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의 탄생, 얼마나 알고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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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타 트렉〉의 커뮤니케이터

1973년 4월 3일, 뉴욕 맨해튼 힐튼호텔 근처의 6번가 거리에 한 중년의 사내가 서 있다. 말쑥한 양복 차림에 깔끔하게 면도를 한 사내는 호텔에서 예정된 기자회견에 앞서 공공장소에서 자신이 만든 장치를 실험해보고 싶었다. 그의 손에는 벽돌만한 크기의 육중한 무언가가 들려 있었는데 그 물체는 언뜻 보기에 전화기처럼 생겼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곧 자신의 생각이 터무니없다고 생각했다. 전화기라면 당연히 선에 연결되어 있어야 했지만 이 장치에는 어떤 연결선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집이나 사무실에서 전원을 꽂고 사용해야 하는 가전제품을 아무것도 없는 길거리에서 어찌 사용할 수 있겠는가.

사내는 그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손에 든 장치의 전원을 켰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숫자 버튼을 누른 후 귀에 갖다댔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장치에서 통화 연결음이 들려왔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설마 하는 심정으로 마른침을 삼켰고, 몇 번의 통화음이 울린 후 뚝 하는 소리가 들리자 고요해졌다. 중년의 사내가 입을 열었다.

“조엘, 나 마틴일세. 난 지금 핸드폰으로 당신에게 전화를 걸고 있다네. 손에 들고 다닐 수 있는 전화기 말일세.”

마틴 쿠퍼(Martin Cooper). 핸드폰의 아버지라 불리는 그는 핸드폰 발명가이자 핸드폰을 사용해 통화를 한 최초의 핸드폰 사용자이기도 하다. 1928년 태어난 쿠퍼는 시카고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으며 일리노이 공과대학교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4년간 해군에서 복무한 뒤 1년간 통신회사에서 일하다가 1954년 모토로라에 입사했다. 쿠퍼는 그곳에서 쌍방향 자동차 무전기를 개발하고, 의사들을 위해 건물 전체를 연결하는 초기 호출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가 휴대용 장치 개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67년 시카고 경찰서에서 작업을 의뢰받으면서부터다. 당시 경찰들은 상대와 연락을 주고받기 위해 경찰차에 설치된 카폰을 사용했는데, 이는 차 안에서만 사용할 수 있어 매우 불편하고 성가신 것이었다. 이에 쿠퍼는 자동차로부터 일정 거리 떨어진 범위 안에서 사용할 수 있는 탈착식 휴대 무전기 개발에 성공한다.

이후 마틴 쿠퍼는 TV 영화 〈스타 트렉〉에서 커크 선장이 사용하는 통신 장치인 금빛 플립탑(flip top) 커뮤니케이터에서 핸드폰에 대한 영감을 얻게 되고, 본격적인 개발에 착수한다. 하지만 이미 현실엔 강력한 경쟁자가 존재하고 있었다.

미국에서 가장 큰 통신회사인 AT&T의 R&D 부서인 벨연구소는 1947년 처음으로 이동통신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하지만 정부로부터 주파수를 승인받는 데 어려움이 있어 이를 현실화하는 데까지 이르지는 못했다. 그리고 1960년 모토로라가 이 분야에 뛰어들면서 모토로라와 벨연구소 간의 치열한 경쟁이 예고됐다.

휴대 장치 안에 무선 기술을 접목하려는 연구가 활발하게 전개되었는데, 먼저 벨연구소가 연결이 끊기지 않고 무선 간 호출을 전달할 수 있는 무선통신망을 개발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이 통신망은 오직 카폰(car phone)을 대상으로 한다는 제약이 있었다.

한편 모토로라의 마틴 쿠퍼와 엔지니어팀은 그들의 실험에 사용될 시제품을 개발했다. 세로 23센티미터, 가로 13센티미터 두께 4센티미터의 규격을 가진 이 장치는 무게가 무려 1킬로그램이 되었으며, 사용 시간은 20분, 충전은 열 시간이 걸렸다. 모토로라는 벌링턴 타워(현 얼라이언스캐피털 빌딩)의 지붕에 기지국을 설치하고, 이는 다시 지상 통신선 시스템으로 연결됐다. 마침내 1973년 4월 3일, 뉴욕 맨해튼의 힐튼호텔 근처 6번가에서 마틴 쿠퍼는 세계 최초로 핸드폰 통화에 성공한다.

통화 상대는 다름 아닌 그의 강력한 경쟁자인 벨연구소의 책임자 조엘 엥겔(Joel Engel)이었다. 쿠퍼는 얄궂게도 라이벌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승리를 알렸던 것이다. 이 공개 시연에서 사용된 모토로라 시제품은 그해 7월 『파퓰러 사이언스 매거진』의 표지를 장식한다. 이렇게 최초의 핸드폰 개발을 두고 벌어진 경쟁은 모토로라의 승리로 종결되는 듯했지만 아직 그들에게 넘어야 할 산이 남아 있었다.

마틴 쿠퍼는 사람들이 전화기를 어디서나 갖고 다닐 수 있기를 원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만든 최초의 무선 시스템을 모토로라가 단순히 카폰에 적용하려 했을 때도 핸드폰에 대한 의지를 꺾지 않았다. 쿠퍼는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일부 모토로라 간부들을 설득해야만 했다. 이런 마틴 쿠퍼의 노력으로 모토로라는 최초의 핸드폰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고, 뉴욕 맨해튼 거리에서 이루어진 공개 시연을 통해 그들의 기술력을 대중 앞에서 입증했다.

남아 있는 것은 테스트가 아닌 실제로 대중들이 핸드폰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주파수 사용을 위한 정부의 승인이 필요했다. 모토로라는 민간 기업이 무선통신에 사용할 수 있는 주파수 영역을 할당받기 위해 이 일에 책임을 맡고 있는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를 설득해야 했다. 테스트를 위한 시제품을 제작하는 데 90일이면 충분했지만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상용 핸드폰의 경우는 사정이 달랐다. 핸드폰 용도로 특정 인프라를 구축해야만 했고, 이를 완성하고 제품을 출시하기까지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1973년 뉴욕 맨해튼 거리에서 핸드폰이라는 신세계를 목격한 대중들은 그 장치를 자신들의 손에 넣는 데에만 꼬박 10년을 기다렸다.


온라인 뉴스팀 et@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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