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택 교수의 D-엣지] 토큰증권법이 없는 미국이 시장을 바꾸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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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큰증권을 둘러싼 글로벌 자본시장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한국도 올해 초 전자증권법과 자본시장법을 개정해 내년 시행을 앞두고 있다. 다만 시장의 구체적인 모습을 결정할 시행령과 감독규정 등 후속 제도는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법으로 길을 텄다면 남은 과제는 어떤 시장을 설계할 것인가다.

최근 미국의 움직임을 보자. 토큰화의 영역이 부동산이나 미술품 같은 조각투자뿐 아니라 주식, 채권, 펀드 등 기존 금융자산과 자본시장 전반으로 확장되고 있다. 2026년 8월 미국 국채 등에 투자하는 토큰화 펀드 시장은 160억달러를 넘어섰고, 토큰화 주식 관련 시장도 약 28억달러 규모로 성장했다. 블랙록을 비롯한 대형 금융회사들도 토큰화 펀드와 담보자산 시장에 참여하고 있다. 물론 전체 자본시장에 비하면 작은 규모이지만, 토큰화가 전통 금융시장의 영역으로 진입하고 있다는 방향성은 선명하다.

특히 주목할 점은 미국 증권시장의 후선 인프라인 중앙예탁기관 DTC의 움직임이다. 이곳에는 114조달러가 넘는 증권이 보관돼 있다. 지난 7월 DTC는 30개 이상의 금융회사와 함께 국채와 주식뿐 아니라 증권대차, 환매조건부채권(Repo), 담보 이전 등 실제 환경에서 다양한 토큰화 거래를 검증했다. 오는 10월 토큰화 서비스가 본격화되면 토큰화의 무대가 월가의 핵심 인프라로 확대되는 셈이다.

이러한 변화를 수용하는 미국 방식은 한국과 사뭇 다르다. 한국은 2023년 정책당국의 제도화 방안 제시 이후 3년 만에 관련 법률을 개정해 토큰증권의 법적 통로를 마련했다. 반면 미국은 별도의 토큰증권법이 없다. 1933년 증권법과 1934년 증권거래법이라는 기존 법체계를 적용한다. 주식이 종이에 기록되든 블록체인에 기록되든 주식이라는 법적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기술중립 원칙을 따르고 있다.

미국은 여기에 증권거래위원회(SEC)의 해석과 비조치의견서(No-Action Letter), 거래소 규칙 변경 등을 활용한다. 실제 DTC는 SEC의 비조치의견서를 토대로 토큰화 서비스를 추진하고, 나스닥은 기존 증권을 토큰 형태로 거래할 수 있도록 관련 규칙을 바꿨다. 별도의 자산군으로 제도화하기보다 기존 주식과 채권의 권리는 유지하면서 거래와 결제 방식을 바꾸는 접근이다. 블록체인이 기존 자본시장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자본시장이 블록체인을 흡수하는 모습에 가깝다.

그렇다고 미국 방식이 반드시 낫다는 것은 아니다. 한국처럼 법률을 개정해 토큰증권의 법적 지위를 명확히 하면 투자자와 사업자의 예측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법제화 이후인 지금이다. 금융당국이 주식과 채권, MMF 등 기존 증권의 토큰화를 위한 로드맵을 마련하는 등 후속 제도를 정비하고 있다. 이제 시행령과 감독규정 등 세부기준을 조속히 확정해 시장에 명확한 신호를 줄 필요가 있다.

토큰증권을 바라보는 시야도 넓혀야 한다. 소액투자나 자산을 잘게 나눠 투자할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하지만, 변화는 그보다 크다. 증권의 발행과 거래, 결제는 물론 담보 활용까지 하나의 디지털 인프라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관련 제도 정비가 전제돼야 하지만, 스테이블코인 등 디지털 화폐와 결합하면 자산과 돈이 동일한 네트워크 안에서 움직일 수 있게 된다. 토큰증권의 본질이 자본시장 인프라의 변화에 가까운 이유다.

토큰증권 제도가 시행되는 내년 2월은 코앞이다. 주어진 숙제는 많다. 기존 증권의 토큰화와 온체인 결제를 위한 구체적인 청사진도 필요하다. 미국 사례에서 우리가 눈여겨볼 숫자는 DTC가 보관 중인 114조 달러다. 그 거대한 전통 자본시장의 인프라가 토큰화와 연결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법제화에서 한국은 늦지 않았다. 이제 경쟁력은 새로운 자본시장 인프라를 얼마나 빠르게 만들어내느냐에 달려 있다.

송민택 한양대 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 pascalsong@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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