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F 스타트업 이야기] 〈93〉디지털 전환 시대, '동네 돌봄 인프라' 지역아동센터가 가야 할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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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진 글로벌청년창업가재단 사무총장·경영학 박사

인공지능(AI)과 첨단 기술이 산업과 일상을 집어삼키는 디지털 대전환의 시대다. 교육의 형태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스마트 기기를 활용한 디지털 교과서가 도입되고 AI 맞춤형 학습 솔루션이 교실을 채운다. 그러나 화려한 기술 진보의 뒤편에는 여전히 그 온기가 미처 닿지 못하는 어두운 그늘이 존재한다. 바로 부모의 부재나 경제적 여건으로 인해 방과 후 홀로 남겨지는 아동들의 '돌봄 사각지대'다. 아무리 뛰어난 AI 학습 프로그램이 개발된다 한들, 당장 저녁 한 끼를 걱정하거나 방과 후 안전하게 머물 공간이 없는 아이들에게 디지털 교육은 그림의 떡일 뿐이다.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이를 뒷받침할 인간 중심의 촘촘한 사회적 안전망이 더욱 절실해지는 이유다.

이러한 돌봄의 최전선에서 지난 수십년간 아이들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준 공간이 있다. 바로 전국 읍·면·동 구석구석에 뿌리내린 '지역아동센터'다. 지역아동센터의 역사는 1970~1980년대 도시 빈민가와 농산어촌에서 소외된 아이들을 품어주던 민간의 자발적 '공부방'에서 시작되었다. 민간의 따뜻한 헌신으로 씨앗을 뿌린 공부방은 2004년 아동복지법 개정을 통해 비로소 제도권 아동복지시설로 거듭났다. 법제화 당시 890여 개소에 불과했던 센터는 2024년 말 기준 전국 4206개소로 늘어났으며, 매일 11만명이 넘는 아동들에게 보호·교육·문화·급식 등 종합적인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아동 돌봄 인프라로 성장했다.

오늘날 지역아동센터가 안고 있는 사회적 책무는 과거보다 훨씬 복합적이고 다층적이다. 단순한 방과 후 학습 지도를 넘어, 저출생과 양극화 심화에 따른 새로운 사회적 위험에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전체 이용 아동 중 다문화 가정 아동의 비율이 23.4%(2만4000여명)에 달하고, 경계선 지능 아동이나 야간 돌봄이 필요한 맞벌이·한부모 가정이 급증하면서 현장의 돌봄 수요는 더욱 세분화되고 전문화되고 있다. 이에 맞춰 사단법인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전지협)를 중심 축으로 한 민간 현장은 밤 10시, 12시까지 이어지는 야간 돌봄을 확대하고, 방학 중 결식 예방 급식 지원, 경계선 지능 아동 맞춤형 통합 지원, 노후 환경 개선 등 시대적 요구에 발맞춘 변화를 끊임없이 모색해 왔다.

여기서 관건은 지역아동센터가 지닌 '지역 밀착형 인프라'로서의 가치를, 어떻게 첨단 산업의 자원과 접목해 지속가능한 모델로 발전시키느냐다. 아무리 훌륭한 복지 정책과 IT 교육 인프라를 기획하더라도, 이를 현장에서 아동 개개인에게 전달할 물리적·인적 거점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근린생활시설과 주거지 가까이에 위치한 4,200여 개 지역아동센터는 소외계층 아동의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를 해소하고 최신 IT 교육 기회를 평등하게 전달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라스트 마일(Last Mile) 복지 망'이다.

이러한 잠재력에 주목한 민간 혁신 주체의 행보도 눈에 띈다. 국내 최초의 민간 비영리 액셀러레이터를 표방하는 글로벌청년창업가재단(GEF)은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전국 2100여개 지역아동센터가 시민들의 소액 후원과 재단의 매칭 지원을 결합한 자립 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했다. 하루 1000원부터 후원할 수 있도록 진입 장벽을 낮추고, 유효 결제 1건당 재단이 동일 금액의 자립매칭금을 지원하며, 목표액에 못 미치더라도 후원금을 이월하고 금융데이터를 활용해 영수증·사후보고서 제출과 같은 행정 부담을 줄이는 방식이다.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팅 역량을 지닌 민간 재단이 핀테크형 소액 매칭 기부 모델을 아동 돌봄 현장에 접목한 이 사례는, 디지털 기술이 복지 인프라의 '지속가능성'이라는 또 다른 축을 어떻게 뒷받침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시도다.

그러나 현장의 현실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아동 인구 감소라는 파고 속에서도 아이 한 명 한 명에게 들어가는 돌봄의 밀도는 더욱 높아져야 하지만, 보조금 중심의 운영 구조와 종사자 처우 문제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이제는 국가와 지자체가 지역아동센터를 단순히 '취약계층을 위한 시혜적 공간'으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지역 사회 전체의 돌봄 안전망을 지탱하는 핵심 공공 인프라로 재인식하고 안정적인 예산 지원과 전문 인력 확충을 위한 법적·제도적 기틀을 더욱 공고히 해야 한다.

“아이 한 명을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첨단 AI 기술이 시대를 선도하는 2026년 오늘날에도 이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4200여개 지역아동센터라는 촘촘한 마을의 울타리가 튼튼하게 유지될 때, 비로소 우리의 미래인 모든 아이들이 환경에 굴하지 않고 평등한 기회 속에서 건강하게 꿈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민간의 자발적 헌신으로 시작된 돌봄의 역사가 이제는 국가와 사회의 당당한 책임 속에서 지속 가능한 미래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김병진 글로벌청년창업가재단 사무총장·경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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