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멕시코·캐나다에 25% 보편관세 부과 시행을 한 달 유예한다고 발표하자 멕시코에 생산 거점을 둔 국내 기업은 일단 안도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추후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향방에 상황이 다시 급변할 가능성이 충분한 만큼 면밀하게 모니터링한다는 방침이다.

4일 업계에 따르면 멕시코에서 생활가전과 TV를 생산하는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미국의 관세 부과 유예 소식에 안도하면서도 언제든 정책이 바뀔 수 있어 모니터링 태세를 유지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멕시코 관세 부과가 현실화되고 이에 따른 비용 부담이 지속될 경우에 대비해 스윙 생산, 생산라인 일부 이전, 미국 현지공장 신설 등 다양한 단계별 시나리오를 촘촘하게 마련했다.
삼성전자는 건조기 일부를 미국 공장에서 생산하고 베트남 등 해외 생산거점 물량을 늘려 미국에 공급하는 방안 등을 검토해왔다. LG전자는 최후의 선택지로 미국 공장 증설까지 검토하면서 한 가지 품목을 여러 거점에서 생산해 공급하는 스윙 생산 전략 등을 대응 시나리오로 준비해왔다.
가전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유리한 협상을 위한 일종의 협박 수단의 하나로 관세 카드를 꺼낸 것은 예상된 시나리오 중 하나”라며 “관세를 앞세워 유리하게 협상을 끌고 가는 기조가 계속될 수 있어 상당 기간 시나리오 대응 경영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멕시코에는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차그룹 등이 생산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관련 협력사들까지 포함하면 관세 부과에 따른 진폭이 상당할 수밖에 없다.
기아 멕시코 공장의 경우 지난해 27만여대를 생산, 62%를 미국에 수출했다. 관세 불확실성이 높은 만큼 미국 수출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에 대비해 판매처 다각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기아 멕시코 관계자는 “예단하기는 힘들지만 관세가 부과될 수 있다는 전제를 간과할 단계는 아니다”라며 “통관과 관세 부과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 한 달간의 미국·멕시코간 협의 내용에 맞춰 대처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주요 기업들은 관세 부과가 유예됐지만 언제든 관세 부과를 포함한 글로벌 통상 갈등이 벌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 방침에 반발해 유럽연합(EU)이 보복 관세 방침을 거론하는 등 국가별 정책 변화가 빠르게 전개되는 것도 새로운 리스크 요인으로 떠올랐다.
트럼프 대통령은 캐나다, 멕시코, 중국과 별개로 EU에 관세 부과를 공언했다. 또 산업별로는 반도체, 철강, 알루미늄, 구리, 석유, 가스 등에도 관세 부과 계획을 언급한 바 있다.
한편 한국수출입은행과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가 추산한 멕시코 진출 국내 기업은 2023년 기준으로 약 400곳에 달한다.
배옥진 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