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빛 공장 비우고 '반려동물·AI' 채운다…100억 쥔 청년들의 '산단 개조'

생산기지 넘은 '정주형 문화선도산단'으로 패러다임 대전환
2030년까지 100억 투입 '청년디자인리빙랩' 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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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부터 18일까지 주말 이틀간 충남 예산의 스플라스 리솜에서 열린 '산업단지 정책 해커톤 대회' 모습. 산단공 제공

정부가 산업단지를 '문화와 삶이 머무는 공간'으로 뜯어고치기 위한 대규모 구조 개혁에 착수했다. '생산과 효율'이라는 낡은 공식만으로는 더 이상 청년 세대의 발길을 붙잡을 수 없다는 위기감이 작용했다. 변화의 최전선에는 산단에서 일하는 청년 근로자가 나섰다. 정부는 정책 수혜자를 넘어 직접 설계자로 나선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1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한다.

22일 산단공에 따르면 이번 산단 대개조의 핵심 동력은 '청년디자인리빙랩'이다. 오는 2030년까지 6년간 총 100억원이 투입되는 이 사업은 청년 노동자와 지자체, 전문가가 원팀을 이뤄 산단에 필요한 서비스를 직접 개발하고 실험하는 현장 밀착형 프로젝트다. 이미 올해 1차년도 사업을 통해 구미국가산업단지, 완주일반산업단지, 창원국가산업단지 등 3개 거점을 중심으로 7억5000만원 규모 예산이 집행됐다. 약 390명의 청년이 참여해 38개의 실무 과제를 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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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부터 18일까지 주말 이틀간 충남 예산의 스플라스 리솜에서 열린 '산업단지 정책 해커톤 대회' 모습. 산단공 제공

이러한 흐름은 지난 주말 충남 예산에서 열린 '산업단지 정책 해커톤'을 통해 더욱 구체화됐다. 이번 해커톤은 지난 1월 전북 완주산단의 청년근로자 곽상탄씨가 “현장 근로자가 문제를 직접 발굴하고 해결책을 논의할 자리가 필요하다”고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에게 제안하면서 성사됐다. 김 장관이 이에 화답하며 전국 산단 청년 60명이 1박 2일간 머리를 맞대고 산단의 미래를 설계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단순한 민원 제기를 넘어 정책 설계의 주체로 나선 이들은 교통, 문화, 자기 계발 등 산단 생활 전반에 걸친 혁신안을 쏟아냈다.

밤샘 토론 끝에 쏟아진 혁신안들은 청년들의 라이프스타일을 고스란히 반영했다.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제안은 '붕어빵' 팀의 '온통(On-通) 이음 정류장'이다. 어둡고 삭막한 산단 내 버스정류장을 단순한 대기 장소가 아닌 소통과 정보가 흐르는 복합 플랫폼으로 재정의한 점이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산단 내 행정·금융 서비스를 통합 배달하는 플랫폼 '부르미', 가동을 멈춘 공장을 문화 공간으로 바꾸는 '공장 비워드림', 청년 1인 가구를 위한 '반려동물 돌봄 서비스' 등 청년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파격적인 제안들이 차례로 발표됐다. 특히 직무 역량 강화를 위한 'AI 기술 공유 플랫폼' 등은 청년들이 산단에서 단순한 노동을 넘어 개인의 성장을 기대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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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부터 18일까지 주말 이틀간 충남 예산의 스플라스 리솜에서 열린 '산업단지 정책 해커톤 대회' 모습. 산단공 제공

이러한 상향식 아이디어들은 향후 청년디자인리빙랩의 풍부한 실증 자산으로 활용될 전망이다. 정부는 리빙랩을 통해 구미의 '브랜드 공장'이나 창원의 '10분 문화 Zone'처럼 지역별 특색이 살아있는 모델을 완성하고, 이를 2030년까지 전국의 주요 산업단지로 확산시킨다는 방침이다. 이는 청년들이 산단을 기피하는 이유가 임금 문제뿐만 아니라 이동권과 문화 접근성, 성장의 기회 부재 등 정주 여건 전반과 직결되어 있다는 현장의 목소리를 정책에 적극 반영한 결과다.

숙제도 있다. 100억원의 예산에도 산단이 실제 변화하기 위해선 정부와 지자체, 또 부처 간 칸막이를 허무는 협력이 필수적이다. 교통 인프라 개선은 지자체의 교통 정책과 연계되어야 하며, 유휴 공간의 용도 변경 등도 관계부처의 제도적 협력이 뒷받침이 돼야 한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현장의 참신한 아이디어들이 실제 정책에 녹아들 수 있도록 적극 검토할 것”이라며 “산업단지를 청년들이 스스로 찾아와 머물고 싶은 역동적인 공간으로 탈바꿈시키겠다”고 말했다.


안영국 기자 a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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