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분·제당·사조동아원·삼양사 등 7개사 역대급 과징금

국내 밀가루 시장의 90% 가까이를 점유한 제분업체들이 약 6년간 가격과 공급 물량을 짜고 올린 사실이 드러났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담합 사건 가운데 역대 최대 규모인 6710억원대 과징금을 부과했다. 정부의 밀가루 가격 안정 보조금을 받는 동안에도 담합을 이어간 정황도 확인됐다.
공정위는 대한제분·씨제이제일제당(CJ제일제당)·사조동아원·삼양사·대선제분·삼화제분·한탑 등 7개 제분사가 2019년 11월부터 2025년 10월까지 밀가루 공급가격과 공급 물량을 담합한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과 과징금 6710억4500만원을 부과했다고 20일 밝혔다. 검찰 고발도 이미 완료했다.
이번 담합은 라면·국수·빵·과자 업체에 공급하는 기업간거래(B2B) 시장 전반에서 이뤄졌다. 이들 7개사는 국내 B2B 밀가루 시장 점유율 87.7%를 차지하고 있다. 상위 3개사인 대한제분·CJ제일제당·사조동아원 점유율만 62%에 달한다.
담합은 농심 물량 경쟁에서 시작됐다. 2018년 대한제분이 농심 공급 물량을 대거 확보하자 경쟁사들이 할인 경쟁에 뛰어들었고, 이후 상위 업체 임원들이 식당에서 만나 “과도한 경쟁을 자제하고 적정 가격을 유지하자”는 공감대를 형성하며 담합이 본격화됐다.
이들은 총 24차례 가격과 물량을 합의했다. 농심·팔도·풀무원 등 대형 수요처 공급가격을 맞췄고, 중소형 거래처 대상 밀가루 가격도 함께 올렸다. 2021년 이후에는 밀가루 전 제품으로 담합 범위를 넓혔다.

구체적으로 2021년 10~11월에는 전 거래처 대상 밀가루 가격을 포대당 3000~4000원 인상하기로 합의했고, 2022년에는 농심 공급가격을 ㎏당 175원 올리기로 정했다. 반대로 국제 원맥 가격이 떨어진 뒤에는 가격 인하 폭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농심이 ㎏당 80원 인하를 요구하자 제분사들은 20원만 내리기로 합의한 사례도 적발됐다.
담합 과정에서는 공정위 조사를 피하려는 논의도 오갔다. 제분사 내부 회의에서는 “100% 공정위에 갈 수밖에 없다”, “시기와 폭을 조정해야 한다”는 발언이 나왔고 업체별로 가격 인상 시점을 나눠 실행하는 방안도 논의됐다.
하위 업체들은 상위 업체 결정에 편승했다. 삼화제분 관계자는 공정위 조사에서 “제분 3사가 먼저 가격을 올려주면 오히려 고마운 부분이 있었다”고 진술했다.
담합 효과도 컸다. 공정위에 따르면 2022년 9월 기준 밀가루 판매가격은 담합 이전인 2019년 12월보다 업체별로 최소 38%에서 최대 74%까지 상승했다. 특히 원맥 가격이 오를 때는 판매가격을 빠르게 인상하고, 원맥 가격이 내려간 뒤에는 인하 속도를 늦춘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 지원금을 받으면서도 담합은 이어졌다. 정부는 2022년 하반기 물가 안정을 위해 밀가루 가격 상승분의 80%를 지원하는 사업을 운영하며 총 471억원을 지급했다. 그러나 제분사들은 보조금 수령 시점 이전 가격 인상 방안까지 논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과징금은 사조동아원이 1830억9700만원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대한제분 1792억7300만원, CJ제일제당 1317억100만원, 삼양사 947억8700만원 순이다. 조사·심의 과정에서 협조한 업체에 대해서는 최대 20%까지 감경을 적용해 과징금액에 차이를 보였다는게 공정위 설명이다.
아울러 공정위는 이번 사건에 독자적 가격재결정 명령도 내렸다. 각 업체는 3개월 내 담합 이전 경쟁 질서를 회복하는 수준으로 가격을 다시 정해 공정위에 보고해야 한다. 향후 3년간 가격 변경 내역도 반기마다 제출해야 한다.
남동일 공정위 부위원장은 “국민 생활과 밀접한 식료품 담합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고 법 위반이 확인되면 엄중히 제재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공정위 제재에 따라 농림축산식품부는 담합 관련 업체를 정부 정책자금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고, 밀가루 가격 모니터링을 매월 실시하는 등 관리·감독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제분업체 경영안정자금은 밀 수입·제분 업체를 대상으로 운영되는 융자 사업이다.
한편 CJ제일제당측은 이번 공정위 제재와 관련해 “지난 1월 업소용 밀가루 가격을 4% 인하한 데 이어 2월에는 업소용·소비자용 전 제품 가격을 최대 6% 내리며 정부 물가안정 기조에 동참했다”고 설명했다.
박효주 기자 phj20@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