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우리는 AI 시대를 맞이할 준비가 돼 있는가

우리나라는 지난 5월 인공지능(AI) 서울정상회의를 주최해 '안전하고, 혁신적이며, 포용적인 AI라는 서울 선언'을 채택했다. 9월에는 '2027년까지 대한민국이 AI 분야에서 세계 3대 강국으로 도약한다는 비전'을 발표했다. 향후 3년 간 총 65조원까지 민간투자를 확대하고, AI 도약을 위해 '국가 AI 컴퓨팅 센터'를 구축하겠다고도 했다.

AI 시대 가장 기본적이고, 선결해야 할 인프라는 데이터센터다. 데이터센터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AI 인프라 없이는 디지털 주권(Digital Sovereignty)도, 미래도 없다. 우리나라가 구미 선진국에 비해 1· 2차 산업혁명에는 뒤졌지만, 2000년대 초반 3차 산업혁명이라고 불리는 인터넷 혁명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통신 인프라에 대거 투자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 CDMA 모바일 네트워크, 2000년대 초반 초고속 인터넷망 투자가 그것이다.

데이터센터는 대규모 전력공급 없이는 가동될 수 없다. 아일랜드는 서늘한 기후 덕분에 냉방 효율이 뛰어나고, 저렴한 전기료, 낮은 세율이라는 이점 때문에 지난 20여년간 유럽의 데이터 센터 허브 역할을 했다. 지금은 전력공급의 불안정성 때문에 그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

최근 제시된 우리나라 AI 비전에는 '국가 AI 컴퓨팅 센터' 'K클라우드 프로젝트' 등과 같이 데이터센터에 관한 계획은 있으나,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에너지 혁신에 대한 구체적 계획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산업 곳곳에서 비즈니스 대혁신을 이끌어 낼 생성형 AI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처리해야 할 데이터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고, 그만큼 데이터센터 수요가 증가할 수밖에 없다. 데이터센터 확충에는 그에 상응한 전력공급 증가가 수반돼야 한다.

◇우리나라 발전설비 확장 추이와 데이터센터 확충의 한계

데이터센터 유치를 위한 글로벌 경쟁은 치열하다. 아마존은 일본에 21조원을 투자하고, 싱가포르에 12.6조원, 멕시코에 7조원 투자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구글로부터 2.8조원이라는 역대 최대 규모의 투자를 받아낸 말레이시아는 2030년까지 4.4조원의 GDP기여를 기대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소외된 느낌이다. 아마존 웹 서비스(AWS)가 2027년까지 국내 클라우드 인프라에 7.8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정도다. 전력 때문이다.

올해 5월 국회입법조사처 보고서 'AI 혁명에 부응한 선제적 전력공급·전력망 확충 긴요'에 따르면 향후 5년간 새로 구축될 AI데이터센터에 필요한 전기를 충당하려면 1GW급 원전 53개 규모인 약 52.9GW의 전력이 더 필요할 것이라 한다. 2029년까지 데이터센터가 732개로 늘어날 것이고, AI 시대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하려면 전력 소비가 급증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2023년 기준 한전과 자회사 합쳐 전체 발전설비 규모는 83.2GW다. 도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2017년까지 증가세를 보여주었으나, 이후부터는 정체 상태다. 원자력 설비 감소에 영향을 받았다. 원자력 발전설비는 지난 정부가 출범한 2017년부터 설비규모가 오히려 감소하기까지 해 2023년에는 24.7GW에 불과하다. 2004년 이후 급속히 증가한 신재생에너지 발전설비 역시 2023년 현재 절대 규모가 2GW에 그치고 있어, AI 시대 데이터센터 전력으로 활용되기에는 그 양이나 생산비용에 있어서 불가능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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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2003년부터 2013년까지 한전과 자회사 전체 발전설비는 20GW 정도 증가했고, 그 중 원자력 발전설비는 5GW 증가에 그쳤다. 2013년부터 2023년까지도 전체 발전설비는 12GW 증가에 그쳤고, 그 중 원자력 발전설비는 4GW 증가했다. 그러니 5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52.9GW 규모의 설비를 증설한다는 것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장기적인 안목에서 보면 기후변화에도 대응하고, 막대한 전력이 소요되는 AI 시대에도 대응하기 위한 친환경 에너지원은 원자력 밖에 없다는 것은 지명한 사실이다. 그래서 미국도 2050년까지 장기간에 걸쳐 무려 200GW를 추가 건설한다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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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센터 전력소비 절감 노력과 함께 원전 중심의 에너지 공급혁명 병행

물론, 국회 입법조사처 보고서에서 언급된 52.9GW에는 분명 상당한 가수요(假需要)가 있을 것이다.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모를 획기적으로 줄이려는 업계의 노력도 있다. 데이터센터가 대용량 전력을 소모하는 데에는 고성능 중앙처리장치(CPU), 그래픽 처리장치(GPU) 등 서버가 과열되면서 이를 냉각시키는데 전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전력 사용량의 45%가 과열된 서버를 식히는 데 사용된다고 한다. 그래서 기존 공랭식에서 수랭식, 액침 냉각방식(서버를 방수 처리한 뒤 냉각유에 넣음) 등이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바닷물 속에 해저 데이터센터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신경망 처리장치(NPU)를 초거대 AI에 활용하면 GPU 대비 가격도 25%나 싸고, 전력 소비량도 20~25%으로 감소된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럼에도, 20~30년이라는 장기적 관점에서 우리나라가 AI 강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서는 발전설비를 현재의 80GW보다 2배 이상 확충해야 한다. 그래야 글로벌 데이터센터 허브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하고, 3대 AI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대혁명'이라 할 정도로 에너지 정책과 제도를 획기적으로 혁신해야 한다. 미국이 2050년까지 원자력발전을 100GW에서 3배나 확대한다고 제시한 것처럼 우리도 AI 시대 유일한 대안인 원자력발전 중심으로 '중장기적인 에너지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

◇단기적으로 전력계통영향평가 등 분산에너지법 상의 각종 규제완화

글로벌 기업들이 우리나라에 신규 데이터센터 투자를 꺼리는 이유에는 지나친 규제와 시설에 대한 과도한 우려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데이터센터 규제로는 지자체의 건축 허가, 한전과 전력공급계약, 산업부와 에너지사용계획 협의 등 복잡한 인허가 절차와 분산에너지활성화특별법(이하 분산에너지법)에 의한 전력의 지역분산 유도 정책 등 다양한 방식으로 행해지고 있다. 분산에너지법은 작년 6월에 제정되고, 올해 6월부터 시행됐다. 분산에너지란 에너지 수요가 발생한 지역에서 필요한 에너지를 생산하도록 하는 지역 단위의 에너지 시스템을 말한다. 이 법은 신규 대규모 전력소비시설에 대한 전력계통영행평가 도입, 소규모 분산에너지의 전력시장 참여를 촉진하기 위한 통합발전소, 전력 자급률이 낮은 지역의 분산에너지 설치 의무화, 지역별로 전기 요금을 차별화할 수 있는 근거조항 신설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전력계통영향평가 제도가 논란이 되는 이유는 첫째, '지역사회 수용성' '지방재정기여도' '지역낙후도' 등 비기술적 점수(40점)가 과연 필요한가에 대한 의문이다. 비기술적 점수를 폐지하거나, 고효율 설계를 갖추거나 100% 신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데이터센터에 평가를 면제해줘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둘째, 한전만이 접근할 수 있는 전력계통에 대해 데이터센터 사업자에게 평가부담을 지우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있다. 전문 대행자를 통해서 평가하라는 것도 평가비용이 건당 수십억원이나 되어 사업자에게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셋째, 큰 비용을 들여 전력계통영향평가를 수행하고, 70점 이상을 받는다고 해도 전력정책심의회의 심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일 뿐 평가를 통과한다는 보장도 없다. 총점 70 이상의 평가서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원안 의결하도록 함으로써 예측 가능성을 높여 달라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수도권에 대한 획일적인 데이터센터 규제도 재검토해야

데이터센터의 성격에 따라 수도권 내 구축이 필요한 경우에도 분산에너지법이 수도권 내 신규 데이터센터 설치를 원천 봉쇄한 데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올해 초부터 한전은 수도권 내 데이터센터에 대한 전력수전예정 통지를 전면 중단한 상태다. 앞으로도 전력계통영향평가를 수행한 사업에 대해서만 전력공급을 허용한다고 하나 수도권 내에서 전력계통영향평가를 통과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수도권 내에 설치해야 하는 데이터센터도 많다.

금융·게임·헬스케어와 같이 반응 속도에 민감한 서비스의 경우 데이터센터가 지방에 위치할 경우 데이터 처리속도가 느려지는 문제뿐 아니라, 재난 대응 및 장애 복구 능력이 약화되어 고객 피해가 가중될 수 있고, 그에 따라 사업상 복구할 수 없는 치명적 손실을 입을 수 있다. 민감 데이터의 경우 데이터센터 간 서로 실시간으로 통신하고 백업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데이터 전송 거리가 길어지면 추가요금 부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클라우드 데이터센터는 특정 기업이나 기관이 자기사업장 내에 구축하고 운영하는 온프레미스(on-premise) 데이터센터와 다르게 다수 고객이 공유하여 사용되기에 데이터센터가 고객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야 한다.

송병선 한국데이터산업협회(KODIA) 회장 bssong1@gmail.com

〈필자〉 행정고시 30회로 경제기획원에서 공직을 시작해 기획예산처 정보화예산팀장, 재정개혁2과장, 산업정보예산과장, 기획재정부 연구개발예산과장, 기획재정담당관, 주뉴욕 재정경제금융관, 국유재산심의관, 대통령직속 지역발전위원회 기획단장 등을 역임하고 한국기업데이터 대표이사 사장을 거쳐 금년 5월 한국데이터산업협회 2대 회장에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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