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후위기 대응이 개별 국가 중심의 기술개발에서 국제 공동연구와 정책 연계로 빠르게 전환되는 가운데, 한국과 유럽 연구기관이 기후기술 분야 협력을 본격화한다.
국가녹색기술연구소(NIGT)는 21일(현지시간) 프랑스 툴루즈에서 열린 2026 유럽한인과학기술학술대회(EKC 2026)에서 프랑스 파리 생태·환경과학연구소(iEES-Paris)와 기후·생태기술 분야 협력 강화를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이번 협약은 단순한 연구자 교류를 넘어 공동 연구개발, 국제 연구과제 수주, 기후기술 평가체계 개발, 글로벌 실증사업 추진 등을 포괄하는 전략적 협력이다. 특히 한국이 유럽연합(EU)의 연구혁신 프로그램 호라이즌 유럽(Horizon Europe) 준회원국이 된 후 유럽 연구기관과의 공동 프로젝트 발굴이 본격화되는 시점에서 체결됐다는 점에서 한·EU 기후기술 협력의 새 이정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협약식에는 오대균 국가녹색기술연구소장과 장-크리스토프 라따 iEES-Paris 부소장이 참석해 협약서에 서명했다.
iEES-Paris는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를 비롯해 소르본대학교, 파리시테대학교 등 프랑스 주요 연구기관이 참여하는 기후·생태 연구 네트워크다. 생태계 모델링과 생물다양성, 기후변화 영향평가, 지속가능성 연구 분야에서 유럽의 다양한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으며, 과학적 연구성과를 정책으로 연결하는 연구 역량을 갖춘 기관으로 평가받고 있다.
국가녹색기술연구소는 이번 협약을 계기로 기후기술 정책 연구와 국제협력 경험을 바탕으로 유럽 연구기관과의 공동 연구를 확대하고, 글로벌 기후기술 협력 플랫폼 구축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양 기관이 가장 먼저 추진하기로 한 협력 분야는 차세대 기후기술 평가체계 개발이다. 기존 기후기술 평가는 기술 성능과 경제성 중심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번 공동연구에서는 사회적 수용성과 생태적 영향까지 함께 고려하는 새로운 평가 개념인 '기후인지감수성(Climate Cognitive Sensitivity)'개발에 착수한다.
기후인지감수성은 기후기술이 실제 사회와 산업 현장에서 얼마나 효과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정책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지를 분석하는 개념이다. 국가녹색기술연구소의 정책 기획 역량과 iEES-Paris의 수학·통계 기반 생태계 모델링 기술을 결합해 국제적으로 활용 가능한 평가 프레임워크를 구축한다는 것이 양 기관의 목표다.
이는 기술개발 중심의 기후테크 정책에서 나아가 기술의 사회적 파급효과와 생태적 지속가능성까지 함께 평가하는 새로운 접근이다.
양 기관은 EU 호라이즌 유럽 공동 참여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호라이즌 유럽은 총 955억 유로 규모의 세계 최대 연구혁신 프로그램으로, 기후변화 대응과 에너지 전환, 디지털 혁신 등을 핵심 분야로 추진하고 있다. 한국은 준회원국 참여를 계기로 유럽 연구기관과 동일한 조건에서 공동 연구를 수행할 수 있게 됐으며, 이번 협약은 이를 실질적인 공동 프로젝트로 연결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양측은 기후·생태 분야 국제 컨소시엄을 공동으로 구성하고 연구과제 공동 기획과 수주를 추진하는 한편,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기후 취약지역을 대상으로 지역 맞춤형 기후기술 실증사업도 함께 발굴하기로 했다. 연구자 상호 파견과 공동 세미나, 국제 워크숍 개최 등 연구협력도 지속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최근 국제사회에서는 기후기술의 경쟁력이 단순한 기술개발을 넘어 국제 표준과 정책, 시장으로 연결되는 협력 체계에서 결정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와 데이터 기반 기술이 기후정책과 접목되면서 국가 간 공동연구와 데이터 공유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이번 협약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국과 유럽 연구기관이 공동으로 기후기술 혁신과 정책 개발을 추진하는 협력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연구개발(R&D)을 넘어 국제 공동 프로젝트와 글로벌 기술 실증, 정책 연계까지 협력 범위를 확장함으로써 한·EU 기후기술 협력의 폭을 넓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오대균 소장은 “기후위기 대응은 어느 한 국가의 기술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글로벌 과제”라며 “이번 협약을 계기로 유럽 연구기관과 공동연구를 확대하고 호라이즌 유럽 공동과제 참여를 통해 한국 기후기술의 국제 경쟁력을 높여 나가겠다”고 말했다.
장-크리스토프 라따 부소장은 “기후변화 대응은 다양한 학문과 국가를 연결하는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양 기관의 연구역량을 결합해 기후기술과 생태 분야에서 새로운 국제협력 모델을 만들어 나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번 협약은 EKC 2026에서 논의된 다양한 기후기술 협력 의제를 실제 공동연구와 국제 프로젝트로 연결하는 첫 성과로 평가된다. 참석자들은 향후 호라이즌 유럽 공동과제와 글로벌 실증사업을 통해 한·EU 기후기술 협력이 연구실을 넘어 정책과 산업 현장으로 확대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이준희 기자 jhlee@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