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정부가 반도체에 고관세를 부과할 경우, 메모리 시장이 다시 침체 국면에 빠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하이퍼스케일러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요 감소뿐 아니라 전자제품 판매까지 줄어 메모리 시장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전망이다.
시장조사업체 테크인사이츠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현재 고율 관세 면제 품목인 반도체에 100% 이상의 고관세가 적용될 경우, 세계 메모리 시장 규모가 2025년 1760억 달러, 2026년 1410억 달러에 그칠 것으로 예측했다. 이는 전년 대비 각각 12%, 20% 감소하는 수치다.
조사는 미국과 중국이 반도체에 100% 이상의 상호 관세를 부과하며 무역 갈등이 격화될 가능성을 전제로 한 시나리오에 따른 것이다. 반면, 현행 관세 체계를 유지할 경우에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를 중심으로 메모리 시장이 2년 연속 18% 성장세를 이어가며 2026년 237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분석됐다.
테크인사이츠는 설령 미국이 일부 품목에만 30~40% 수준의 중간 관세만 부과하더라도, 2026년 메모리 시장은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올해는 전년 대비 11% 증가한 189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이나, 내년에는 5% 줄어든 1790억 달러에 머물 것으로 예측했다.
셰린 복스 테크인사이츠 시니어 애널리스트는 “올해 상반기에는 관세 인상 우려로 인해 반도체·전자업체들이 부품을 미리 확보하는 '선주문'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며 “이에 따라 단기적으로 출하량이 일시 증가할 수 있지만, 하반기에는 재고 누적과 수요 둔화로 시장이 급격히 냉각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100% 이상의 고관세가 실제 도입되면 아마존웹서비스(AWS), 마이크로소프트 애저, 구글 클라우드 등 하이퍼스케일러 데이터센터 투자 축소로 인해 메모리 시장에 상당한 타격이 예상된다. 더불어 미국과 유럽이 동반 경기 침체에 들어가고, 올해 4분기부터 전자제품 소비가 급감함에 따라 연말 쇼핑 성수기 자체가 실종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또 세계 반도체 웨이퍼 팹 장비 시장도 고관세 도입 시 반도체 제조사의 투자 축소로 인해 위축될 것으로 분석됐다. 테크인사이츠는 100% 이상의 관세 부과 시 2025년 960억 달러, 2026년 870억 달러로 각각 8%, 10% 역성장한다고 내다봤다.
미국 정부는 최근 중국과 상호 부과하던 초고율 관세를 대폭 인하하고, 일부 관세를 90일간 유예하기로 했다. 하지만 전 세계 국가를 대상으로 유예 중인 반도체 관세 부과를 위한 조사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난 7일 204건의 의견서를 받았고 이를 분석·검토하는 단계에 있다.

박진형 기자 j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