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 연구개발(R&D)과 기술 경쟁 환경이 급변하면서 지식재산(IP)의 역할이 산업 경쟁력의 핵심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기술 확보만으로는 시장 지배력을 유지하기 어려워진 가운데, 특허를 기반으로 한 독점 전략과 분쟁 대응 체계가 국가 경쟁력의 중요한 축으로 떠올랐다는 평가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대한변리사회는 지식재산을 중심으로 기술과 시장을 연결하는 구조 개편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국가 R&D의 방향을 기술 개발 중심에서 시장성과 독점력 중심으로 전환하고, 분쟁 대응과 권리 보호 체계 역시 이에 맞춰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2월 제44대 대한변리사회 회장으로 당선된 전종학 회장은 지식재산이 단순한 권리를 넘어 기술을 산업과 수익으로 연결하는 핵심 장치라고 진단했다. 그는 인공지능(AI) 확산으로 기술 개발과 확산 속도가 동시에 빨라졌다며, 특허를 통한 독점 구조 확보 없이는 기업 경쟁력 유지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국가 R&D 운영 방식과 특허 분쟁 구조 전반에 대한 개선 필요성도 제기했다. 기술 가치 평가 체계 정비, 변리사의 소송 참여 확대, 변리사 비밀유지권 제도 마련 등을 통해 보다 실효성 있는 권리 보호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전 회장을 만나 AI 시대 지식재산의 역할과 국가 R&D 구조, 특허 분쟁 제도 개선 방향 등에 대해 들어봤다.
대담=김지선 전자신문 SW/AI산업부장

-AI 시대에 지식재산의 중요성은 더 커졌나.
▲ AI 시대의 본질은 기술 발전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기술 경쟁 구조 자체가 바뀌었다는 데 있다. 과거에는 기술을 먼저 확보하면 일정 기간 경쟁 우위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기술이 만들어지는 속도도 빠르고, 확산되는 속도는 더 빠르다.
예를 들어 어떤 기업이 새로운 기술을 개발했다고 하더라도, 그 기술이 보호되지 않으면 짧게는 6개월, 길어도 1년 안에 유사 제품이 시장에 등장한다. 특히 가격 경쟁력이 높은 국가에서 더 저렴한 제품이 나오면 시장은 빠르게 넘어간다.
결국 기술의 우수성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그 기술을 얼마나 보호하고, 얼마나 오래 독점할 수 있는지다. 지식재산은 단순한 권리가 아니라 기술을 산업과 수익으로 연결하는 핵심 장치이며, AI 시대일수록 그 역할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지금 구조로는 대응이 쉽지 않아 보인다.
▲ 현재 국가 R&D는 여전히 기술 개발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 기술을 얼마나 만들었는지가 주요 성과로 평가되고, 그 기술이 시장에서 어떻게 활용되는지에 대한 고려는 부족하다.
문제는 시장에서는 기술 자체보다 경쟁 구조가 더 중요하다는 점이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동일하거나 유사한 기술이 빠르게 등장하기 때문에, 특허를 통한 독점 구조를 만들지 않으면 기술은 바로 가격 경쟁으로 들어간다.
지금처럼 지식재산이 뒤에서 따라오는 구조로는 이런 경쟁 환경을 이기기 어렵다. 기술 개발 단계부터 시장성과 특허 전략이 함께 설계되는 구조로 바뀌지 않으면, R&D 성과는 계속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그 연결을 담당할 컨트롤타워가 필요해 보인다.
▲ 기술과 시장을 연결하는 역할은 지식재산이 담당할 수밖에 없다. 기술만으로는 시장을 지배할 수 없고, 특허 전략이 결합되어야 경쟁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기술 부처 중심으로 R&D가 운영되어 왔지만, 앞으로는 기술과 시장 전략을 동시에 설계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어떤 기술을 개발할지뿐 아니라, 그 기술이 어느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지는지, 경쟁사의 진입을 어떻게 막을 것인지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조직이 '지식재산처'다. 단순히 참여하는 수준이 아니라, R&D 방향 자체를 설계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기술과 산업이 연결되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
-국가 R&D 궁극적 목표는 무엇이어야 하나.
▲ 국가 R&D의 목적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결과에 있다. 그 결과는 결국 좋은 일자리 창출로 이어져야 한다.
AI 시대에는 기존 일자리가 줄어들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기술 개발이 실제 고용으로 연결되는 구조가 더욱 중요해진다. 기업이 이익을 내야 고용이 만들어지는데, 이익을 내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독점이 필요하다.
경쟁이 심한 시장에서는 가격이 계속 내려가고, 결국 기업의 수익은 줄어든다. 이 경우 고용도 유지되기 어렵다. 반대로 독점 구조를 확보한 기업은 안정적인 수익을 바탕으로 연구개발과 고용을 확대할 수 있다.
-기술력 있는 중소기업이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많다.
▲ 그렇다. 중소기업에서 그 문제가 더 크게 나타난다. 기술이 있어도 그 가치가 제대로 평가되지 않는 구조가 가장 큰 문제다.
예를 들어 기술과 특허를 보유한 기업이 있다고 하더라도, 초기에는 매출이 없기 때문에 기업 가치가 5억 원, 10억 원 수준으로 평가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상태에서 5억 원 투자를 받으면 지분의 절반 이상을 넘겨야 하는 구조가 된다.
이렇게 되면 창업자는 투자를 받기 어렵고, 결국 기업은 성장 기회를 놓치게 된다. 반면 해외에서는 기술의 독점 가능성을 중심으로 기업 가치를 평가하기 때문에 초기 단계에서도 높은 가치로 인정받고 투자가 이루어진다.
-제도적으로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아 보인다.
▲ 핵심은 기술과 특허가 기업 가치에 제대로 반영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술 가치 평가의 전문성이 필요하고, 변리사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또 하나 중요한 부분은 국가 R&D 관리 방식이다. 지금은 회계 중심으로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기술이 제대로 개발되고 있는지에 대한 검증은 부족하다.
그래서 '기술 감사 제도'가 필요하다. 기술 개발 방향이 맞는지, 글로벌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지, 특허 전략이 제대로 설계되어 있는지를 단계별로 점검해야 한다.
-특허 분쟁도 기업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 현재 특허 분쟁은 시간과 비용 측면에서 매우 비효율적이다. 소송이 5년 이상 걸리는 경우도 많고, 그 과정에서 기업은 투자와 사업을 멈출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5년 동안 소송을 진행해서 승소하더라도 보상금이 1억 원 수준이라면, 기업은 이미 시장을 잃은 뒤다. 특히 중소기업은 그 기간을 버티지 못하고 중간에 무너지는 경우도 많다.
이 구조에서는 소송 결과와 관계없이 기업이 피해를 입게 된다. 그래서 분쟁은 무엇보다 빠르게 해결되는 구조가 필요하다.
-이런 상황이면 소송 구조 변화가 필요할 듯하다.
▲ 그렇다. 재판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 '집중심리제' 도입이 필요하다. 한 번의 재판에서 충분한 시간을 확보해 쟁점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구조다.
지금처럼 짧은 변론을 여러 번 반복하는 방식에서는 기술적 쟁점이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고 소송 기간만 길어지게 된다.
반면 집중심리를 하면 기술의 법적 문제를 현장에서 바로 논의할 수 있고, 재판 기간도 크게 줄어든다. 또 당사자들이 충분히 주장할 수 있기 때문에 결과에 대한 수용성도 높아진다.
이 과정에서 기술과 지식재산권법 전문가인 변리사의 참여는 필수적이다.

- 변리사의 역할은 어떤 부분이 중요한가.
▲ 특허 침해 소송에서는 기술의 법적 판단이 핵심인데, 현재 구조에서는 그 부분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변리사의 소송 참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변리사가 새로운 권한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변리사법 제8조를 보면 이미 변리사는 특허, 상표 등과 관련된 소송에서 대리인이 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다.
즉, 법적으로는 이미 존재하는 권한인데 현실에서는 제대로 인정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이를 명확하게 정리하고 최소한 '공동 소송 대리'라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기술이 복잡해지는 상황에서는 기술 전문가가 소송 과정에 참여하지 않으면 정확한 판단이 어렵다. 이는 단순한 직역 문제가 아니라 분쟁의 질과 결과의 신뢰성 문제다.
이를 위해 발의된 변리사법 개정안이 조속히 국회를 통과해야 기업들이 보다 효율적으로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다. 기술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분쟁 대응 체계를 정비하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최근 'K-디스커버리 도입'와 함께 '변리사 비밀유지권' 언급되고 있다.
▲ 두 제도는 사실상 함께 가야 하는 구조다.
K-디스커버리는 분쟁 초기 단계에서 증거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인데, 이 과정에서 기업 내부의 기술 자료나 검토 문서가 광범위하게 공개될 수 있다. 특히 변리사가 작성한 침해 검토 의견서나 전략 자료까지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되면 기업 입장에서는 사전에 전문가에게 자문을 받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될 수 있다. 오히려 분쟁에 대비한 준비가 리스크로 작용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변리사의 비밀유지권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장치가 반드시 함께 있어야 한다. 이는 기업의 정당한 방어권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현재 이러한 내용은 변리사법 개정안에도 반영돼 있고, 최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를 통과한 상태다.
-AI 확산도 빨라지고 있다. 변리사에게 위협적이라고 보는가.
▲ 그렇지 않다. AI를 위협이라기보다 업무를 보조하는 도구로 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물론 단순 반복적인 업무는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변리사의 역할은 더 고도화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AI를 어떻게 활용하느냐다. 변리사회 차원에서도 AI 활용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교육을 통해 실무 적용을 지원할 계획이다.
특히 AI 활용 과정에서 기술 정보 유출 등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윤리 기준과 관리 체계도 함께 정립할 필요가 있다.
결국 AI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안전하게 활용해 전문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지금은 지식재산, 국가 R&D, 기술 경쟁 구조가 동시에 바뀌는 전환기다. 이런 시기에는 개별 제도보다 전체 구조를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지금 방향을 제대로 잡으면 국가 경쟁력을 크게 높일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이후에는 다시 바꾸기 어렵다.
지금은 위기이면서 동시에 기회다. 이 시기에 지식재산을 중심으로 기술과 시장을 연결하는 구조를 제대로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 전종학 회장은… 1970년생이다. 고려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캘리포니아주립대(UC Davis) 로스쿨 법학석사(LL.M.)를 취득하고, 고려대 대학원 지식재산권법 박사를 수료했다. 2000년 제37회 변리사시험에 합격한 후 현재 경은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를 맡고 있다. 지난 20대 및 21대 대통령선거에서 지식재산전문가단체총연합회 정책지원단장을 역임했다. 현재 국회 세계특허(IP)허브국가 추진위원회 운영위원, 세계한인지식재산전문가협회(WIPA) 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정리=
박진형 기자 jin@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