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상자산 자동매매에 쓰이는 응용프로그램인터페이스(API)가 사세조종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금융당국 경고가 나왔다.
금융감독원은 13일 API를 활용한 대표적인 불공정거래 사례를 공개하며 투자자 주의를 당부했다. API가 24시간 거래되는 가상자산 시장에서 효율적인 거래수단으로 널리 쓰이고 있지만, 이를 악용한 시세조종과 허수주문 등 불공정거래 사례가 일부 확인됐다는 판단에서다.
금감원은 API를 이용한 대표적 불공정거래 유형 4가지를 제시했다. API는 거래소 매매시스템에 직접 접속하지 않아도 사전에 설정한 조건에 따라 자동으로 주문·매매할 수 있는 방식이다. 현재 가상자산 시장 거래대금의 30%대를 차지하고 있다.
금감원이 가장 먼저 든 사례는 '거래가 활발한 것처럼 꾸미는 방식'이다. 혐의자는 API를 이용해 5000원~1만원 수준의 소액 시장가 매수·매도를 짧은 시간에 반복했다. 실제로는 의미 있는 거래가 아닌데도 화면상으로는 매매가 계속 체결되는 것처럼 보여 다른 투자자들이 '지금 뭔가 붙었다'고 착각하도록 만드는 방식이다. 여기에 수동으로 비싼 가격의 매수 주문까지 얹어 시세를 끌어올린 뒤, 뒤늦게 따라붙은 투자자들에게 물량을 넘겨 차익을 실현하는 구조다. 금감원은 여러 사람이 공모해 이런 API 주문을 겹겹이 넣으면 거래 성황 효과가 더 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매수세가 두터운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허수주문'이다. 한 혐의자는 API로 높은 가격의 매수 주문을 내는 동시에, 현재가보다 3%, 5%, 7% 낮은 가격 구간에 대량 매수 주문을 여러 줄로 깔아뒀다. 겉으로 보면 '밑에서 받아줄 매수 대기 물량이 엄청 많다'는 신호처럼 보인다. 하지만 시세가 움직이면 이 주문들은 곧바로 취소되고, 다시 같은 패턴의 허수 주문이 반복된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실제 수요가 탄탄한 줄 알고 안심하고 따라붙기 쉽지만, 실상은 분위기만 만들어낸 가짜 주문이라는 게 금감원 설명이다.

세 번째는 다수 계정을 돌려가며 거래를 주고받는 통정매매다. 여러 계정을 조직적으로 연계해 한쪽은 사고 다른 쪽은 파는 식으로 거래를 반복하면, 시장에서는 해당 종목이 활발히 거래되는 것처럼 보인다. 거래가 몰리는 듯한 착시가 생기면 일반 투자자 유입이 뒤따를 수 있고, 시세가 오른 뒤 기존 보유 물량을 팔아 이익을 내는 식이다. 겉으로는 거래가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같은 세력이 계정만 바꿔가며 움직이는 셈이다.
마지막은 '목표 가격까지 억지로 밀어 올리는 방식'이다. 먼저 자신이 원하는 높은 가격에 매도 주문을 걸어둔 뒤, API로 그보다 낮은 구간에서 고가 매수 주문을 계속 내 가격을 위로 끌어올리는 식이다. 말 그대로 시세를 한 칸씩 밀어 올려 자신이 걸어둔 매도 가격에 도달하게 만드는 구조다. 금감원은 이런 방식 역시 반복되면 시세조종에 해당할 수 있다고 봤다.
금감원은 API 이용자들에게 “자동매매라고 해서 책임까지 자동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경고했다. 과도한 단주매매나 자신의 주문이 서로 맞물려 체결되는 가장매매, 체결 가능성이 낮은 주문을 반복적으로 냈다 취소하는 허수주문은 모두 불공정거래로 문제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온라인 커뮤니티나 SNS에서 공유되는 고빈도 매매 코드를 무심코 따라 쓰는 것도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일반 투자자에 대해서도 주의 메시지를 냈다. 금감원은 “특별한 이유 없이 고빈도로 거래가 체결되며 가격이 급상승하는 가상자산의 경우, API를 활용한 시세조종 세력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추종매매를 자제하라”고 당부했다.
금감원은 앞으로 불공정거래 가능성이 있는 API 주문에 대해 정밀한 시장감시 기준을 마련하는 등 거래소의 모니터링 역량을 강화할 계획이다. 또 API를 이용해 과도하게 매매를 반복한 계정이 확인될 경우 신속히 기획조사에 착수해 엄정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송혜영 기자 hybrid@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