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단행된 삼성전자 사장단 인사의 핵심 키워드는 '반도체 쇄신'이었다. '삼성 위기론'의 중심에 반도체가 있었던 만큼 삼성은 반도체 부문 사업부 수장 3명 중 2명을 교체했다. 특히 반도체 사업의 핵심인 메모리를 대표이사 직할체제로 전환하며 경쟁력 회복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 전영현 직접 뛴다
삼성전자는 전영현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 부회장을 신임 대표이사로 내정한 뒤 메모리사업부를 맡겼다. D램과 낸드플래시 사업을 직접 챙기도록 한 것이다. 부문장이 사업부장을 겸임하는 건 이례적이다.
그동안 삼성전자는 부문장과 사업부장을 분리해왔다. 부문장은 중장기 사업전략 구상, 신규 먹거리 발굴 등을 맡아 수행했다. 하지만 메모리 사업에서 후발주자와의 격차가 좁혀지며 위기감이 고조되자 이같은 결정을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메모리 사업에서 벌어들인 수익으로 시스템 반도체와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사업을 강화해왔다. 비메모리 사업 진출 전략이었다.
하지만 자원 분산으로 삼성 반도체의 근원인 메모리도 흔들렸다. 인공지능(AI)으로 급부상한 고대역폭메모리(HBM)는 물론 D램도 경쟁 업체들에 바짝 쫓기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 3분기 기준 삼성의 D램 점유율은 41.1%로 SK하이닉스와 격차가 6.7% 포인트(P)로 좁혀졌다.
삼성은 메모리가 더 이상 밀리면 안 된다고 보고 대표이사 직할체제라는 승부수를 던진 것으로 풀이된다. 의사 결정 속도를 향상시켜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에 기민하게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전 부회장은 과거 D램 개발실 실장, 메모리사업부 전략마케팅팀장을 거쳐 2015년부터 2016년까지 메모리사업부를 이끌었던 베테랑이다. 삼성전자가 2017~2018년 메모리 호황을 누릴 수 있는 기틀을 닦은 인사로 '삼성 반도체 부활'이라는 중책을 맡게 됐다.
전 부회장은 그동안 경계현 사장이 이끈 SAIT(옛 삼성종합기술원) 원장도 겸직한다. 전 부회장에게 힘을 실어준 모습이다. 또 DS부문에 경영전략담당을 신설, 전력을 보강했다. 김용관 사업지원태스크포스(TF)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 발령했다. 김 사장은 반도체 기획·재무업무를 거쳐 미래전략실 전략팀, 경영진단팀 등을 경험한 전략기획 전문가다. TF에서 하던 업무를 DS부문으로 내재화해 조기 경쟁력 확보를 지원할 예정이다.
◇파운드리 수장에 '미국통' 한진만…사장급 CTO도 신설
삼성은 메모리에 이어 파운드리 사업부에도 변화를 줬다. 파운드리 사업부장을 교체하고 사장급 최고기술책임자(CTO) 보직을 신설했다.
신임 파운드리 사업부장에는 한진만 DS부문 미주총괄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켜 발탁했다. 미국은 파운드리 핵심 고객사로 꼽히는 엔비디아, 애플, 퀄컴, AMD 등의 빅테크 기업이 포진한 곳이다. 삼성은 미주 지역 사업 경험과 네트워크를 쌓은 한 사장을 통해 파운드리 수주 활동을 강화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또 삼성은 미국 파운드리 투자를 추진 중이고, 미국 정부와 반도체 투자 보조금 확보도 풀어야 해 한진만 사장을 선임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사장은 반도체 설계부터 마케팅까지 두루 경험한 전문가로 폭넓은 미국 인적 네트워크가 강점으로 꼽힌다. 1989년 D램 설계 연구원으로 삼성전자에 입사했으나, 1997년부터 2008년까지 실리콘 매직, T-RAM, 마이크론 등 미국 회사에 11년가량 근무한 뒤 다시 삼성전자에 합류했다. 2022년 말부터 미주총괄을 맡았다. 지난 3월에는 엔비디아 개발자 연례행사 GTC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로부터 삼성 HBM3E 12단에 '젠슨 승인(Jensen Approved)'이라는 사인을 받아내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한 사장에 대해 “기술전문성과 비즈니스 감각을 겸비했고 글로벌 고객대응 경험이 풍부하다”며 “공정기술 혁신과 더불어 핵심 고객사들과의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현재의 파운드리 사업 경쟁력을 한 단계 성장시킬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삼성은 이와 동시에 기술 전문가를 파운드리에 보강해 눈길을 끈다. 파운드리 수율 안정화에 중추적 역할을 할 파운드리사업부 CTO에는 남석우 DS부문 글로벌제조&인프라총괄 제조&기술담당을 이동 배치했다.
남 사장은 반도체 공정개발·제조 전문가로 반도체연구소에서 메모리 공정개발을 주도했고 메모리·파운드리 제조기술센터장, DS부문 제조·기술담당 등의 역할을 수행해왔다. 기존 3나노미터(㎚) 공정 수율 향상과 내년으로 예정된 2㎚의 성공적인 양산 개시가 과제로 주어졌다.
◇ 시스템LSI 사업부장 유임…수일내 임원인사
메모리와 파운드리 사업부 수장이 교체된 것과 달리 박용인 시스템LSI 사업부장은 유임됐다. 삼성 '갤럭시24' 시리즈에 공급한 '엑시노스 2400'을 통해 온디바이스 AI 시장에서의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경쟁력을 증명했고, '엑시노스 2500' 공급 차질에 시스템 LSI사업부 영향이 적다는 최고위 경영진의 판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 이미지센서와 디스플레이 드라이버 IC 등에서는 성과를 내 시스템 반도체 사업을 육성할 적임자로 힘을 실은 모습이다.
삼성전자는 부사장 이하 정기 임원인사와 조직개편도 조만간 확정해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예년 인사를 고려하면 이틀 뒤인 29일이 유력하다. 올해 인사 키워드가 '쇄신'인 만큼 임원 인사도 DS부문의 경우 다수가 퇴임하고 신규 임원들이 승진 배치될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 반도체가 이번 쇄신 인사를 통해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게 된 셈”이라며 “시장 상황이 녹록지 않은 만큼 새로운 리더들이 강한 리더십으로 초기에 조직을 안정화하고 대응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진형 기자 j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