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망 리스크가 불거질 때마다 산업계 반응은 대체로 비슷하다. 당장 생산에는 큰 문제가 없고, 확보해둔 재고로 일정 기간은 대응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상당수 기업이 비상 상황에 대비한 재고를 보유한 만큼, 위기가 곧장 생산 중단으로 이어진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공급망 위기의 진짜 영향은 대개 한 박자 늦게 나타난다. 라인이 즉시 멈추지는 않겠지만 특정 지역과 품목에 대한 높은 의존은 시간이 지나며 원가 부담과 조달 불확실성으로 번진다. 눈앞의 생산 차질보다 더 큰 문제는 구조적 의존이다.
반도체 산업에서 헬륨은 이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소재다. 공정 특성상 대체가 쉽지 않고, 수급이 흔들리면 부담은 단순한 가격 상승에 그치지 않는다. 기업으로선 비용이 오르더라도 우선 물량부터 확보해야 한다. 생산라인을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수급 불안은 원가 압박으로, 원가 압박은 다시 수익성과 가격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해외 주요국은 이미 이런 현실에 맞춰 움직이고 있다. 인도는 헬륨 수입 의존을 낮추기 위한 회수 플랜트 구축에 나섰고, 미국은 캐나다 등 신규 생산 거점을 늘리며 조달 기반을 넓히고 있다. 중국 역시 미국 의존을 줄이기 위해 공급선을 재조정하고 있다.
절반 넘게 카타르산에 의존하고 있는 나프타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나프타는 흔히 석유화학 원료로만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플라스틱은 물론 배터리 분리막 등 여러 산업의 기초 소재로 이어지는 출발점이다. 중동발 불안이 정유·화학 업종에만 머물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배터리와 전자, 로봇 부품 산업까지 그 여파가 넓게 번질 수 있다는 의미다.
당장은 재고 관리, 공급망 모니터링, 재사용 확대 같은 현실적인 대응이 우선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조달선 다변화, 공정 효율화, 회수·재활용 인프라 확충처럼 구조 자체를 바꾸는 접근이 필요하다. 위기 때 버티는 힘도 중요하지만, 같은 위기가 반복될 때 흔들리지 않는 체질을 만드는 일은 더 중요하다.

박유민 기자 newmin@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