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된 가운데 국가간 협상이 요구되는 원자력발전·방산 등 주요 수출 산업의 동력이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따른다. 정부 협상을 주도할 주체가 없는 상황에서 한국의 신인도까지 떨어지는 상황이 동시에 연출됐기 때문이다.
지난 7월 한국수력원자력을 중심으로 한 '팀 코리아'가 24조원 규모의 체코 두코바니 신규 원전 2기 건설 사업의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됐다. 한수원은 내년 3월 체코전력공사(CEZ)와 최종 수주 계약 체결을 목표로 실무 협상을 진행하고 있지만 위기감이 증폭하고 있다.
체코 당국이 내년 3월로 예정된 한국과의 신규원전 건설 계약 일정은 차질 없이 진행될 것이란 입장을 밝혔지만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직무 정지 등으로 인한 혼란으로 한국의 신인도가 추락한 것이 현실이다.
큰 장이 들어서는 유럽, 중동 등 주요 원전 시장 공략에 있어 이점을 잃어버린 게 더 큰 문제다. 체코 원전 수주로 한국이 제2의 개화를 앞둔 세계 원전 시장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동력이 일부 손실됐다는 게 업계 판단이다.
네덜란드를 필두로 폴란드, 영국, 핀란드 등 유럽과 중동 각지에서 신규 원자력 발전소 건설, 설비 교체 수요가 발생할 예정이지만 정부 간 협상을 기반으로 사업자를 선정하는 산업 특성상 대통령의 부재가 약점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15대 주력 수출 제품 자리를 넘보는 방산 산업도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방산업계에 따르면 폴란드 정부와의 K2 전차 2차 수출 계약 건은 애초 예상과 달리 올해를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파베우 베이다 폴란드 국방부 차관은 최근 현지 기자회견에서 K2 추가 도입과 관련, “(계약 체결을) 서두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힌 바 있다. 방산업계는 폴란드가 국내 상황을 지켜보고 최종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보고 있다.
앞서 방한한 사디르 자파로프 키르기스스탄 대통령은 4일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방문 계획을 취소하고 조기 귀국했다. 한국형 기동헬기(KUH) 시험비행과 생산 현장을 둘러볼 예정이었지만 방문 기간 중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황급히 한국을 떠났다.
지난 5~7일 예정됐던 울프 크리스테르손 스웨덴 총리 방한도 취소됐다. 크리스테르손 총리의 방한 목적에는 '방위산업 분야 협력 방안 구체화'가 포함돼 있었다는 게 정부 안팎의 관측이다. 특히 이번 방한에는 스웨덴 방산 업체 사브(SAAB) 등의 지분을 소유한 인베스터AB의 야코프 발렌베리 회장도 동행할 예정이었다.
업계 관계자는 “대통령 부재 기간이 얼마나 이어질지 알 수 없으나 이 자체로 정부 간 협상력이 약화한 것이 사실”이라면서 “원전, 방산 등 산업은 서로 주고받는 패키지딜 특성이 강한데 정부의 강력한 의지나 추진력이 꼭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최호 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