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의 교과서 지위를 박탈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법률안을 둘러싼 논란이 증폭하는 가운데 에듀테크 업계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에 빠진 모양새다. 업계는 AI 디지털교과서의 교과서 지위 박탈도, 정부의 AI 디지털교과서 도입 1년 유예안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AI 디지털교과서가 정치 논리에 휘둘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태에 처한 데 대해 업계 불만도 고조되고 있다.
천재교과서, 와이비엠 등 6개 AI 디지털교과서 발행사들은 지난 13일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초·중등교육법 개정법률안 전면 백지화와 정부의 AI 디지털교과서 도입 1년 유예안에 관한 반대입장을 밝혔다. 이들은 특히 AI 디지털교과서 도입을 자율로 하는 정부의 1년 유예안에 대해 법적대응까지 시사했다.
AI 디지털교과서 사업과 직간접적으로 연계된 업체들은 무엇보다 당장의 관련 사업 계획을 수립하지 못하는 데 따른 우려와 매출 압박에 시름이 깊다.
한 AI 디지털교과서 발행사 관계자는 “AI 디지털교과서와 관련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올해 사업을 어떻게 계획해야 할지 막막하다”며 “AI 디지털교과서 개발을 위해 뽑은 인력 문제뿐 아니라 매출도 걱정이 크다”고 털어놨다.
여기에 더해 AI 디지털교과서 관련 업체 간 미묘한 온도 차도 감지된다. 개발에 참여한 기업과 참여하지 않은 기업간, 발행사로 선정된 업체와 탈락한 업체 간에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과 입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 에듀테크 대표는 “AI 디지털교과서의 도입 1년 유예안만 봐도 업체별 입장이 다르다”며 “AI 디지털교과서 발행사의 경우 회사의 생사가 달려 있기 때문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지만 AI 디지털교과서 검정에 탈락한 업체는 도입 1년 유예안을 기회로 볼 수도 있다”고 귀띔했다.
당분간 에듀테크 업계의 목소리는 하나로 모아지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한국에듀테크산업협회 관계자는 “에듀테크 업체마다 놓인 상황이 다른 만큼 하나의 견해를 내놓지는 못할 것”이라면서 “AI 디지털교과서 청문회와 2월경 대통령 탄핵 여부가 결정될 때까지 협회 차원의 공식적인 입장이 나오기는 어렵다”고 전했다.
AI 디지털교과서 논란으로 에듀테크 생태계 자체가 망가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에듀테크 업계에서는 AI 디지털교과서 정책의 실패가 에듀테크 전체의 실패로 낙인 될 수 있다는 것을 걱정한다. AI 디지털교과서가 에듀테크의 전부인 것처럼 인식될 것에 대한 고민도 크다.
AI 디지털교과서 개발에 참여하지 않은 중소 에듀테크 기업도 이번 논란의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가뜩이나 규모가 작은 에듀테크 시장에서 AI 디지털교과서의 등장으로 경쟁자가 많아지면 생존 경쟁이 더 격화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디지털교육협회 관계자는 “AI 디지털교과서와 연관이 없는 에듀테크 업체들의 경우 그동안 학교 현장에서 사용됐던 자사의 에듀테크 제품 채택이 줄어들 것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면서 “에듀테크 시장의 파이가 커지는 것이 아니라 AI 디지털교과서와 관련된 기업만 살아남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참에 AI 디지털교과서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에듀테크 업계 관계자는 “교과서 지위 박탈과 같은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차라리 AI 디지털교과서를 다시 만드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면서 “정부 주도의 AI 디지털교과서 정책보다 충분한 개발 기간을 두고 공급자와 수요자를 모두 만족하는 AI 디지털교과서를 개발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고 전했다.
마송은 기자 runni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