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는 질주, 한국은 제자리…현물 가상자산 ETF 연내 허용 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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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

주요국이 가상자산 ETF 제도를 속속 도입하며 시장 주도권 경쟁에 나서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자본시장법 개정이 지연되면서 제도 공백이 장기화하고 있다. 9일 종료되는 정기국회 내 처리도 어렵다는 전망이 나오며 글로벌 경쟁력 저하 우려가 커지고 있다.

8일 국회에 따르면 가상자산 현물 ETF 허용을 위한 관련 개정안은 총 4건이 계류 중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는 민병덕 의원이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박상혁 의원이 디지털자산 시장·산업법 제정안을 각각 발의했다. 야당인 국민의힘 정성국·송석준 의원도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제출하며 입법 경쟁에 합류했다.

주요 내용은 △ETF 기초자산 범위에 가상자산을 포함하고 △신탁업자의 가상자산 수탁을 허용하며 △가상자산 기반 파생상품 시장의 근거를 마련하는 점이 핵심이다.

하지만 입법 논의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의 하반기 조직 개편과 정부의 증시 활성화 대책 등에 정책 역량이 집중되면서 가상자산 제도화가 후순위로 밀린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당국도 현재는 디지털자산 기본법을 우선 과제로 두고 있어, ETF·파생상품 제도화 논의는 그 이후에야 본격 검토될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다.

현행 법령상 국내에서는 가상자산을 기초자산으로 한 현물 ETF 발행은 물론, 해외 현물 ETF의 국내 중개도 허용되지 않는다. 자본시장법상 기초자산 범위에 가상자산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금융당국의 유권해석이 그 근거다.

금융위원회는 외국인 이용자 문제와 금가분리(금융·가상자산 분리) 원칙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가상자산 파생상품 역시 제도적 틀 안에서 함께 검토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국내에서는 제도적 공백으로 논의가 지연되는 사이, 글로벌 시장은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미국에서는 비트코인(BTC)에 이어 이더리움(ETH), 솔라나(SOL), 엑스알피(XRP) 등 주요 가상자산 기반의 현물 ETF가 잇따라 상장됐으며, 최근에는 그레이스케일의 도지코인(DOGE) 현물 ETF까지 시장에 데뷔했다.

시장 규모도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이날 기준 미국에 상장된 비트코인·이더리움 ETF 시장의 운용자산(AUM)은 전년 대비 1407억 달러(약 206조 원) 증가했다. 이 중 비트코인 ETF가 1227억 달러(약 180조원), 이더리움 ETF가 179억 달러(약 26조원)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권 수장들이 올해 초 가상자산 ETF를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기대감을 드러냈지만, 이러한 전망도 결국 물거품이 됐다. 서유석 금융투자협회장은 신년사에서 “가상자산 ETF 등 디지털자산 시장 확대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 역시 “가상화폐 ETF 등 신규 사업을 추진할 때 해외 사례를 면밀히 벤치마킹해 자본시장의 새로운 영역을 모색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박유민 기자 newmi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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