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국제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면 시장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 제조업이 '퀀텀 점프'하려면 성능 경쟁을 넘어 신뢰의 인프라를 갖춰야 합니다. M.AX가 성공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안성일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KTC) 원장은 로봇·자율주행·전력·배터리 등 제조업 전반에 인공지능(AI)을 결합하는 '제조 AX(M.AX) 얼라이언스'의 성공 여부가 한국 제조업의 미래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봤다. 이 과정에서 시험·인증 역시 더 이상 규제가 아닌 기업의 제조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수출 인프라로 재정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순한 기술 검증을 넘어 글로벌 시장 진입을 좌우하는 전략적 관문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다음은 안 원장과의 일문일답.
-그간 KTC 경영전략 및 성과는 어떠한가.
△KTC는 1969년 설립 이래 57년간 전기·전자, 에너지, 계량·계측, 화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시험·인증과 연구개발을 수행해 온 국가공인시험인증기관이다. 2023년 1월 원장으로 취임 이후, '안전하고 신뢰성 있는 사회'를 핵심가치로 삼고 '산업의 디지털·그린 전환을 선도하는 글로벌 경쟁력 있는 시험인증기관'이라는 비전을 수립했다.
이를 위해 '기업성장, 지역혁신, 무역강국'이라는 3대 경영목표를 설정하고 디지털 전환(반도체, AI·5G, 스마트가전, 지능형로봇), 그린 전환(전기자동차, 배터리, 신재생에너지, 수소, 탄소감축), 미래성장산업·국가적 중요산업(바이오헬스, 소재·부품·장비, 방위산업, 항공) 등 13대 전략분야를 선정해 우리나라 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결과, KTC는 2023년부터 2025년까지 3년간 미래성장분야 대형 연구개발(R&D) 및 기반구축 사업을 총 1733억원 규모로 수주했다. 연평균 578억원 규모로 2022년 대비 3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2025년에는 역대 최고인 약 1612억원 매출을 달성하며 2024년 대비 25.5% 성장을 이루었다.
-지금은 피지컬AI 시대라고 한다. 전 세계적인 산업·기술 흐름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다고 보는가.
△최근 산업의 핵심 키워드는 피지컬AI다. AI기술은 2022년 출시된 챗GPT와 같은 소프트웨어(SW) 중심의 거대언어모델(LLM)을 시작으로, 올해에는 SW와 하드웨어(HW)가 융합된 에이전트AI 및 피지컬AI 시대가 열렸다. 전 세계가 이러한 피지컬AI 기술을 뒷받침할 제조역량 확충과 협력 파트너 발굴에 사활을 걸고 있다.
특히 우수한 제조역량을 갖춘 한국과 중국을 주목하고 있다. 중국은 정부 주도하에 축적된 제조역량과 AI기술을 접목하여 다크팩토리와 같은 생산공정의 전면 자동화를 추진하고 있다. 샤오미의 슈퍼팩토리에서는 700대 로봇과 AI로 24시간 공장이 가동돼 76초당 1대꼴로 전기차를 생산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반도체·배터리·자동차·조선·방산 등 다양한 산업분야에서 세계적인 제조역량을 갖춘 국가로 피지컬AI 시대를 선도할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 CES 2026에서 현대차그룹 로봇전문 계열사 보스턴 다이나믹스의 차세대 휴머노이드 '아틀라스'가 CES2026 최고 로봇상을 수상했고 LG전자의 AI홈로봇 'LG클로이드'가 호평을 받는 등 우수한 피지컬AI 기술을 세계에 증명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도 피지컬AI 기술이 창출할 미래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한국 제조기업들과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작년 10월 경주 APEC에서 엔비디아가 삼성전자·SK하이닉스·현대자동차와 AI팩토리 구축 협력을 약속했고 테슬라는 AI칩 'A16' 생산을 위해 삼성전자와 협력하기로 했다. AWS(아마존웹서비스) 및 오픈AI CEO도 삼성·SK그룹과 국내에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기로 했다.
-피지컬AI 시대를 맞아 시험인증기관은 산업·기술 흐름에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고 보는지.
△정부는 '세계 AI 3대 강국' 실현 및 '피지컬AI 육성 및 전환'을 위해 올해에만 AI에 10.1조원의 예산을 배정하고 2030년까지 제조AI 도입률을 현재 0.1%에서 70%까지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또 '제조AX(M.AX) 얼라이언스' '피지컬AI 글로벌 얼라이언스'와 같은 공동·협력 플랫폼을 출범시키고 '한국형 소버린AI' 개발에도 나서고 있다. '피지컬AI 육성 및 전환'을 위한 정부정책이 산업현장에 잘 녹아들고 자생적인 AI산업 생태계가 조성되기 위해서는 '시험·인증'을 통한 피지컬AI 기술의 안전성·신뢰성 확보가 필수적이다. 시험인증기관은 이를 위해 △표준 선도 △인프라 구축 △수출 지원' 분야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우선 '피지컬AI 공동·협력 플랫폼'에 참여하여 신뢰성 있는 표준을 개발해야 한다. 작년 9월 정부는 '피지컬AI 육성 및 전환'을 위한 기술·표준 개발 및 민·관 협력체계 마련을 위해 피지컬AI 공동·협력 플랫폼을 출범시켰다. M.AX 얼라이언스는 1000개 이상의 기업·기관이 참여해 우리 제조업의 체질을 변화시키고 한국을 제조AX 1등 국가로 도약시키고자 △AI로봇 △AI자율주행차 △AI반도체 등 10개 분과로 이뤄진 제조AI전환의 핵심 플랫폼이다.
'피지컬AI 글로벌 얼라이언스'도 국내외 주요 기업·기관·연구소가 참여해 우리 피지컬AI 산업을 확장시키고 글로벌 기술경쟁에서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 △ADV △웰니스테크 △거버넌스 등으로 이루어진 피지컬AI의 핵심 플랫폼이다. KTC는 이러한 주요 플랫폼에서 '완전자율로봇' 'ADV', 'AI방산', 'AI가전', '거버넌스' 등 총 11개 분과에 활동하고 있다. 특히 AI가전 분과에서는 스마트 가전용 온디바이스 AI의 고속·고전력 인터페이스에 대한 시험평가 서비스 개발에 참여하고 거버넌스 분과에선 산업별 AI표준화와 활용·확산을 위한 협력체계 구축 및 관련 표준·가이드라인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두번째로는 시험인증기관은 피지컬AI 시험·인증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피지컬AI 기술의 상용화를 위해서는 AI탑재 제품들이 실제 환경에서 안전하고 신뢰성있게 작동하는지를 검증할 수 있는 평가설비와 시스템이 필요하다. KTC는 피지컬AI의 '두뇌' 역할을 하는 △반도체·전장부품, '심장' 역할을 하는 △배터리, '혈관' 역할을 하는 △전력 등에 대한 시험·인증 인프라를 구축하고 광주광역시에 피지컬AI 실증 테스트베드 조성도 추진 중이다.
차량용 반도체·전장부품은 고장 시 사고 위험도가 높은 만큼, 수준 높은 안전성과 신뢰성이 요구된다. 이에 KTC는 지난 10월 강원 원주 부론산업단지에 총 333.5억원 규모의 '미래차 전장부품 시스템반도체 신뢰성검증센터'를 착공해 2027년 7월까지 완공할 예정이다. 해당 센터를 통해 자율주행차 등 피지컬AI의 '두뇌' 역할을 하는 전장부품 및 차량용 반도체들이 최저 -40℃에서 최고 155℃까지, 상대습도 최대 100% 등 가혹한 환경조건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하도록 검증할 예정이다.
배터리에서는 지난 10월 충북 청주 오창테크노폴리스에 총 612.5억 원 규모의 'EV배터리 화재안전성 및 성능시험평가센터'를 착공해 올해 12월까지 구축 완료할 예정이다. 해당 센터는 피지컬AI의 '심장' 역할을 하는 배터리의 셀·모듈·팩에 대해 '열폭주 전이시험' '내구성 시험' 등 화재 안전성 및 성능 평가를 원스톱으로 진행해 EV배터리의 신뢰성을 담보하고 국민의 화재 불안감을 최소화시키겠다.

전력에서는 피지컬AI 기술고도화 및 제조현장 자동화로, 전기와 데이터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KTC는 전남 곡성 전력기반센터 및 충북 오창 스마트그리드센터를 통해 전력 전(全)주기 운용에 필요한 변압기, 차단기, 케이블 등에 대해 시험·인증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 3월 한국전기산업진흥회와의 협력체계 구축으로 KTC의 거점을 전남 나주까지 확대해 한국전기설비연구원의 전력기자재 평가인프라를 공동 활용하고, 70kV급 신송전 시스템 개발 관련 시험인프라를 만들고 있다. 또 KTC는 광주광역시, 인공지능산업융합사업단(AICA)과 'AI실증 테스트베드'도 구축 중이다. 지난 1월 광주광역시 인공지능 집적단지에 입주해 피지컬AI 제품의 전주기 평가 및 검증을 위한 피지컬AI 지원센터를 구축하고 자율주행 성능개선 및 기업지원을 위한 AI알고리즘 실증인프라를 조성하고 있다. 앞으로도 피지컬AI 제품의 상용화를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피지컬AI 시대를 맞아 시험·인증기관의 역할도 달라지는 것 같다. 시험·인증을 '수출 인프라'로 재정의했는데, 어떤 방향인가.
△시험인증기관은 수출지원을 위한 피지컬AI 시험·인증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피지컬AI 시대, 국내 기업들의 수출 확대를 위해서는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글로벌 시험·인증 서비스가 필요하다. KTC는 '피지컬AI 국제표준화 활동', '국제표준 기반 AI안전 시험·인증서비스 제공', '글로벌 인증기관과의 AI시험·인증 체계 구축'을 통해 우리 AI기업들의 수출 확대를 돕고 있다.
구체적으로 △IEC TC 61, ISO TC 299 등의 기술위원회에서 AI기술과 로봇·전기기기의 안전성 강화를 위한 국제표준화 활동 △ITU-T SG 17, ISO/IEC SC 42 등 표준화그룹에서 AI기술 신뢰성 및 보안 관련 국제표준화 활동에 적극 참여해 우리 기업의 피지컬AI 기술주도권 선점을 지원하고 있다.
한국인공지능협회와 같은 AI전문기관들과도 협력해 ISO/IEC 42001, ISO/IEC 24028 등 국제표준 기반 AI안전 시험·인증서비스(산업지능화인증 및 산업AI국제인증)를 제공, 수출 제품의 신뢰도를 높이고 있다. UL, SGS, TUV 등 글로벌 인증기관들과 피지컬AI 시험·인증 협력체계 구축을(전략적 MOU 체결 및 해외시험소 지정 등) 추진해 수출기업의 해외 시험·인증 취득 부담을 경감시키겠다.
-기술 변화가 급격하다.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시험인증기관은 어떤 혁신을 추진해야 하나.
△기업들은 AI기술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고도화된 시험·인증 서비스를 필요로 하고 있다. 시험인증기관은 AI기반 업무혁신을 통해, 이러한 기업 수요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 KTC는 국내시험인증기관 최초로 AI기반 시험·인증 지능화 전략인 'KTC SMART'를 수립하고 실행하고 있다. KTC SMART는 5개년 로드맵으로 구성돼 있다. 2025년 데이터 디지털화, 2026년 시험 프로세스 지능화, 2027년 자동화 도입, 2028년 가상 시험 체계 구축을 거쳐, 2029년까지 사람이 개입하지 않아도 운영되는 '자율형 시험소'를 현실화하여 고부가가치 사업 전환을 완료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
KTC는 AI가 대체가능한 반복 업무를 자동화하고, 확보한 내부인력의 25% 이상을 신산업 분야와 고도화된 기술 직무로 재배치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연구원 수입원 내 R&D 비중을 확대해 단순히 시험·인증하는 기관에서 '미래전략산업 R&D 허브 시험인증기관'으로 변모하게 만들겠다. 이미 지난해 로봇 암 기반 무인 칭량 시스템, AI활용 성적서 자동 생성 등을 통해 시험시간을 50% 이상 단축하고 '휴먼에러 제로'를 실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독자분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이 있다면.
△세계 경제·통상 환경은 미중 간 패권경쟁, 미국발 관세전쟁 등으로 요동치고 있다. 또 세계 산업의 주도권을 좌우할 AI기술이 피지컬AI로 진화함에 따라, 수출 주도형 국가이자 제조 강국인 한국의 미래는 '피지컬AI 육성 및 전환'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약 우리나라가 이 기회를 잘 활용해 기존의 제조 역량을 토대로 AI기술을 발전시켜 나간다면 한국은 피지컬AI 시대의 선두 주자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다. KTC는 앞으로도 '한국의 AI 3대 강국 도약'을 위해 정부정책에 발맞춰 우리 기업과 산업을 적극 지원하겠다.
○…안성일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KTC) 원장은
통상·지역·에너지 정책을 두루 거친 산업·통상 정책 전문가다. 경찰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학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미국 콜로라도대에서 통신공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산업통상자원부 신통상질서전략실장, 경제자유구역기획단장, 지역경제정책관 등을 역임했다. 2023년 KTC 원장에 취임한 뒤 시험·인증 체계의 고도화와 국제 공인 확대를 통해 '산업 전주기 파트너'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안영국 기자 ang@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