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F 스타트업 이야기] 〈87〉우리는 이미 조금씩 세상을 고치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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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성룡 (재)글로벌청년창업가재단 상임이사(CFP)

사람들은 생각보다 착하지 않다. 그렇다고 생각보다 차갑지도 않다.

우리는 대부분 자기 하루를 버티며 산다. 아침에 늦지 않기 위해 서두르고, 일터에서 맡은 일을 해내고, 가족의 안부를 묻고, 카드값과 월세와 아이의 학원비를 계산한다. 뉴스를 보며 마음이 무거워지지만, 곧 다시 내 앞의 일을 해야 한다.

그래서 누군가 “세상을 바꾸자”고 말하면 조금 피곤해진다. 좋은 말인 건 알지만, 내 삶도 충분히 무겁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 있다. 우리는 세상을 바꾸겠다고 마음먹지 않았는데도, 하루 중 몇 번은 이미 '더 좋은 쪽'을 선택하고 있다.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고 “비닐봉지는 안 주셔도 돼요”라고 말할 때.

배달 음식을 주문하며 일회용 수저를 빼달라고 누를 때.

길에서 넘어진 사람을 보고 잠시 발걸음을 멈출 때.

엘리베이터 문을 잡아주고, 휠체어가 지나갈 수 있도록 한 걸음 비켜서고, 아이에게 “저 자리는 꼭 필요한 사람이 쓰는 자리야”라고 설명할 때.

누군가의 안타까운 모금 글을 보고 커피 한 잔 값도 안 되는 작은 금액을 쓱 보내보거나, 어떤 단체의 활동을 보며 '이런 일은 계속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우리는 그런 순간들을 대단한 일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사진을 찍어 남기지도 않고, 누구에게 자랑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 순간 마음이 쓰여서 한 행동일 뿐이다. 하지만 세상은 어쩌면, 바로 그런 작은 마음들 덕분에 가까스로 버티고 있는지도 모른다. 거창한 선언보다 작은 배려가 먼저 도착하는 곳, 큰 정책보다 누군가의 관심 하나가 먼저 필요한 사람. 이들은 완벽한 해결책보다 “나는 당신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겠다”는 신호가 더 절실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가 그런 마음을 너무 쉽게 흘려보낸다는 것이다. 좋은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니다. 지속될 수 있는 '길'을 찾지 못했을 뿐이다.

어디에 참여해야 할지 모르고, 내가 한 일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고, 한 번의 마음이 다음 행동으로 이어지는 길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다. 선한 마음도 길을 만나야 오래 간다. 관심도 연결되어야 자란다. 작은 참여도 다시 확인될 때 습관이 된다.

기부나 후원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를 돕는 일은 돈의 크기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내 마음이 어디에 닿는지 발견하는 과정이다. 어떤 사람은 아이들의 교육에 마음이 움직인다. 어떤 사람은 환경 문제 앞에서 멈춰 선다. 어떤 사람은 장애인, 노인, 청년, 동물, 지역 공동체, 전쟁과 재난을 겪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유독 마음이 머문다.

이 다름은 틀린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세상이 다양한 문제를 함께 풀어갈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이유다.

한 사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한 사람이 하나의 문제와 연결될 수는 있다. 오늘은 작은 금액으로, 내일은 짧은 응원으로, 또 어느 날은 누군가에게 그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으로 참여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거창함이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정도여야 한다. 부담스럽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다시 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렇게 이미 조금씩 세상을 고치며 살고 있다. 다만 그 행동들이 흩어져 있었을 뿐이다. 기록되지 않았고, 연결되지 않았고, 계속 이어질 수 있는 길을 충분히 만나지 못했을 뿐이다.

아주 작은 참여라도 괜찮다. 천 원이어도 괜찮고, 몇 초간의 짧은 관심이어도 좋다. 그 작은 행동이 누군가의 하루를 구하고, 현장의 활동가들을 버티게 하며, 또 다른 사람의 참여로 번질 수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작은 일이 아니다.

더 쉽고. 더 자연스럽고. 더 일상적.

우리 안에 이미 숨어 있는 다정한 마음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도록 징검다리를 놓아주는 방식이었으면 좋겠다. 많이 가진 사람이나 특별한 직업을 가진 사람뿐만 아니라, 스마트폰을 쥔 누구라도 세상의 문제에 자기만의 방식으로 가볍게 노크할 수 있는 그런 세상 말이다.

어쩌면, 우리 삶을 더 살만하게 만들기에는 그 정도의 마음이면 이미 충분하기 때문이다.

인류가 말하는 거창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라는 것도 실은 낯선 국제 문서 속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빈곤을 줄이고, 환경을 지키고, 불평등을 낮추는 그 모든 거대한 목표는 오늘 우리가 무심코 선택한 작은 배려와 후원, 그 연결 속에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함성룡 (재)글로벌청년창업가재단 상임이사(C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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