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행정학 전문가들이 내달 새롭게 출범할 정부의 핵심 정책 방향으로 '기술'을 꼽았다. 급격한 글로벌 환경 변화와 구조적 위기를 타개할 정부 조직으로 △미래 기술 육성 △인재 육성 △규제 개혁 중심의 체계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한국행정학회는 30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새정부 국정운영 패러다임과 정부조직 개편의 방향' 세미나를 열고, 차기 정부가 지향해야 할 정책 방향과 부처 개편 이슈를 논의했다.
정광호 행정학회 회장(서울대)은 기조발표에서 새정부 패러다임 전환과 조직개편 필요성을 진단했다. 대외적으로는 미·중 전략 경쟁과 기후위기, 내부적으로는 인구소멸, 지역 불균형, 혁신 정체 측면에서 개혁이 필요한 시점에 왔다고 봤다.
정 회장은 무엇보다 경제안보 능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단순 축소가 아닌 미래 핵심 역량에 집중할 수 있도록 경제 안보와 첨단 산업 분야 육성, 이를 위한 인재 육성까지 이 부분에 집중할 수 있는 정부가 구성돼야 한다”고 했다.
특히 차기 정부가 규제 개혁에 강한 의지를 보여주길 바랐다. 정 회장은 규제혁파위원회 신설을 제안하며 “먼저 규제를 완화하고, 이후 이의를 제기하는 방식이 정착되어야 한다. 부처간 협의 없이도 규제 완화를 승인할 수 있어야 하고, 규제의 존속을 입증하는 책임은 부처가 지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 과학기술 및 연구개발과 이후 기술사업화까지 이어지는 체계에 대한 관리 효율성 이슈도 다뤄졌다.
이삼열 연세대 교수는 '지속가능한 연구개발 생태계'를 주제로 한 강연에서 연구개발과 기술사업화 주체의 재편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연구개발 예산 너무 많은 주체들에게 배분되고 있다”며 “이를 재조정해 연구의 자원을 집중하고 중장기적 연구 기반의 획기적 개선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 일환으로 과학기술혁신본부 혹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기술사업화에 대한 총괄 전략을 수립하고 파편화된 각 부처 사업들을 조정하는 역할을 맡는 방안을 제시했다. 기술이전과 창업지원, 관련 인재 육성 등 다양한 정책을 조정하고. 기본계획을 수립하는 실행과 평가를 책임지는 거버넌스 구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윤경준 한성대 교수는 기후 및 에너지부 소관부처 이슈와 관련해 탄소중립과 기후적응을 이원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산업통상자원부와 환경부 통합 구상이 언급되는 것에 대해 “문제를 풀기 위한 선결 과제를 인지 못 한 것이다. 기후 완화정책과 적응 정책은 엄연히 다른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또 “고도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갖춘 기후변화위원회를 설치하고, 탄소중립장관회의(가칭), 기후적응장관회의(가칭)을 구성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탄소중립 소관 부처는 산업부의 에너지와 환경부의 탄소중립 조직을 이관해 신설 부처를 만드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를 산업부로 일임할 경우 조직이 너무 거대해지고, 환경부는 탄소중립보다는 기후적응 분야에 집중하는 것이 낫다는 설명이다.
허형조 단국대 교수는 중소·벤처·스타트업 육성 정책 필요성을 강조했다. 국가 경제와 일자리 기여도 등에서 대기업의 비중이 줄고, IT·바이오 벤처 비중이 커지는 만큼 중소벤처기업부 역할 확대가 필요하다고 봤다. 아울러 대통령 직속 '기업혁신성장위원회' 신설도 제안했다.
허 교수는 “벤처기업이 성장해 경제 주체로 자리잡을 때 국가 경제의 지속성장 가능성도 입증된다”며 “벤처·스타트업 속도만큼 부처별 칸막이를 허무는 빠른 정책 대응이 첨단 기술 생태계를 선도할 수 있다”라고 했다.
행정수도의 세종시 이전에 대해 지역균형발전 차원에서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진수 서울대 교수는 “지금 세종시는 아직 일부 부처가 이전하지 않고 있고, 대통령실과 국회도 남아 있어 공간 분리에 따른 비효율이 발생하고 있다”라며 “미국 워싱턴 D.C.를 모델로 할 수 있는 이상적인 행정수도로 세종시가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본다”라고 했다.
새정부 조직개편과 관련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당부도 나왔다.
정 회장은 “미국 트럼프 신정부의 경우, 정부효율부를 중심으로 중복 투자를 줄이고 비효율을 개선하는 취지로 개편이 있었지만, 너무 급진적이다 보니 핵심 기능이 사라지고 국민 공감대도 얻지 못하는 부작용이 발생했다”며 “새로운 정부는 이를 반면교사 삼아 정부 개편의 오류와 부작용은 피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조정형 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