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에서는 삼성전자 성과급 갈등 사태 시발점을 SK하이닉스 노사 합의로 보는 시각이 다수다.
SK하이닉스 노사는 지난해 9월, 영업이익 10%를 초과이익분배금(PS) 재원으로 고정하고 기존 성과급 상한선(기본급 1000%)을 폐지하는 파격적 내용의 10년 장기 협약을 체결했다. 올해 직원 1인당 평균 6억원대 성과급이 예상되는 역대급 규모다.
재계 관계자는 “반도체 초호황이 만들어낸 파격 보상이 인접 산업군 노조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면서, 업황과 수익성에 무관한 임금 인상 압박이 경영 불확실성을 키우는 새로운 뇌관으로 떠올랐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13일 삼성전자 노사 사후조정이 결렬되면서 반도체 업종발 보상 갈등이 수면 위로 완전히 부상했다.
삼성전자 노조는 SK하이닉스 성과급 지급 기준을 핵심 비교 잣대로 내세우며 사측과 정면 충돌했다. 사후조정 결렬로 노사는 파업 등 강경 대치 국면에 접어들 가능성이 높아졌다.
SK하이닉스 성과급 충격이 국내 최대 제조업체로 전이된 셈이다.
◇자동차·플랫폼·통신·바이오 노조까지 “우리도 달라”...도미노 요구에 경영 불확실성 확대
SK하이닉스 성과급 구조는 국내 대기업 기준으로도 전례를 찾기 어렵다. SK하이닉스는 2월 2025년 PS로 기본급 2964%를 지급했다. 연봉이 6500만원인 사원급 직원은 전체 PS 80%인 약 7700만원을 받은 셈이다. 여기에 PI 등을 합친 총소득 규모는 1억5000만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직군과 성과에 따라 연봉 절반을 넘는 보너스가 지급된 사례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올해까지 사실상 '아파트 한 채'에 달하는 보상이 이뤄질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이례적 보상을 가능케 한 건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요 폭발에 따른 고대역폭메모리(HBM) 특수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에 HBM을 사실상 독점 공급하며 지난해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2배 규모로 급증했다. 반도체 슈퍼사이클 구조적 수혜가 전례 없는 보상으로 직결된 셈이다.
문제는 이 불씨가 반도체 업종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데 있다. 재계에 따르면 카카오 노조는 영업이익 13%를 성과급으로 배분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노조는 영업이익 20%, LG유플러스 노조는 영업이익 30% 수준 배분을 요구하거나 논의 중이며, 현대자동차 노조는 순이익 30%를 성과급으로 달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중 임금 교섭이 결렬된 카카오 노조(카카오, 카카오페이, 카카오엔터프라이즈, 디케이테크인, 엑스엘게임즈)는 단체 행동을 예고했다. 창사 이래 첫 파업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재계는 이를 '비교 준거 효과(reference effect)'로 분석한다. 특정 업종 보상이 급격히 높아지면, 업황이나 수익성과 무관하게 다른 산업군 근로자들이 동일 수준을 요구하는 심리적 집단 압박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성과급은 기업 실적에 연동되는 변동 보상인데, 이를 당연한 권리처럼 업종을 넘어 요구하는 현상이 확산되고 있어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반도체 업계 안에서도 박탈감 확산...보상 갈등 재계 전반으로 번지나
반도체 업종 내에서도 희비가 갈린다. 삼성전자는 HBM 납품 경쟁에서 SK하이닉스에 뒤처지며 지난해 상반기까지 반도체 부문에서 부진을 겪었다. 같은 반도체 산업에 종사하면서도 두 기업 간 성과급 격차가 수배에 달하는 상황이 됐다. 삼성전자 노조가 사후조정에서 성과급 산정 기준 명확화와 대폭 인상을 핵심 요구안으로 내건 것은 이런 맥락에서 비롯됐다.
대기업보다 수익성이 낮은 반도체 분야 중견·중소기업들도 비슷한 압박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한 중견 업체 임원은 “'SK하이닉스는 그렇게 준다던데 우리는 왜 안 되냐'고 묻는다”며 “성과급 기준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데 예전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토로했다. 올해 임단협 시즌이 어느 해보다 험난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실제로 SK하이닉스 하청업체 노조는 지난달 30일 “SK하이닉스는 하청 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중단하고 교섭에 응해야 한다”며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지난해와 올해 1분기 영업이익 최고치를 갈아치운 SK하이닉스는 원청 노동자에게 수억원 성과급을 줬다”며 “하청 노동자에게는 수백만원 수준 상생장려금을 지급했다”고 했다. 이어 “함께 성과를 만들어냈음에도 이러한 차별은 상대적 박탈감을 가지게 한다”며 “단순히 성과급에 대한 것이 아닌 하청 노동자의 삶에 대해 원청인 SK하이닉스에게 책임을 묻는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한국 임금 결정 구조의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낸다고 진단한다. 직무·성과 중심의 보상 체계가 정착되지 않은 상태에서 특정 기업 성과급이 사실상 업종 전반 비교 기준점으로 작동하면서, 연공 서열 중심 기존 임금 체계와 충돌이 불가피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홍 광운대 명예교수는 이달 열린 '이해관계자 경영학회' 춘계 정기세미나에서 삼성전자 노조 성과급 요구를 이해관계자 갈등 대표적 사례로 제시했다.
이 교수는 “주주의 잔여청구권 이론에 의하면 노조가 영업이익 15%를 정률로 배분받는 것은 일종의 선배당을 받는 것”이라면서 “이는 노조의 '준주주화'를 의미하며, 용납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권오경 한양대 석좌교수(전 한국공학한림원 회장)는 “국내 산업계 성과급에 대한 설정이 처음부터 잘못돼 발생한 문제”라면서 “성과급은 각 사원들의 성과에 따라서 다르게 지급되어야 되고, 개인마다 최고 성과급 상한선이 설정되어야 했는데 이에 대한 준비가 없이 성과급이 재정되었다”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 대부분 기업들은 어느 부서에 소속되어 있느냐에 따라서 성과급이 모든 사원들에게 같은 요율로 지급된다는 것도 문제”라면서 “성과급 배분에 있어서 회사가 지속 성장할 수 있는 재투자 금액과 주주들에게 줄 배당금을 제외한 한도 내에서 할 수는 있지만, 무엇보다 개인별 최대 성과급을 정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며, 성과급이니 만큼 개인별 성과에 따라서 차등 지급되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각계 우려에도 초기업 노조 “파업 강행할 것”
삼성전자 노조측은 21일 파업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최승호 삼성그룹 초기업 노동조합 삼성전자 지부장은 13일 오전 수원지법에서 열린 위법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 사건 두 번째 심문 기일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정부는 싸워서 쟁취하라는 입장으로 알고 있고, 저희도 적법하게 싸우고 있다”며 “저희는 합의가 될 수 있도록 요구안도 더 낮췄다. 기존 조정에서도 낮췄고, 사후 조정에서도 낮췄다”고 강조했다.
초기업노조 측 법률대리인 홍지나 변호사는 “긴급조정권 발동 요건이 매우 까다롭고, 저희의 경우 필수 시설이라 보기는 조금 어려운 점이 있다”며 “과거 발동 사례인 현대차는 쟁의 기간이 워낙 길어 개입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는데, 저희는 아직 시작도 하기 전이고 쟁의 날짜도 명백하게 못을 박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최 위원장은 성과급 제도화에 대해서는 “영업이익에 대해 퍼센트를 따져 성과급을 받자는 것이기 때문에 성과가 안 나는 경우엔 당연히 받지 않는 것”이라며 “같은 제도를 실시 중인 SK하이닉스가 지금껏 경직된 제도화를 했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SK하이닉스와 연동되는 보상은 우리가 계속 이야기한 것처럼 (삼성전자가) '하이닉스 사관학교'라고 얘기될 수 있는 부분”이라며 “이런 부분은 분명히 바꾸고 제도화할 수 있으며, DS부분만 특별 경영 성과급으로 일회성만 보상한다는 안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김시소 기자 siso@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