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 동안 우리나라 경제의 성장동력 역할을 해온 정보기술(IT) 산업이 심상치 않다. 2021년까지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온 IT산업 수출총액은 2021년 2276억달러로 정점을 찍은 뒤 2023년엔 1080억달러로 크게 감소했다. 한국무역협회 무역통계에 따르면 2023년 전체 수출에서 IT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도 17.1%로 1993년 이후 3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같은 현상은 국제정세 불안이나 반도체 수요 급감 등 외부적 요인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외부적 요인이 해소되길 기다리는 것은 대안이 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이런 가운데 인공지능(AI)발 격랑이 IT 부문은 물론이고 전통 제조 분야에까지 몰아닥치면서 세계 산업 구조의 거대한 재편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어 산업전략 전반에 대한 국가 차원의 고민이 절실한 시점이다.
다행히 우리는 외환위기라는 전대미문의 국가적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외환위기로 IMF 구제금융사태를 맞이했던 1998년 정부는 과감하게 정보고속도로 구축을 포함한 IT 분야에 과감한 투자를 단행하며 경제 회복을 도모했다.
당시 정부는 국가 예산의 1%를 상회하는 1조원을 투입해 초고속 인터넷 인프라 구축 사업을 주도했다. 이같은 정책은 때마침 불어닥친 세계적 인터넷 보급 확대와 맞물려 대한민국을 'IT강국' 반열로 끌어올렸다. 전국에 걸친 광섬유 네트워크 구축과 인터넷 보급에 투입된 이 예산은 이후 수많은 벤처기업 탄생과 IT 생태계 조성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 세계 최고 수준의 초고속 통신망을 바탕으로 이동통신과 인터넷 서비스가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덕분에 2000년 초반부터 IT산업은 우리 경제의 핵심 동력으로 자리잡았고, 2021년 IT 부문 수출액은 2276억달러로 정점을 기록하기까지 20여년간 우리 경제의 성장동력 역할을 담당했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지금 또 한번의 과감한 결단이 필요한 시점을 맞이했다. 하지만 당시와 달라진 두가지 측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이 외환위기 때와는 비교할 수 없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민간부문의 규모가 비교할 수 없이 성장해 정부 주도로 산업구조를 바꾸는 것이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2023년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은 24조7000억원이었던데 비해 민간 부문의 R&D 지출은 112조6000억원으로 거의 5배에 육박하는 규모였다. 특히 글로벌 빅테크의 R&D 지출을 살펴보면 기업 한곳의 지출이 우리 정부 R&D 예산 총액을 웃도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마존의 경우 지난해 우리 정부 R&D 예산 총액의 2배가 넘는 420억달러(약 58조원)를 투입했고, 구글 395억달러, 마이크로소프트 272억달러를 연구개발에 쏟아부었다.
외환위기 당시와 같은 정부 차원의 특정분야 예산 투입 방식으로는 글로벌 산업구조 재편의 파고를 넘기 어렵다는 의미다. 오히려 글로벌 기업들과의 경쟁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를 완화하고, 각종 제약 요인과 사회적 분쟁 조율함으로써 민간 부문의 경쟁력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이 절실하다.
지역 주민들의 님비(NIMBY) 현상이나 전력 부족 등으로 AI 및 클라우드 산업 활성화에 필수 요소인 데이터센터 건립이 지연되고 있는 경우가 대표적 사례다. AI나 클라우드 관련 각종 법령과 제도들을 정비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AI가 일으킨 거대한 파고가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 될 수 있도록 민간 부문의 노력과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또 한번 성공적 조화를 이룰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주완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해외진출위원장·메가존클라우드 대표 max@megazo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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