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의 무대가 넓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AI가 데이터를 분석하고 정보를 제공하는 디지털 공간의 기술이었다면, 이제는 로봇·자동차·공장·물류 시스템과 융합해 현실 세계를 움직이는 '피지컬 AI(Physical AI)' 시대로 접어드는 중이다. AI가 인간의 질문에 답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며 산업 현장의 생산 방식과 경쟁 질서까지 바꾸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주요국 정부와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피지컬 AI를 미래 산업의 핵심 경쟁력으로 보고 있다. 미국은 세계 최정상의 AI·로보틱스 기술을 바탕으로 전 세계 투자가와 인재를 실리콘밸리에 쓸어 담으며 AI 산업을 선도하는 중이다. 이를 바짝 쫓는 중국의 AI 굴기는 전 세계가 두려워 할 정도다. 독일도 유럽 최대의 AI 연산 인프라 거점이 되겠다는 목표 하에 자동차·기계·화학 등 주력산업에 AI를 접목해 생산성을 높이고, 데이터센터와 고성능 컴퓨팅 시설을 확충하고 있다. 앞으로 국가 경쟁력은 AI 모델 자체의 성능을 넘어, 이를 실제 산업 현장에 얼마나 빠르게 적용해 세계 시장으로 확장하느냐에 좌우될 것이다.

한국은 피지컬 AI 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강점을 갖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업 기반과 정보통신기술(ICT) 인프라를 동시에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국가의 종합적 AI 경쟁력을 의미하는 AI 지수(AI Index)를 발표하는데, 한국은 38개 회원국 중 AI 역량·인프라 분야에서 2위, 정책 환경 면에서 3위로 높은 평가를 받은 바 있다. 반도체·자동차·조선·배터리 등 다양한 제조 산업 현장은 AI가 학습하고 성장할 수 있는 거대한 실험실이다. 현장에서 축적된 제조 데이터와 경험·노하우를 결집한 암묵지는 피지컬 AI 시대에 한국이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필수 자산이다.
정부가 피지컬 AI를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의 핵심 축으로 선정한 것도 이러한 가능성에 주목해서다. AI 로봇 분야를 글로벌 3강으로 끌어올리고, 피지컬 AI를 대체 불가한 국가전략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정책 방향은 국내 산업 전반의 AI 전환과 확장을 더욱 가속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뛰어난 기술과 산업 기반만으로 글로벌 주도권을 확보할 수는 없다. AI 산업의 성장은 본질적으로 국경을 넘어선 협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피지컬 AI 솔루션은 실제 산업 현장에서 얼마나 안정적으로 작동하는지가 경쟁력의 기준이 된다. 아무리 우수한 기술이라도 글로벌 기업과 현장에서 검증된 경험, 다양한 환경에서 축적된 데이터, 각국의 규제를 뚫고 세계 시장에서 범용성을인정받은 사례가 없다면 확산에 한계가 있다.
즉, 글로벌 연결과 협력이 AI 산업 발전의 기본 전제다. 피지컬 AI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반도체와 로봇, 센서와 플랫폼 기술이 결합하는 초융합 산업이다. 장기간에 걸친 연구개발과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며, 국가와 기업간 협력 생태계가 경쟁력을 좌우한다. 최근 '샌프란시스코 AI 서밋'에서 한국 기업들이 빅테크와 9500억달러 규모의 AI·반도체 분야 전략적 협약을 체결하며 'AI 동맹'을 재확인한 것처럼, 대한민국도 AI 패권을 향한 글로벌 협력의 한 가운데 있다.
한국의 기술·산업을 세계와 연결하는 접점에 KOTRA가 있다. KOTRA는 132개 글로벌 조직망을 기반으로 우리 AI기업들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수출, 투자, 인재유치, 기술협력 등 AI 산업의 글로벌화를 종합적으로 지원한다. AI 산업은 초기부터 해외 시장과 수요를 연결하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글로벌 파트너를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만큼, AI 정책 의지가 강한 주요국 정부, 글로벌 기업과의 접점 마련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6월 실리콘밸리에서 개최한 '2026 피지컬 AI 수퍼커넥트'다. 글로벌 AI 산업의 중심지에서 열린 이번 행사는 한국 AI 기업이 미국의 대표적인 빅테크 기업과 함께 미래를 논의하는 협력의 장이었다. 국내외 200여개사가 참여한 가운데 엔비디아(NVIDIA), 아마존(Amazon), 테슬라(Tesla), 구글(Google) 등 글로벌 첨단기업과 투자자가 한국과의 협력 가능성을 모색했고, 5백만달러 규모의 4D 이미징 레이더 계약 등 구체적인 사업 성과도 이어졌다.
해외 주요 시장과의 협력 기반도 넓히고 있다. 일본에서는 AI 기반 로봇·반도체·에너지 분야 협력을 위한 '한일 비즈니스 플라자'를 개최해 일본 대기업과 지자체, 투자기관과 국내 기업간 협력 기회를 확대했다. 동남아에서도 '한-아세안 AI시티·에듀테크 데이' '베트남 M.AX 이노베이션 데이' 등을 통해 성장 잠재력이 높은 시장과 우리 기업을 연결했다. 오는 10월에는 AI 전문 전시회를 통합한 'K커넥트(Connect) AI 2026'를 개최할 예정으로, 1000여개사의 해외 바이어가 방한해 글로벌 핵심 AI 공급망으로서의 한국 위상을 확인하고 미래 협력을 꾀할 것이다.
KOTRA는 AI 산업의 해외 진출 뿐 아니라 무역투자 지원 방식 자체의 혁신에도 힘을 쏟고 있다. 'AI 수출비서'는 기업이 수출 전략을 수립하고, 해외 시장 정보를 탐색하며, 적합한 바이어를 찾고 상담까지 이어가는 전 과정을 지원하는 지능형 무역투자 플랫폼이다. 그동안 해외 진출에 어려움을 겪었던 중소중견기업도 AI를 활용해 보다 쉽고 빠르게 세계 시장에 도전하는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전국 20개소의 'AI무역지원센터' 또한 지역 수출기업과 청년 인재들이 AI·디지털을 활용해 새로운 수출 기회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다. 지역의 우수한 기술·기업이 세계 시장과 연결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과정 자체를 AI로 전환함으로써, 공공기관 수출지원 서비스의 효용성은 높이고 기업의 수출 부담은 낮추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AI 3대 강국으로 가는 길은 바다를 넘어 우리 지도 바깥에 있다. 혁신적인 K-AI 기술이 수요처에 닿아 세계 시장에서 융합되며, 해외의 투자 자본과 인재가 국내 AI 생태계로 유입되면서 새로운 산업적 가치를 만들어내야 한다. 피지컬 AI가 현실 세계를 움직이는 기술이라면, 해외 수요와의 연결은 그 기술이 세계로 확산되는 동력이다. 우리 기업이 쌓아온 제조 역량과 기술에 AI가 접목돼 세계 산업 현장 곳곳에서 활용될 때, 비로소 대한민국은 'AI 글로벌 3강'으로 확고히 자리매김 할 수 있을 것이다.

강경성 강경성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코트라) 사장 kskang3@kotra.or.kr
〈필자〉경북 문경 출신이며, 1993년 37회 행정고시(기술직) 합격으로 산업자원부에서 공직에 입문했다. 30여년간 산업통상자원부, 지식경제부에서 무역통상·에너지 분야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대통령비서실 산업정책비서관에 이어 산업통상자원부 1, 2차관을 역임했다. 2024년 11월 코트라 사장으로 취임, 수출·투자유치와 더불어 경제안보 기관으로서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 2020년 홍조근정훈장, 2025년 산업정책연구원 한국경영대상을 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