하다”며 “전국 1300여개 의료법인의 응급실 운영, 중환자 치료 기여도, 의료취약지 필수의료 수행 실적 등을 데이터로 제시해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겠다”고 덧붙였다.
배옥진 기자 withok@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