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영국이 브렉시트를 선택한 지 10년이 됐다. 2016년 데이비드 캐머런부터 지난 7월 취임한 앤디 버넘까지 영국은 10년 사이 총리 일곱 명을 거쳤다. 1979년 마거릿 대처부터 캐머런까지 37년간 총리가 다섯 명이었던 것과 대조적으로, 2020년대 들어 취임한 총리의 평균 재임기간은 500일에도 못 미친다. 통제권을 되찾자며 유럽연합(EU)을 떠났지만, 정작 영국 정치는 나라의 진로를 안정적으로 이끌 힘을 잃었다.
성적표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국민투표 직후 우려했던 금융시장 붕괴나 대량 실업은 일어나지 않았다. 런던은 세계 금융 중심지의 위상을 지켰고, 법률 컨설팅 등 영국이 강점을 가진 서비스 수출도 선전했다. 이들 서비스는 상품처럼 세관과 검역을 거치지 않아 국경에서 받는 직접적인 영향이 작았다. 영국은 호주 뉴질랜드 인도와 새로운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었으며 포괄적 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도 가입했다. 이것만 보면 브렉시트가 영국 경제를 무너뜨렸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런데 질문을 바꾸면 얘기가 달라진다. 지금의 영국이 10년 전보다 가난해졌느냐가 아니라, EU에 남았다면 얼마나 더 성장했을지를 따져봐야 한다. 전미경제연구소(NBER)는 2025년 말 영국의 GDP가 EU에 남았을 경우보다 6~8% 낮고, 기업투자는 12~13%, 생산성은 3~4% 낮다고 추정했다. 이 손실은 어느 날 갑자기 닥친 게 아니다. 앞날이 불확실해지자 기업들이 투자를 미루고, 시간이 쌓이면서 서서히 나타난 결과다.
브렉시트의 피해는 상품무역에서 가장 컸다. 유럽개혁센터(CER)는 2022~2024년 영국의 대EU 상품 수출이 EU에 남았을 경우보다 16%, 수입은 14% 낮았다고 추정했다. 대EU 명목 수출액은 2019년 수준을 유지했지만, EU 역내 교역이 확대되는 동안 영국은 그 성장에서 뒤처졌다. 영국 관세청 통계를 보면 2019~2025년 비EU 상품 수출이 늘면서 EU 비중은 47%에서 42%로 낮아졌다. 비EU 수출 증가와 대EU 교역 손실이 동시에 나타난 셈이다. 더 눈여겨볼 대목은 줄어든 액수가 아니라 줄어든 품목의 수다. 영국 애스턴대 연구진은 브렉시트가 없었다면 있었을 상황과 비교해 영국이 EU에 수출하는 상품 종류가 53.8%나 줄었다고 추정했다.
역설적인 것은 영국과 EU가 무관세 협정을 맺었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무역이 줄어든 이유는 어제까지 국내 거래처럼 자유롭게 오가던 화물이 이제는 세관과 검역소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원산지를 증명하고 통관 서류를 새로 갖추고 제품 인증도 따로 받아야 했다. 관세는 0%가 됐지만 국경을 넘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은 오히려 늘었다. 이런 부담을 감당할 인력이 있는 대기업은 버텼지만, 주문량이 적은 중소기업은 수출을 접는 쪽을 택했다. 반대로 자동차부품이나 화학, 의약품처럼 영국과 EU 기업이 오랫동안 함께 생산한 분야는 비교적 잘 버텼다. 이미 얽힌 관계를 새로 짜는 비용이 국경 비용보다 컸기 때문이다.
지역별 충격도 다르게 나타났다. 영국 워릭대 연구진에 따르면 영국 대부분 지역에서 생산과 소득이 브렉시트가 없었을 경우보다 낮아졌다. 이런 흐름에서 유일하게 벗어난 곳이 북아일랜드다. 북아일랜드는 EU의 상품 규칙을 따르면서 EU 단일시장과 영국 시장 양쪽에 물건을 팔 수 있었다. 그 결과 다른 지역과 달리 경제적 손실을 비교적 작게 입었다. 두 시장 모두에 접근할 수 있는 위치가 오히려 강점이 된 것이다.
이민도 예상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EU 출신 근로자는 줄었지만 비EU권 유학생과 취업 이민자가 늘면서 브렉시트 이후 한동안 순이민은 오히려 크게 증가했다. 영국이 국경 통제권을 되찾아도 대학과 기업, 돌봄 현장에서 외국인을 필요로 하는 현실까지 바뀌지는 않았다. 영국은 독자적으로 규제를 정할 권한을 원했지만 현실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EU의 CE 인증을 대체할 자체 인증(UKCA)을 의무화하려 했지만, 기업들이 같은 제품을 두 번 검사받아야 한다고 반발하자 결국 대부분 공산품에서 CE 인증을 계속 인정하기로 물러섰다. 요즘은 EU와 농식품 검역 기준을 다시 맞추는 협상도 하고 있다. 영국이 EU규정 변화를 계속 따르고 분쟁이 생기면 EU 법원의 판단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 EU 회원국이었을 때는 그 규칙을 함께 만들었지만, 지금은 시장에 다시 접근하기 위해 자신이 정하지 않은규칙을 받아들여야 하는 입장이 됐다. 관계를 끊는 것은 혼자 할 수 있지만, 되돌리는 것은 상대의 동의가 있어야 가능하다.
결국 영국은 혼자 결정할 권한을 얻은 대신 가장 가깝고 큰 시장을 자유롭게 드나들 권리를 잃었다. 멀리 떨어진 새 시장의 수출은 늘었지만 EU와의 장벽이 만든 비용까지 없애지는 못했다. 무역은 협정을 몇개 맺었느냐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시장이 얼마나 크고 가까운지, 공급망이 얼마나 오래 얽혀 있는지가 기업의 선택을 좌우한다.
한국이 읽어야 할 대목은 다변화의 순서다. 미국의 관세 압박과 미중 갈등이 커지면서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을 줄이는 일은 필요하다. 그러나 대체할 시장과 조달처가 자리 잡기 전에 기존 연결부터 약화시키면 위험은 줄지 않고 선택지만 좁아진다. 브렉시트는 오랫동안 쌓아 온 시장과 공급망이 새로운 협정 몇 개로 단기간에 대체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한국이 택할 길은 기존 관계를 끊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시장을 공통의 통상 규칙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CPTPP 가입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CPTPP가 미국이나 중국 시장을 대신해 주는 것은아니다. 하지만 회원국에서 조달한 재료와 부품을 합산해 원산지를 인정받고, 간소한 통관 절차와 공통 규칙을 활용할 수 있다. 전담 인력과 해외법인이 없는 중소기업일수록 이런 제도의 도움이 크다. 기존 시장과 공급망을 지키면서 새로운 시장으로 가는 길을 더하는 것이 통상 다변화다.
혼자 정할 권한이 커진다고 협상력까지 커지는 것은 아니다. 영국은 독자 규제를 만들 권한을 얻었지만 EU 규칙을 함께 만드는 자리는 잃었다. 전략적 자율성은 혼자 버티는 고립이 아니라 여러 관계 중에서 고를 수 있는 힘이다. 우호국과 뜻을 맞추고 함께 규칙을 만들 때 선택의 폭도 넓어진다.
브렉시트를 낳았던 지역 격차와 생활수준 정체는 EU를 떠난 뒤에도 풀리지 않았다. 국내의 생산성 문제와 산업 간 격차는 바깥과의 단절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브렉시트 10년이 남긴 교훈은 개방이 항상 옳다는 게 아니다. 국경을 높이기 전에 그 너머에서 잃게 될 시장과 투자, 함께 규칙을 만들 힘까지 미리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KITA)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
〈필자〉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KDI 국제정책대학원과 미국 UC 샌디에이고에서 수학 후, 건국대에서 무역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2년 한국무역협회 입사 이래 통상연구실장, 동향분석실장 등을 역임했고,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워싱턴 지부장을 지내는 등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무역·통상 전문가로 입지를 다졌다. 2025년부터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으로서 주요 통상 현안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고 한국 무역의 미래 전략을 제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