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피지컬 AI의 성패는 '현실을 닮은 데이터'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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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석진 모빌테크 COO

가상에서는 완벽하게 달리던 로봇이 실제 현장에서는 몇m 못 가 멈춘다. 피지컬 인공지능(AI)을 개발해본 조직이라면 누구나 겪는 장면이다. 지난 6월, 정부가 '제조AI 2030 전략'에서도 물리법칙 기반 AI모델과 월드모델을 제조 피지컬 AI의 핵심 기반 기술로 꼽았다. 이는 결국 현실을 얼마나 정교하게 재현한 합성데이터를 만들어내느냐의 문제인 셈이다. 챗GPT 이후 언어 AI의 승부가 데이터에서 갈렸듯, 이제 정부도 물리 세계에서 움직이는 AI의 승부처가 데이터라는 점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피지컬 AI의 데이터 문제는 언어 AI보다 훨씬 까다롭다. 텍스트는 인터넷에 무한히 쌓여 있지만, 로봇이 학습할 '현실 속 변수'는 인터넷에 없기 때문이다. 악천후 속 교차로, 무단횡단하는 보행자, 조명이 꺼진 물류창고 등과 같은 상황을 실제 환경에서 반복적으로 학습시키는 것은 비용과 안전 측면에서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업계가 선택한 해법이 시뮬레이션, 즉 현실세계를 가상 공간에 정밀하게 재현해, 그 안에서 AI를 학습시키고 훈련시키는 방식이다. 엔비디아가 옴니버스와 코스모스 같은 시뮬레이션 플랫폼에 힘을 쏟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만 여기서 자주 간과하는 전제가 있다. 시뮬레이션의 가치는 얼마나 현실과 닮았는지에 비례한다는 점이다. 로봇이 가상에서와 달리 실제 현장에서 멈춰서는 이 현상은 대부분 가상과 현실의 미세한 차이, 이른바 '심투리얼 갭(Sim-to-Real Gap)' 때문이다. 도로의 경사, 노면의 반사, 센서의 오차 같은 물리적 디테일이 반영되지 않은 시뮬레이션은 화려한 게임 그래픽일 뿐, AI의 훈련장이 되지 못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데이터의 양이 아니라 품질이다. 현실을 세밀하고 정확하게 담아냈는지, 현실과의 오차를 얼마나 줄였는지가 좋은 데이터를 결정한다.

이는 곧 데이터 인프라의 문제로 이어진다. 현실을 정밀하게 측정해 가상 공간으로 옮기고, 그 오차를 정량적으로 검증하는 기반 기술 없이는 좋은 데이터도, 신뢰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도 존재할 수 없다. 실제로 모빌테크가 국방과학연구소와 수행한 사업은 이러한 접근의 사례다. GPS가 닿지 않는 터널이나 동굴 같은 비정형 환경을 정밀 측량해 디지털트윈으로 구현하고, 동일한 환경을 축소 테스트베드로도 구축해 시뮬레이션과 실제 로봇 주행 결과를 동일 조건에서 비교했다. 시뮬레이션이 현실을 얼마나 정확히 재현하는지를 정량적으로 검증한 것이다.

이 원리는 환경을 가리지 않는다. 정부가 한국 제조업의 자산으로 꼽은 반도체·자동차·조선 현장 역시, 그 복잡한 물리 환경을 얼마나 정밀하게 데이터로 옮기느냐에 따라 피지컬 AI의 훈련장이 될 수도, 그러지 못할 수도 있다.

피지컬 AI 경쟁은 이제 시작이다. 모델은 공개되고 하드웨어는 상향 평준화되고 있다. 결국 격차는 누가 더 현실에 가까운 데이터를, 더 빠르고 저렴하게 만들어내느냐에서 벌어질 것이다. 언어 AI 시대에 데이터를 모으지 않은 조직이 뒤처졌듯, 피지컬 AI 시대에는 현실을 데이터로 옮기는 인프라를 갖추지 못한 산업이 뒤처진다.

한국의 강점은 여전히 현장에 있다. 반도체 팹(Fab), 자동차 생산라인, 조선소 도크(Dock) 세계 어느 나라보다 밀도 높은 제조 현장이 이미 국내에서 돌아가고 있다. 관건은 이 현장을 얼마나 정밀하게 데이터로 옮겨내느냐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큰 AI 모델이 아니다. 결국 피지컬 AI의 성패는 현실을 가장 정확하게 닮은 데이터를 만들어내는 인프라에 달려 있다.

용석진 모빌테크 COO chase.young@mobiltech.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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