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까지 일본은 과학분야에서만 27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일본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는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고 아시아에서는 가장 많다. 지난해 네이처 인덱스 세계 과학기술 국가 순위에서 일본은 세계 5위를 차지했다. 한국으로서는 부러운 수치다.
무엇이 차이를 가져왔을까. 대부분 일본이 기초과학에 많은 연구비를 투자했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어느 정도는 맞지만 이것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노벨상은 개인 1인의 연구 목표를 위한 아이디어와 노력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우수한 연구그룹이 몰입해 연구하는 와중에 우연히 발견한 이상현상에 대한 통찰력과 이를 기존 과학지식과 연결해 새롭게 해석하고 과학적으로 모델링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를 구현하고 재현하기 위한 연구그룹 전체의 노고가 후속연구로 이어져 최초로 제안한 해석모델이 점차 다른 연구그룹에 폭넓게 확산, 인류에게 공헌한 가치를 인정받아 수상의 영예로 귀결된다.
필자의 견해로는 일본의 과학분야 노벨상 다수 배출 비결은 이공계 대학의 연구그룹 중심 운영이 핵심이다. 일본에서는 노벨상 수상자 그룹이 탄생하면 수상자의 지식을 응용해 실용화로 가져가기 위한 연구와 투자가 이뤄진다. 일본에서는 1949년 노벨물리학상 수상 이후 최첨단 과학분야 연구그룹이 늘면서 매번 수상자가 탄생할 때마다 반복적으로 우수한 후속 연구그룹이 등장했다.
또 미국, 독일 같이 특정한 기관에 대형연구그룹 지원이 어렵기 때문에 전국 국립대학의 다수 소형연구그룹(교수, 준교수, 조수) 지원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다. 소형연구그룹간 경쟁을 기본으로 삼고 우수 학생도 소그룹에 지원하는 방식이다.
좀 더 들여다보면 국내·외 학회위원회활동으로 오피니언 리더역할, 대학원생 연구지도, 논문저술, 학생강의, 산학협동연구와 같은 활동으로 그룹전체의 실적을 일정비율로 교수 인사에 반영한다. 기자재 공동활용, 대학원생간 실험협조 및 조언, 교수-대학원생간 갑질 방지 및 원활한 갈등완화 등 수없이 많은 특징이 있다.
한 가지 더 주목할 점이 있다. 일본 국립대학은 학부 4학년이면 대학원 연구실에 배속돼 졸업논문을 쓰면서 연구트레이닝을 시작한다. 연구실에 우수한 학생이 나오면 조수라는 전임강사급 교수요원으로 조기발탁하는 제도가 있다. 추천은 연구그룹의 미래경쟁력을 결정하는 중요한 사안이다. 조수는 실험지도, 강의, 학생지도도 가능해 연구실적과 교육실적을 조기에 쌓을 수 있어 후일 조교수, 준교수로 진급이 가능하고 타 대학으로도 쉽게 진출할 수 있다.
반면 한국의 경우, 자유연구원칙에 기반한 교수 개인연구실적평가를 상식으로 여긴다. 정부로서도 특정 교수 개인에 연구비를 몰아 준다. 책임교수는 담당 공무원의 '성과 재촉'을 따라가느라 권력지향형으로 변질되고 만다. 이러한 분위기가 대학 풍토를 좌지우지해 노벨상과는 거리가 멀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대학의 유효 연구자원 공동활용 미흡, 연구성과의 상호활용 부재, 교수의 연구비 부정, 대학원생에 대한 갑질 등 고질적인 병을 안고 있다. 외부 감사기관의 시각에만 맞추느라 오히려 더 시대퇴행적인 행정을 잉태하고 만다. 이는 대학 개혁의 한계와 직결된다.
한국에서는 노벨상을 목표로 연구주제를 선정한다. 기초과학이라면서 거대한 연구비 지원을 따내려 한다. 이 방식은 현 시점에서 세계 선두에 있는 연구그룹과 유사한 연구를 하면서 경쟁에서 이기겠다는 발상이다. 입시학원 경쟁체제의 버릇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대부분 노벨상이 분야를 막론하고 우수한 연구자들의 일상 연구에서 예기치 않은 현상 발견과 통찰력으로 시작된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단기에 추진하고자 하는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성패를 좌우할 중요한 시사점이다.
우리나라도 교수 개인 역량과 도덕성에 기반한 자유로운 개인연구 중심에서 대학내 소형 연구그룹활동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에 기반한 자대 출신 교수요원 조기발탁에 대해 사회적인 담론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선규 광주과학기술원 기계로봇공학부 명예교수(동경공업대학 석·박사) skyee@gist.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