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S, 암세포 성장 전략 규명...위암 발병 초 치료 전략 가능성 제시

기초과학연구원(IBS·원장 직무대행 김영덕)은 유전체 교정 연구단(단장 구본경)이 위암 발생 초기 단계에서 암세포가 주변 환경의 도움 없이 스스로 성장 신호를 만들어 증식하는 과정을 규명했다고 24일 밝혔다.

이번 연구는 위암에서 오랫동안 설명되지 않았던 '암세포의 자율적 성장' 메커니즘을 실험적으로 입증한 성과다. 위암 발병 초기 단계를 겨냥한 새로운 치료 전략 가능성을 제시한다.

대장암의 경우 특정 유전자 돌연변이로 세포 성장·증식을 조절하는 WNT 신호가 지속 활성화되는 것이 잘 알려져 있지만, 위암에서는 이런 돌연변이가 드물어 암이 어떤 경로를 통해 성장하고 유지되는지 명확한 설명이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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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위 조직과 종양성 위 조직에서의 성장 신호 조절 방식의 차이

연구진은 위암이 발생하는 전암 단계, 즉 암으로 발전할 수 있는 분자적 변화를 이미 획득한 세포에 주목했다. 연구진은 정상 위 점막 세포와 전암 단계의 위 점막 세포를 비교할 수 있는 생쥐 모델과 오가노이드(3D 장기유사체) 모델을 구축하고, 세포 성장에 필요한 외부 신호를 하나씩 제거하는 방식으로 실험을 설계했다. 그 결과 정상 위 점막 세포는 외부 신호가 차단되면 성장이 멈춘 반면, 전암 단계 세포 가운데 특정 유전자 변이를 가진 세포는 외부 도움 없이도 성장을 지속했다.

그 결과, 위암 환자 약 3분의 1에서 발견되는 KRAS나 HER2 유전자 변이가 중요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런 변이가 활성화되면 세포에 '성장' 신호를 전달하는 MAPK 신호 경로가 과활성화되고, 이 신호가 다시 위 점막 상피세포에서 WNT 신호 분자의 발현을 유도한다는 점을 밝혀냈다.

WNT 신호는 위 점막 세포의 재생과 유지를 조절하는 신호로, 정상 상태에서는 주변 환경에서 공급된다. 그러나 암 발생 초기에는 암세포가 이 신호를 스스로 만들어내면서, 더 이상 암세포를 둘러싼 신호 환경인 '미세환경(niche)'에 의존하지 않아도 증식할 수 있는 상태로 전환되는 것이다.

연구진은 MAPK 신호가 활성화됐을 때 세포 내부에서 실제로 어떤 유전자들이 반응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개별 세포 수준에서 유전자 발현을 분석했다. 그 결과 MAPK 신호가 활성화될 경우 WNT 신호를 만드는 유전자의 발현이 뚜렷하게 증가하는 반면, 해당 신호를 차단하면 암세포의 자율적 성장이 다시 억제되는 것이 확인됐다. 이는 위암 초기 단계에서 암세포의 자율적 성장이 MAPK-WNT 신호 축에 의해 조절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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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왼쪽부터 이지현 연구위원, 이희탁 연구위원(교신저자), 이재훈 연구원(1저자), 김수민 연구원(1저자), 오영철 연구원(1저자)

연구진은 이어 이 메커니즘이 실제 환자에서도 적용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위암 환자 유래 오가노이드를 이용한 검증 실험을 진행했다. 세브란스병원과 독일 드레스덴 의과대학과의 국제 공동연구를 통해 확보한 환자 유래 세포에서도 생쥐 모델에서 확인한 신호 변화가 동일하게 나타났으며, 특히 KRAS 또는 HER2 변이를 가진 환자 샘플에서 암세포가 외부 신호 없이도 성장할 수 있는 특성이 뚜렷하게 관찰됐다. 이는 동물 모델에서 규명한 기전이 실제 인간 위암에서도 작동함을 보여준다.

이지현 연구위원은 “이번 연구는 위암이 발생하는 초기 단계에서 암세포가 어떻게 성장 환경으로부터 독립하는지를 실험적으로 규명한 첫 사례”라며 “암세포가 자율적인 성장을 획득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신호 경로를 밝혀냄으로써, 위암의 초기 발병 단계를 겨냥해 차단하는 새로운 항암 치료 전략의 가능성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연세대 의대의 정재호·김현기 교수팀, 독일 드레스덴 공대 및 칼 구스타프 카루스 대학병원 다니엘 슈탕게 교수팀과 공동 수행됐다. 연구 결과는 '몰레큘러 캔서'에 16일 게재됐다.


김영준 기자 kyj85@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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