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대외 경제상황과 지속되는 내수 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들은 윤석열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비상계엄 선포 후폭풍을 우려하고 있다. 계엄 해제에 일단 안도했지만 이후 전개될 정치권 갈등과 금융시장 불안 등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경영환경이 더욱더 어려워지지 않을까 우려를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삼성그룹과 LG그룹은 비상계엄 선포·해제 이후 시장 분위기를 주시하고 있다. LG그룹은 서울 여의도 트윈타워 본사 근무자에 한해 4일 자율 재택근무를 권고했다. 필요에 따라 일부 계열사별로 비상대책회의를 연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그룹은 별도 비상회의를 열지 않았으나 사업 담당자별로 예측불허 상황에 따른 모니터링 강화를 주문했다. 현대차그룹도 별도 비상대책회의 없이 후속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SK그룹은 이날 오전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주재로 일부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등이 참석하는 주요 경영진 회의를 열고 후속 상황을 점검했다. 향후 그룹 경영에 미칠 영향을 논의하는 등 향후 변화 대응을 모색한다.
HD현대도 오전 권오갑 회장 주재로 긴급 사장단 회의를 열었다. 국내외 상황 변화가 예상되는 만큼 환율 등 재무리스크를 점검하는 등 비상경영에 준하는 대응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상계엄은 해제됐지만 예정된 주요 경제계 행사는 취소됐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날 직접 주재할 예정이었던 상법개정안 토론회는 무산됐다. 경제계가 주주 충실의무를 이사로 확대한 상법 개정안에 반대하고 있어 이날 토론회에 경제계 이목이 쏠려있었으나 추후 일정이 불투명해졌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이날 오전 임원회의를 열고 후속 상황에 대한 경제부처와의 협조 방안 등 대책을 논의했다. 한국경제인협회는 상황을 지켜보며 기존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다음주 워싱턴DC에서 열리는 제35차 한미재계회의 총회 준비를 위해 유관팀이 일정대로 출국했다.
중소·벤처기업계에도 비상계엄령 사태 후폭풍을 우려하고 있다. 불확실한 정치권 상황과 환율 급등, 해외 신뢰도 하락 등 부정적 여파가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위기다.
중소기업계는 정치권 불확실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외 통상 환경이 급변하고 내수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절실한 시점이지만 정국이 경색되고 교착 상태가 지속되면 민생 입법 처리가 지연돼 간접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벤처업계는 정치 혼란으로 인해 투자자 불안감이 커지면서 자본 시장이 혼란에 빠질 것을 우려했다. 외국인 투자 자금 유출, 환율 변동, 금리 상승 등 악재가 발생하면 기업 자금 조달을 어렵게 만들어 생산·투자에 심각할 차질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벤처업계 최대 과제인 '글로벌 진출'과 해외 스타트업 유치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했다.
중소기업계 관계자는 “최근 대외 통상 환경 급변과 내수 침체 장기화로 기업의 경영환경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며 “불확실한 상황에서 정부와 정치권이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배옥진 기자 withok@etnews.com, 박윤호 기자 yun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