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1월 '용산전자상가'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대기업 메이커 PC는 가격이 너무 비싸 부담돼 조립식 컴퓨터를 구매하려는 고객이 북적이던 곳이었다. 중견기업으로 브랜드명을 내세운 현주컴퓨터(1989년)가 여기서 탄생했다. 부산 동구 남동에서 개업한 세진컴퓨터(1992년)는 전국으로 확장했고 트라이젬이 대표 브랜드인 삼보컴퓨터(1980년)는 청계천 태생이다. 스티브 잡스의 매킨토시가 개라지(차고)서 만들어졌던 것과 흡사한 중견기업의 탄생 이력들이다.
필자가 각도·속도 입력으로 표적을 명중하는 전차 게임을 처음 접하고 포트란(FORTRAN) 프로그램을 천공카드에 찍어 전산센터에서 아웃풋 내던 1980년대 대학 시절, 컴퓨터는 차 한 대 값이었다. 중견기업은 수요 증가로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선순환에 들어서면서 급성장했다. 정부의 국민PC 보급과 컴퓨터 교육 강화와 같은 정보화 정책도 한몫했다.
용산전자상가는 덤터기로 악명이 높았다. 자주 구매하는 것도 아니니 가격 정보를 제대로 알 수 없기에 특히 PC 문외한은 바가지를 썼다. '용팔이(용산 돌팔이)'는 거칠게 호객행위를 했고 판매품을 중고로 바꿔치기하거나 타 가게서의 가격 체크도 방해했다. '손님, 맞을래요?'라는 위협적인 장면이 지상파에서 방영되면서 큰 파문이 일었다. 예전에는 짝퉁 팔던 이태원이나 남대문 도깨비시장도 그랬다. 잠시 한눈 팔면 잔돈 거슬러줬다고 거짓말하고 반품할라치면 재수 없다며 거절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쪼들리며 없던 시절 삶이 각박해서였을 것이다.
세진컴퓨터는 '전문가에겐 덜 받고 초보자에겐 더 받는' 것이 아닌 모두에 같은 가격을 받는 정가제를 셀링포인트로 삼았다. 내용을 잘 몰라 비싼 단말기·서비스를 선택하는 호갱을 없애겠다며 도입한 단통법과 비슷한 취지였다. 전국 각지에 눈치 보지 않으며 체험할 수 있는 매장도 개설했다. '컴맹' 없는 나라 만들기의 노력을 다짐했고 길 잃은 진돗개가 이역만리에서 주인 찾아온 충성심 일화를 내세워 무료 컴퓨터 교육과 평생 서비스로 책임지겠다고도 했다.
삼보는 한때 매출액 4조원의 정보기술(IT) 대기업으로 성장했건만, 1997년 IMF 사태가 치명타였다. LA 다저스 투수로 유명세를 치르던 박찬호를 광고에 등판시켜 PC 구매 2년 뒤 무료로 업그레이드해 주는 체인지업 서비스를 출시하기도 했지만, 외상 조달한 부품값을 완제품 판매로 갚는 차입방식이 작동하지 않았다. 대·중견기업의 고·저가 틈새에 끼어 버렸고 초고속(두루넷)과 삐삐·시티폰(나래이동통신)이 큰 손실을 보면서 자본잠식에 빠졌다.
3000억원 매출을 올렸던 현주도 PC 재구매 가격 40%를 환급해주는 공격적인 마케팅과 다변화 전략을 펼쳤지만, 끝내 파산했다. PC 산업은 조립·유통 중심의 중견기업은 사라졌고 브랜드·노트북 중심으로 전환되면서 삼성·LG의 양자 구도로 바뀌었다. 그나마 위안으로 삼자면 굳이 일본 아키하바라 전자상점가에 가지 않아도 양질의 랩톱을 구매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내찬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nclee@hansu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