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쇼크에 바이오·헬스 '패닉'…사업계획 재검토

환율 급등으로 바이오·헬스 업계가 비상이 걸렸다. 원료의약품 수입부터 해외 임상시험까지 환차손 부담이 커지면서 새해 사업계획 수정까지 검토하고 나섰다. 고환율이 지속될 경우 자금을 총동원해 글로벌 임상에 사활을 걸고 있는 제약·바이오 벤처부터 크게 휘청거릴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2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15년 만에 원·달러 환율이 사상 최고치를 찍으면서 바이오·헬스 업계 상당수 기업이 새해 사업계획을 수정하거나, 수정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환율이 급등하면서 당초 예상했던 연구개발(R&D)이나 원자재 구매 비용이 크게 늘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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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환율 급등으로 당장 타격을 받는 곳은 원료의약품 수입이다. 2022년 기준 우리나라 원료의약품 국내 자급도는 11.9%로 15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실제 유한양행, 한미약품 등 국내 주요 제약사들은 지난해에만 원재료(원료의약품) 구입에 500억~800억원을 지출했다. 대부분 원료의약품을 유럽이나 중국, 인도에서 수입하는데 달러로 결제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환율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원료의약품 대부분을 중국이나 인도에서 수입하는데 계약 당시 환율로 구매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환율이 오르면 부담이 커진다”면서 “상대적으로 일본에서 수입하는 경우는 엔화 약세로 부담이 덜하지만 허가나 의약품 품질 이슈 등으로 공급처를 갑자기 바꿀 수도 없어 고민이 큰 상황”이라고 말했다.

해외에서 진행하는 임상시험 역시 비용부담이 커졌다. 해외 임상을 진행하는 기업들은 글로벌 임상시험수탁기관(CRO)과 계약을 맺고 진행하는데 결제 대금은 대부분 달러화다. 특히 최근 바이오 벤처들의 해외 임상 진출이 활발히 전개되는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고환율은 R&D 위축을 넘어 경영난까지 야기할 수 있다.

실제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에 따르면 올해 26일 기준 국내 제약·바이오·의료기기 기업의 해외 임상시험 승인 건수는 40건으로, 지난해 전체(27건)와 비교해 48.1%나 늘었다. 현재 진행 중인 해외 임상시험만 100건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이뿐 아니라 새해 글로벌 시장 진출을 계획하는 기업도 직격탄을 맞았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 현지 인력 채용, 사무실 임대 등 다양한 투자를 계획했지만 고환율로 부담이 커졌다. 실제 다수 의료AI 업체와 의료장비 업체들은 새해 미국 등 해외진출 계획 수정을 고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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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고환율이 지속될 경우 새해 사업계획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실제 주요 제약사는 물론 바이오벤처, 의료기기 기업까지 다수 기업이 사업계획 수정을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정규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 대표는 “해마다 글로벌 임상시험 등을 위해 100억원 이상을 R&D에 투자하는데, 환율이 지속 상승할 경우 최소 10억원의 비용이 추가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바이오벤처 입장에서 이 금액은 엄청나게 큰데, 실제 추가 비용 집행이 현실화될 경우 새해 사업계획 수정이 불가피하다”고 우려했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제약, 바이오기업은 견딜 수 있는 체력이 있지만 바이오 벤처들은 고환율이 지속될 경우 심각한 경영난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면서 “다양한 불확실성은 환율뿐 아니라 투자심리에도 영향을 미쳐 일부 글로벌 기업은 우리 바이오텍에 투자를 유보하는 등 악영향이 현실화되고 있는 게 가장 큰 우려”라고 말했다.


정용철 기자 jungyc@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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