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탈리아 검찰이 1990년대 보스니아 내전 당시 사라예보에서 벌어진 이른바 '인간 사냥 관광'(sniper safaris·저격 사파리) 의혹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현재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수도인 사라예보는 지난 1992년 4월 5일부터 1996년 2월 29일까지 총 4년여간 봉쇄돼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잔혹한 학살이 벌어진 곳이다.
당시 유고슬라비아 해체 이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가 독립을 선언하자 보스니아 세르비아계 민병대가 사라예보를 포위해 물자를 차단하는 한편 대규모 공격을 퍼부어 수많은 민간인과 정부군 등 1만1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이탈리아 라 레푸블리카·영국 BBC 방송 등에 따르면 11일(현지시간) 밀라노 검찰은 이 사라예보 포위전에서 진행된 해외 부유층들의 '인간 사냥' 의혹과 관련해 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인간 사냥' 의혹은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에지오 가바체니의 고발로 세상에 알려졌다. 가바체니는 사라예보 주변 언덕에서 '매우 부유한 사람들'이 무방비 상태의 민간인을 죽일 수 있는 관광 상품을 구매했다고 폭로했다.
그에 따르면 '인간 사냥 관광'은 1990년대 초 이탈리아·영국·프랑스·독일·미국·러시아 등 여러 국가 부유층 인사들에게 판매됐다. 이들은 세르비아계 민병대에 최대 10만유로(약 1억4000만 원)를 지불하고 사라예보의 민간인을 '사냥'했다고 한다.
사냥은 사라예보로 들어가는 메인 스트리트인 메샤 셀리모비치 대로에서 이뤄졌다고 한다. 민병대가 주둔해 매우 위험하지만 사라예보 공항으로 이어진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에 도시를 빠져나가기 위한 이들이 계속해서 몰려들었다. 총성이 난무해 '저격 골목'이라고도 불렸다.
현지 보도에 따르면 사냥 대상에 따라 각기 다른 '가격표'가 부여됐다. 어린 아이가 가장 비쌌으며, 그다음은 남성, 특히 제복을 입은 남성이 더 비쌌다. 그다음이 여성이었다. 노인은 무료로 죽일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가바체니는 30년 전 이탈리아 신문 코리에데 델라 세라의 기사를 통해 이 소식을 처음 접했다. 그러나 당시 보도는 물증 없이 증언에만 기반해 작성됐다.
가바체니가 사건을 본격 조사하기 시작한 것은 2022년 슬로베니아의 미란 주파니치 감독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 '사라예보 사파리'를 관람한 이후다. 가바체니는 사라예보 전 시장인 베냐미나 카리치와 전직 판사인 기도 살비니의 지원을 받아 올해 2월 검찰의 자신의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검찰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가바체니는 “많은 사람들이 이 범죄에 가담했다. 적어도 100명 이상”이라며 “이탈리아인들이 이를 위해 '엄청난 돈'을 지급했다. 오늘날 가치로 환산하면 최대 10만유로에 달한다”고 말했다.
보스니아의 자체 조사는 중단된 상태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1995년 데이턴 협정 체결 이후로 민족별로 분리된 복잡한 정치 구조를 가지고 있어 자체적인 사법 시스템으로 당시 범죄를 처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보스니아 정부는 이탈리아 조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보스니아 영사인 다그 둠루크치치는 라 레푸블리카에 “우리는 이처럼 잔혹한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 과거를 청산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검찰과 경찰은 이 사건에 누가 연루되었을지 알아내기 위해 증인 목록을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 의혹이 '도시 전설'이라고 주장도 있다. 당시 사라예보에서 복무했던 영국군 병사는 BBC 방송에 “저격 관광에서 들어본 적이 없다. 당시 검문소가 늘어났기 때문에 제3국 사람들을 데려오려는 시도는 물리적으로 달성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