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CES 2026에서 인텔 키노트 무대에 올랐던 아라빈드 스리니바스 퍼플렉시티 최고경영자(CEO)는 로컬 컴퓨팅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인상 깊은 화두를 던졌다. 그는 “우리는 마침내 하이브리드 인공지능(AI) 시대를 향한 본격적인 여정에 들어섰다”고 전망했다.
그는 근거를 덧붙였다. 현재 AI가 느리게 느껴지는 이유는 데이터가 클라우드서버 팜까지 수천㎞를 이동했다 돌아오기 때문이다. 로컬에서 처리하면 지연이 없고 즉각적인 답을 얻을 수 있다. 또 최근 심각한 문제로 떠오른 프라이버시와 보안 문제가 있는데, 로컬 컴퓨팅을 활용하면 개인 프라이버시가 기기 밖으로 나가지 않아 안전하다. 기업 차원에서는 단순히 비용을 아끼는 것을 넘어, 데이터의 관할권과 규제 준수 권한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는 점이 결정적이다. 이는 결국 '내 지능(Intelligence)을 내가 소유하는 것'과 같으며 AI가 우리 삶에 깊숙이 뿌리내리기 위한 필수 조건이 된다.
한국 기업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AI 도입 자체보다도 '데이터를 어디까지 외부로 내보내도 되는가'가 더 중요한 의사결정 기준이 되는 경우를 자주 본다. 국가와 산업 특성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입장에서, 로컬과 클라우드를 병행하는 하이브리드 AI는 기술적 선택이 아니라 현실적 해답에 가깝다.
2026년, 우리는 시시각각 발전하는 AI의 새로운 챕터를 목도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우리가 경험한 AI가 거대언어모델(LLM)에 기반을 둔 클라우드 중심의 '신기한 도구'였다면, 이제는 클라우드 한계를 넘어 로컬 기기와 결합한 '하이브리드 AI'가 부상하고 있다.
지금까지 AI 혁명은 대부분 거대 데이터센터에 의존해 왔다. 하지만 모든 데이터를 클라우드로 보내 처리하는 방식은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사용자가 늘어날수록 서버 부하는 가중되고, '빙글빙글 도는 대기 아이콘'을 보며 데이터를 기다리는 시간은 길어진다. 기업 입장에서는 천문학적 추론 비용이 부담이고, 개인과 기업 모두에게 데이터 프라이버시는 타협할 수 없는 가치가 됐다.
'하이브리드 AI'는 이를 해결할 해법 중 하나로 제시된다. 글로벌한 추론과 복잡한 계획은 클라우드가 담당하되, 즉각적인 반응과 보안이 필요한 작업은 내 PC와 엣지 기기에서 처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 숏폼 영상 플랫폼의 'AI 클리퍼' 기능은 클라우드 용량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텔의 AI PC NPU를 활용하는 하이브리드 방식을 택했고, 그 결과 비용은 줄이면서도 성능은 높이는 성과를 거뒀다. 이는 AI가 경제성을 갖춘 지속 가능한 기술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이러한 하이브리드 구조 위에서 PC의 정의도 바뀌고 있다. 과거 PC가 사용자 명령을 수행하는 수동적인 도구였다면, AI PC는 사용자 의도를 파악하고 창작을 돕는 '에이전트'이자 '지능형 파트너'가 되고 있다.
'바이브 코딩'이 좋은 예다. 소프트웨어(SW) 엔지니어링은 어려운 컴퓨팅 언어를 코딩하는 것이 아니라, AI와 함께 아키텍처를 설계하고 아이디어를 디자인하는 과정이 됐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더 중요해지는 것은 사람이 무엇에 집중할 수 있게 되느냐다. 반복적인 자료 정리나 정보 취합에 쓰이던 시간이 줄어들고, 대신 방향을 고민하고 창의적인 의사결정에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게 되는 변화는 AI PC가 만들어내는 가장 본질적인 가치다. 마치 CAD가 엔지니어들에게서 제도판을 걷어내고 설계를 혁신했듯, AI는 반복적이고 지루한 작업에서 해방된 인간이 창의성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
게이밍 분야에서도 AI는 단순한 화질 개선을 넘어선다. '배틀필드 6' 같은 최신 게임은 AI 기반의 멀티 프레임 생성 기술을 통해 하드웨어의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는 부드러운 화면을 제공한다. 이로써 수백만 명의 게이머가 얇고 가벼운 노트북에서도 고사양 데스크톱급의 성능을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AI가 워크플로를 재편하고, 산업의 경계를 넘어 개인의 경험을 근본적으로 확장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모든 SW적 혁신과 사용자 경험의 변화는 결국 강력한 하이브리드 성능을 뒷받침할 '반도체'가 있기에 가능하다. 올해 인텔이 1.8나노급 공정 양산에 성공하며 '코어 울트라 시리즈 3'를 출시한 것은 단순한 신제품 발표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리본펫(RibbonFET)과 파워비아(PowerVia) 등 혁신 기술이 집약된 새로운 칩은 전력 효율과 성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킨다. 노트북의 배터리 수명을 '시간' 단위가 아닌 '일' 단위로 논할 수 있게 된 것은, 언제 어디서나 AI 에이전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는 뜻이다. 또 이는 인텔의 제조 역량 강화와 글로벌 공급망의 안정성을 상징하며, 반도체 제조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이러한 기술 리더십은 200개가 넘는 OEM 디자인으로 확장되며 역대 가장 광범위한 AI PC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
더 나아가 18A 공정의 산물은 PC를 넘어 로봇, 스마트 시티, 스마트 팩토리, 헬스케어 등 엣지(Edge) 디바이스로 확장되고 있다. 산업용 엣지 환경의 고유한 과제들을 해결하며 진정한 피지컬 AI 실현이 가능해진 것이다. 특히 주목할 것은 '시각 언어 모델(VLM)'의 도입이다.
최근 국내 제조 현장에서 엣지 AI가 실제로 적용되는 사례들을 접하며, AI가 더 이상 화면 속 기술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을 실감하게 된다. 현장의 복잡한 상황을 시각적으로 이해하고 스스로 판단하는 AI는 산업의 작동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불과 몇 년 전 모델보다 140배나 더 거대해진 VLM이 현장에 적용되고 있으며, 과거의 기계가 단순히 데이터를 수집하는 데 그쳤다면, 최신 엣지 AI는 현장의 복잡한 상황을 시각적으로 인지하고 스스로 판단하여 기계를 제어한다. 별도의 고성능 외장 그래픽 카드 없이도 칩 하나로 산업용 로봇이나 자율주행 기기가 고도의 AI 연산을 수행하게 되는 것은 AI가 모니터 화면 속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 세계에서 우리와 상호작용하는 진정한 '에이전트 시대'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2026년은 AI 컴퓨팅의 여정에서 또 하나의 전략적 변곡점이 될 것이다. 메모리 가격 상승은 기업과 개인에게는 분명한 부담이지만, 반도체 산업이 국가 경제의 핵심 축인 대한민국에서는 산업 구조와 경쟁력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고 있다. 2025년 GPU 공급 불안에서 시작된 시장의 변동성은 이제 메모리로 확산되며, AI 인프라 전반의 비용 구조와 설계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메모리 다음은 무엇일까. 이처럼 미래 예측이 더욱 어려워진 2026년의 출발점에서, AI 컴퓨팅을 모두 클라우드에 의존할 것인지, 아니면 로컬과 역할을 나눌 것인지는 더 이상 기술적인 논쟁이 아니다. 비용과 성능, 보안, 그리고 지속 가능성까지 고려할 때, 더 똑똑하고 효율적인 반도체를 기반으로 클라우드와 로컬이 조화를 이루는 하이브리드 AI는 가장 현실적인 해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제 기술의 주도권은 다시 사용자에게로 이동하며, 진정한 의미의 '퍼스널(Personal) 컴퓨팅' 시대가 새롭게 열리고 있다. 우리는 지금, 그 거대한 변화의 파도 위에 서 있다.
배태원 인텔코리아 사장 angela.park@intel.com

〈필자〉배태원 인텔코리아 사장은 1999년 인텔에 입사해 25년 이상 영업, 마케팅, 비즈니스 전략 기획 등 다양한 분야에서 주요 직무를 수행했다. 특히 삼성 담당(어카운트) 팀을 이끌며 인텔 영업 및 마케팅 부서에서 삼성과의 광범위한 비즈니스 관리를 담당해온 바 있다. 2024년 9월 인텔코리아 사장을 맡아 인텔의 혁신을 가속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