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십년간 난제로 남아있던 가벼운 원자핵 생성 문제에 대한 중요 전환점이 제시됐다.
한국연구재단은 ALICE 국제 공동연구팀(한국팀 대표 권민정 인하대 교수)이 유럽핵입자물리연구소(CERN) 거대강입자가속기의 양성자 간 충돌실험을 통해 중수소 생성 메커니즘을 실험적으로 규명했다고 23일 밝혔다.
ALICE는 CERN의 거대강입자가속기를 이용한 국제 공동프로젝트 중 하나로, 빅뱅 직후 백만분의 1초 후에 형성됐을 원시 우주를 재현하고 관찰함으로써 우주 초기 물질 생성과정과 상호작용을 밝히고, 우주 진화과정 및 강한 상호작용의 근본 원리를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40개 국가, 170개 기관의 1900여명이 참여하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8개 기관, 52명의 연구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가벼운 원자핵인 중수소는 결합에너지가 수 메가일렉트론볼트(MeV) 수준으로 매우 약함에도 불구하고, 수백 MeV 이상 에너지가 집중되는 초고온 강입자 충돌 환경에서 다량 생성되는 이상 현상이 관측돼 왔다.
이는 쉽게 깨져야 할 약한 결합 원자핵이 극한 조건에서도 생성된다는 점에서 핵물리학의 중요한 미해결 문제로 남아 있었다.
연구팀은 CERN의 거대강입자가속기에서 수행된 양성자-양성자 충돌실험에서 생성된 파이온과 중수소 쌍의 움직임을 정밀하게 분석, 입자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형성됐는지를 추적했다.
특히 델타 공명입자(고에너지 실험에서 관측되는 들뜬 상태 입자)가 붕괴하며 생성된 양성자와 중성자가 다시 결합할 경우 그 흔적이 데이터에 뚜렷하게 남는다는 점에 주목했다.
분석 결과 관측된 중수소와 반중수소의 약 60%가 델타 공명입자가 붕괴된 후 형성된 것으로 확인됐으며, 모든 공명입자 붕괴의 기여를 포함하면 그 비율은 약 90%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중수소가 충돌 과정에서 곧바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공명입자 붕괴 후 생성된 입자들이 다시 결합하면서 형성된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번 연구는 가벼운 원자핵이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대한 최초의 직접적인 실험 증거를 제시함으로써 고에너지 핵물리학의 핵심 난제를 해결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또 핵 생성 과정을 정확히 기술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우주물리와 천체물리 모델 정밀도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권민정 인하대 교수는 “이번 연구는 중수소 형성 메커니즘에 초점을 맞췄으나, 삼중수소와 헬륨 등 더 복잡한 원자핵에 관한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며 “더 큰 규모 충돌 환경에서 공명입자 붕괴가 핵 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체계적으로 비교·검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인희 기자 leeih@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