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성장은 의무교육의 대중화 위에서 가능했다. 1949년 제정된 「교육법」은 의무교육 6년을 법으로 보장하였고, 10여 년 만에 초등학교 취학률 90%를 넘기며,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학교교육 성공사례가 되었다. 오늘날 의무교육은 중학교까지 9년으로 확대되었고, 그동안 공교육 체제의 의무교육은 산업발전의 초석이 되었다. 6070 세대에게 학교는 좁은 교실에 80명씩 끼어 앉던 '콩나물 교실'과 오전·오후반을 나누던 '2부제 수업'이 아득한 추억으로 먼저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초등 의무교육은 일찍 제도화되었지만, 중학교 무상 의무교육이 전국적으로 온전히 실현되기까지는 반세기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신분상승의 신화가 더 이상 예전처럼 작동하지 않는 데에는 학벌주의와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이 교육 기회를 좌우하는 구조가 자리 잡은 영향이 크다. 이제는 '어느 학교를 나왔는가'라는 간판보다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역량이 더 중요해지는 사회가 되고 있다. 단지 9년간의 의무교육이 아니라 전 국민 평생학습의 대중화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배움이 특정 시기에 끝나는 '과제'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기대수명 80세를 훌쩍 넘긴 장수사회에서 청소년기 9년의 의무교육만으로 남은 수십 년의 삶을 감당하기는 어렵다. AI·디지털 시대에 학교에서 배운 지식의 유효기간은 점점 짧아지고 있기에, 평생학습은 자아실현을 넘어 생존 역량을 지탱하는 사회적 안전망이다. 하지만 실제 지표는 위험신호를 보낸다. 2024년 발표된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 2주기 결과에서도 우리나라 성인의 언어능력·수리력·적응적 문제해결력은 OECD 평균을 밑돌았다. 학교 졸업과 함께 기본적인 배움으로부터 너무 멀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하는 대목이다.
평생학습을 국가 정책의 주변부에 둘 수 없는 이유는 헌법에도 분명히 새겨져 있다. 헌법 제31조가 명시한 '평생교육 진흥의 의무'는 국가의 선택 사항이 아닌 강행 규정이다. 즉, 배움은 국민의 기본적인 '학습권'이다. 이는 학교교육뿐만 아니라 성인 교육, 직업교육 등 생애 전 주기에 걸친 배움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선언이다. 이 헌법 조항에 의해 1982년 「사회교육법」(현재의 「평생교육법」)이 만들어졌다. 이제 교육은 특정 시기에 끝마치는 과제가 아니라, 국가가 보장하고 국민이 누려야 할 평생의 학습 권리인 것이다.
2026년 교육부 예산 106조 원 중 82조 원이 560만 명의 영유아 및 초중등 교육에 집중되어 있다. 240만 명의 대학생이 다니는 고등교육 예산 16조 원까지 합치면, 대략 '학생' 인구 800만 명에 들어가는 1년 예산은 약 98조 원이다. 이에 반해 평생교육 대상은 성인 인구 대부분에 이르지만, 평생·직업교육 부문 예산은 약 1.2조 원으로 전체의 1% 남짓에 그친다. 2022년 전국 학생 1인당 교육비가 589만 원인데 반해, 평생교육이용권은 1인당 연 35만 원 수준이며, 실제 지원 대상은 전체 성인 인구에 비해 극히 제한적이다. 이제 국가 교육의 다음 과제는 학교교육의 성공을 넘어 평생학습의 대중화로 나아가는 일이다.
아이들은 줄고 어른은 늘어나는 역삼각형 인구 구조에서 언제까지 과거의 예산 틀에 갇혀 있을 수는 없다. 학교교육 패러다임을 평생학습 패러다임으로 수정해야 한다. 평생학습 예산을 지금보다 최소 10배 이상 확충하고, 평생학습이용권의 액수와 대상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일, 이는 단순히 예산만의 문제가 아니라, 21세기 AI시대의 국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투자이다. 국가 발전을 위해 교육을 '의무'처럼 받아들이던 시대를 넘어, 이제는 모든 시민에게 평생학습을 '당당한 권리'로서 보장해야 할 때다.
한용진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장
◆한용진 원장은 학령인구 감소와 고령화 시대에 따른 평생교육의 미래를 전망한다. 한 원장은 고려대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교육학 석사와 교육사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6년부터 2024년까지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교육문제연구소 소장과 평생교육원 원장, 사범대학·교육대학원 학장 등을 역임했다. 교육 발전 공로로 2024년 교육부 옥조근정훈장을 수훈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