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세계가 센서의 시대를 이야기한다. 스마트폰과 자동차를 넘어 공장, 전력 설비, 철도, 항만, 인프라 곳곳에 센서가 들어가고 있다. '트릴리언 센서(Trillion Sensor)'라는 표현처럼 앞으로의 산업은 더 많은 센서를 통해 더 많은 데이터를 얻고, 이를 AI와 디지털 트윈으로 연결하려 한다. 그러나 산업 현장에 들어가 보면 가장 먼저 부딪히는 문제는 의외로 단순하다. 센서를 정말 필요한 곳에 붙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센서가 아무리 정밀해도 전원을 연결할 수 없고, 배터리를 갈 수 없고, 통신선을 뽑을 수 없는 위치라면 그 가치는 반쪽에 그친다. 고전압 배전반 내부, 회전하는 모터와 축, 고온 공정 장비, 강한 진동이 발생하는 기계 부품,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인프라 설비가 그렇다. 역설적이게도 사고와 고장의 징후가 먼저 나타나는 곳일수록 환경적 제약 때문에 센서를 설치하기 어렵다. 산업 DX의 출발점이 데이터라면, 이 사각지대는 곧 디지털 전환의 사각지대다.
상상에서 출발한 '전원과 배선'의 한계를 넘기 위한 20년의 여정
무전원·무선 센서의 개발 동기는 이 지점에서 출발했다.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전국의 공중화장실이 새롭게 정비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도어 감지 센서 하나를 설치하기 위해 전원선과 신호선을 끌어오는 장면이 유독 크게 보였다. 작은 기능 하나를 위해 생각보다 많은 배선과 공사가 필요했다. 그때 떠오른 질문은 단순했다. “전원이 없어도 센서가 동작할 수 있다면 어떨까?”
당시 차세대 센서는 무선이어야 한다는 흐름은 분명했다. 그러나 무선 센서가 전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현장 확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 문제의식은 결국 박사학위 논문 주제로 이어졌고, SAW(Surface Acoustic Wave), 즉 표면탄성파 기반 무전원·무선 센서 개발이라는 긴 여정의 출발점이 됐다. 국내에 참고할 만한 연구가 거의 없던 시절, 무선 센서 자체도 신기술로 여겨지던 상황에서 무전원과 무선을 동시에 구현하겠다는 발상은 무모해 보이는 도전이었다.
현실의 벽은 높았다. 개발 초기 전파법을 고려하지 않으면 30cm, 법규를 준수하면 3cm 수준의 감지 거리에 머물렀다. 연구를 계속해야 할지 고민할 수밖에 없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 작은 벽을 넘는 과정에서 기술은 단단해졌다. 2008년 60cm를 거쳐 2010년에는 초기 목표였던 1m를 넘어 2m 수준의 감지에 성공했다. 연구를 시작한 지 10년 만의 성과였다. 이후 과제는 단순히 더 멀리 읽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산업 환경에서 살아남는 것이었다.

기술은 연구실이 아닌 시장과 현장에서 검증됐다. 2013년에는 국내 주요 완성차·부품·타이어 기업들과 공동 연구를 통해 100g 수준의 고진동 환경에서도 작동하는 인텔리전트 타이어 센서 기술이 국제 학회에서 발표됐다. 타이어 내부는 배터리 수명, 무게, 진동, 내구성 문제가 모두 겹치는 대표적인 극한 환경이다. 일반 무선 센서가 쉽게 들어가기 어려운 곳에서 무전원·무선 방식은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후 산업 현장에서는 고전압 설비 화재 감시용 무전원·무선 온도 센서가 상용화됐고, 420℃ 초고온 공정 센서와 배터리리스 TPMS(Tire Pressure Monitoring System) 등으로 적용 분야가 확장됐다. 연구실의 가설이 법규, 환경, 고객 현장을 거치면서 실제 산업 기술로 자리 잡은 것이다.
센서에서 '스마트 부품'으로, 예지 보전의 출발점
최근 센서 산업의 흐름은 이 개발 여정과 다시 만난다. 센서는 더 이상 물리량을 전기 신호로 바꾸는 부품에 머물지 않는다. 온디바이스 AI, 예지 보전, 디지털 트윈, 스마트 팩토리의 입력 계층이 되고 있다. 그러나 AI가 아무리 좋아도 고장이 시작되는 지점의 데이터를 얻지 못하면 예측은 추정에 머문다. 디지털 트윈도 실제 설비 상태를 반영하지 못하면 보기 좋은 모델에 그친다. 결국 센서의 가치는 “얼마나 정밀한가”에서 “얼마나 필요한 곳에, 오래, 안정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로 확장되고 있다.
이 점에서 무전원·무선 센서는 단순한 부품 기술이 아니다. 배선과 배터리의 제약을 줄여 기존에는 포기했던 위치를 데이터화하는 전략 기술이다. 유지 보수 비용을 낮추고, 고전압·고온·고진동·회전체 같은 극한 환경에서도 상태 데이터를 확보하게 해준다. 더 나아가 부품 자체가 센서를 품는 '스마트 부품' 시대의 기반이 된다. 베어링, 타이어, 배전반, 모터, 공구, 구조물은 더 이상 침묵하는 부품이 아니라 자신의 상태를 외부에 알려주는 데이터 노드가 될 수 있다.
가장 필요한 곳에 존재하는 지능
앞으로의 경쟁력은 센서를 많이 만드는 능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산업 현장이 그동안 보지 못했던 곳을 보이게 하고, 듣지 못했던 설비의 신호를 듣게 하며, 유지 보수의 사각지대를 예측 가능한 영역으로 바꾸는 능력이 중요해진다. 무전원·무선 센서의 전략적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는 센서 산업을 넘어 AI, 반도체, 스마트 팩토리, 나아가 원자력과 우주 산업의 기반 문제이기도 하다. 입력이 빈약하면 지능도 빈약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0여 년 전 화장실 문틈의 센서를 보며 떠올렸던 질문은 이제 무전원·무선 센서라는 현실 기술로 발전했다. 앞으로 산업은 더 많은 데이터를 요구하겠지만, 모든 곳에 전선을 깔고 배터리를 갈아줄 수는 없다. 전원이 없어도 살아 있고, 선이 없어도 말하며, 극한 환경에서도 버틸 수 있는 센서가 필요한 시대다.
AI 시대의 지능은 화려한 알고리즘보다 먼저, 현장의 사소한 신호 하나도 놓치지 않는 '정직한 감각'에서 시작된다. 센서 산업의 다음 주도권은 센서를 붙이기 쉬운 곳이 아니라, 사고와 고장의 징후가 먼저 나타나는 '정말 필요한 곳'에 설치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무전원·무선 센서는 그 오래된 질문에 대한 현실적인 답이자, 지능형 산업 인프라로 가는 조용한 출발점이다.
오재근 | 코아칩스 대표이사
국내 최초 SAW 기반 무전원·무선 센서 개발자로, 센서·에너지 하베스팅·산업용 무선 계측 분야를 25년 이상 연구해왔다. '표면탄성파(SAW)를 이용한 에너지 포집형 무전원·무선 센서' 연구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SAW 무전원·무선 온도 센서 및 극한 환경용 에너지 하베스팅 무선 센서 등을 개발·제품화했다. 기아자동차 연구원, 호서대학교 교수를 거쳐 2007년부터 코아칩스를 이끌고 있다. 최근에는 무전원·무선 센서, 에너지 하베스팅 무선 센서 및 IIoT 센서를 기반으로 디지털 리트로핏, 온디바이스 AI를 연결한 제조 DX의 현실적 적용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소성렬 기자 hisabisa@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